김정자(시인·수필가)
음력 동지 섣달을 다 채우고 일년 열두달 마지막 문이 닫히려 한다. 섣달 세밑은 어인 연고인지 정겹고 다사로운 평온이 깃든다. 섣달 그믐 끝자락에서 또 한 번의 새해를 만나 새 다짐을 개선 복구할 수 있음이요, 희망이 새로운 차림새로 등장할 여유가 열리기 때문일 게다. 새해 1월을 작심삼일로 어영부영 보내버린 조급증을 지긋이 누르며 처연한 설맞이 과세를 할 수 있을 것 같다.
오늘 일을 내일로 미루지 않으려 달려왔지만 못다 했던 연연한 일들일랑 이월로, 삼월로 미루어 가자고 마음을 정하고 보니 한결 여유로워진다. 겨울 바람에 가랑잎 더미가 혼비백산 흩어진다. 더는 머물 수 없어 낯선 곳으로 휘몰이 당하면서 호기심과 막막함이 교차되는 낌새다. 낙엽 더미처럼 지나간 시간들이 쌓여가는데 끝없이 흩어졌다 몰려다니는 가랑잎들을 편안히 끌어 모아 주고 싶어진다. 갑작스런 한파로 임인년 매듭을 어영부영 해버린 아쉬움이 설날 새 아침이 열리면서 당혹스럽게 흩어져 버린 시간을 모으고 싶은 심정이 되면서, 쓸려 다니는 가랑잎 같은 흩어진 세월의 조각들을 퍼즐로 맞출 수 있다면 어떤 풍경 조합이 이루어질까. 궁금 해진다.
해가 저물고 집집마다 불빛이 밝혀지면 마음이 따뜻해진다. 오늘 하루해도 저물고 지난해도 저물었고 덤으로 주어진 것 같은 섣달도 문을 닫아야 할 시간 앞에서 어차피 우리네 인생도 마지막과 맞물리는 정점에 도달할 것이다. 산다는 것은 끝없이 해변에 밀려드는 파도처럼 생과 마주친 과제를 풀고 나면 다시 밀려드는 문제들이 기다리고 있었으니까. 뜻한 대로 문제의 미로들이 쉽게 풀려나는 것은 아니었지만 어찌어찌 시간이 지나다 보면 결론을 찾게 되더라는 것이다. 섣달이 가고 정월이 열려도 여전히 난제들은 끊임없이 존재하게 될 것이다. 숙제를 풀어가다 파도가 잔잔해질 무렵이면 감당 못할 일은 없었구나 하고 안도의 한숨을 쉬게 된다. 지치고 힘들긴 했지만 그런대로 한 해라는 세월을 잘 버텨왔던 것 같다.
섣달 그믐이면 왠지 서글퍼진다고들 한다. 하루 사이 묵은해와 새해가 바뀌면서 또 하나 나이테가 덧대어지는 아쉬움이 안타깝기 때문일 게다. 문학 평론가 이어령 교수님은 ‘지금은 눈물의 시대이다. 피의 시대에서 땀의 시대를 지나 이제는 눈물의 시대를 맞이했다, 위로와 공감, 누군가 함께 흘려주는 눈물이 필요한 시대’라 하셨다. 따뜻한 마음이, 따뜻한 손길이 그리워지고 기다려지는 섣달 세밑이다. 나이가 깊어갈수록 외로움은 쌓여가고 어쩔 수 없이 품고 살아가게 된다. 맨 몸이 부끄러워 옷을 걸치 듯 외로움을 이겨내기 위해 못난 모습이 들통나는게 싫어 시를 쓰고 친구를 찾는다, 어쩌겠는가. 어차피 인생은 외로울 수 밖에 없는 존재인 것을. 외로움 깊이를 알아가면 갈수록 인생은 지혜로워 지고 침묵하게 되는 것인데. 한 해를 구비구비 돌며 넘어 오시느라 지치셨을 시니어 분들에게도 주님의 사랑과 은총이 힘겨웠던 노구를 감싸 주시기를 간절히 소원 드리게 된다.
섣달 그믐 세밑이라 유난히 외로움에 고독감이 밀려들 터인데. 각별하게 소일거리가 없으신 시니어 분들께서 그날이 그날 같은 일과 속에서도 주말이 기다려지신다는 속내를 듣게 되었다. 토요일이면 한국일보 ‘행복한 아침’과의 해후를 기다리는 것이 일상의 리듬의 결을 놓치시지 않으시려는 행보로 그나마 위로가 되고 있다는 사연을 접하게 되었다. 어쩌면 ‘행복한 아침’을 기다리시는 분들을 향한 사명감 같은 따스한 기류 때문에 지금껏 ‘행복한 아침’이 이어져왔던 것 같다. 토요일 아침마다 ‘행복한 아침’을 배설해드리고 싶은 소박한 소망이 지금껏 팬을 붙들어 온 에너지원이 되어주었나 싶다. 독거하시는 몇몇 시니어 분들이 한국일보를 픽업하기 위해 한인마트 앞에 설치된 신문박스를 뒤적이는 모습이 떠올라 가슴에 통증같은 애잔한 느낌의 감각 반응에 시달리곤 한다. 결코 글이 남달리 뛰어난 데가 있어서가 아닌, 다만 열세해를 이어온 독자님들과의 연이 이렇듯 마음을 북받치게 만들 줄을 몰랐다. 한국일보를 귀한 보물처럼 가슴에 안고 돌아오셨다는 이야기며, 무료한 시간 탓도 있겠지만 겨우 한 줄의 글에 공감만 해도 여러 번을 읽고 또 읽으신다는 자제분들의 이야기며, 글을 읽는 동안 함께 웃기도 하고 울기도 하셨다면서 잘 읽었다는 전화 한 통화에 독자와의 이음줄을 다시금 소중하게 붙들게 된다.
귀하신 독자 분들을 위해 어찌하든 공감대를 구사하는 글을 다듬어내야지 하는 책무감이 어쩌면 삶의 이유가 되어 왔을지도. 돌아보면 한국일보 존재감이 얼마나 크고 소중한 것이었는지 밤새 울 것 같은 마음이 된다. 섣달 그믐밤에 잠이 들면 눈썹이 하얗게 샌다는 풍습따라 졸음을 참다 참다 ‘까치 까치 설날은 어저께고요, 우리 우리 설날은 오늘이래요’ 동요를 불러대곤 했던 흑백영화 같은 기억에 어우러지며 노심을 풀어낸다. 섣달 그믐 같은 인생 노정의 뒤안길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