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유창 목사(몽고메리 사랑 한인교회)
대강절은 크리스마스를 더욱 의미깊게 만드는 <중요한 기다림>의 절기입니다. 이 <중요한 기다림>은 영원한 구원의 주님, <예수 그리스도를 위한 기다림>을 의미합니다. <기다림>이라는 단어는 “기다린다”는 동사, <데코마이>에서 온 현재완료의 결과 혹은 계속을 의미하는 <현재분사>입니다. 2022년 대강절은 11월 30일에 가장 가까운 주일인 11월 27일부터 시작하여 성탄절 전 주인 12월 18일까지 4주간 진행됩니다. 대강절을 지키는 목적은 <초림의 주님>을 축하하고 감사하며 기념하면서 <다시 오실 예수님>을 기다리는 절기입니다.
본문 속에 등장하는 시므온은 “기다리는 자(프로스데코메노스)”라는 별명을 가진 하나님의 거룩한 사람입니다. 25절에 보면, “예루살렘에 시므온이라 하는 사람이 있으니 이 사람은 의롭고 경건하여 이스라엘의 위로를 기다리는 자 성령이 그 위에 계시더라.” 지금까지 인생을 살면서 살아온 만큼의 삶을 되돌아 보면, 항상 “기다림”의 인생입니다. <어린 시절>은 순수한 동심으로 하루하루를 기대하는 기다림으로 살았고, <청소년 시절>은 사춘기의 피어오르는 부푼 꿈과 이상으로 하루하루를 기다림의 인생으로 살았고, <청년기 시절>은 이글거리며 타오르는 비전으로 기다림의 인생을 살았습니다. 그리고, <성장후의 장년 시절>은 주어진 삶의 테두리 안에서 삶의 목표와 목적을 가지고 <기다림의 인생>을 살았습니다.
이렇듯, 우리의 삶 자체가 <기다림>이란 삶의 패러다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시인 정호승은 “기다리는 편지”에서 <기다림의 소중함>을 노래하고 있습니다. “지는 저녁 해를 바라보며/오늘도 그대를 사랑하였습니다/날 저문 하늘에 별들은 보이지 않고/잠든 세상 밖으로 새벽달 빈 길에 뜨면/사랑과 어둠의 바닷가에 나가/저무는 섬 하나 떠올리며 울었습니다/외로운 사람들은 어디론가 사라져서/해마다 첫눈으로 내리고/새벽보다 깊은 새벽 섬 기슭에 앉아/오늘도 그대를 사랑하는 일보다/기다리는 일이 더 행복하였습니다.” 이렇듯, <기다림>은 그리움의 간절함, 그리고 재회(再會)의 소망을 의미합니다.
<프로스데코메노스, 기다림>의 사람, <시므온>은 막연히 기다림만으로 전전긍긍하지 않고 시인이 노래한, “기다리는 일이 더 행복하였노라”는 표현처럼 <기다림의 행복>을 절감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인생은 무엇을 기대하며, 무엇을 소망하며 살아야 할까요? 본문 속에서 시므온은 “이스라엘의 위로”를 기다리며 살았다고 말씀합니다.
인생은 기다림을 상실한 채, 꿈과 소망, 행복과 사랑을 잃어버리면 깊은 <상실감>에 빠지게 됩니다. 그러나, 이 모든 것들이 다시금 회복되는 순간, 바로 그때 <생동감(生動感)>, <생기(生氣)>, <활기(活氣)>는 우리의 삶 가운데 원동력으로 역사합니다. 그러므로, <프로스데코메노스, 기다림>의 사람, 시므온이 맞이한 “이스라엘의 위로”라는 말씀은 결코 <추상적 위로>가 아니라, <구체적인 행복의 성취 그 자체>입니다. 기다림의 행복, 프로스데코메노스의 행복은 “이스라엘의 위로”가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만남으로 그 소원이 성취됩니다. 이 행복은 전심으로 크리스마스를 기다리는 자에게 <하늘의 위로자, 예수 그리스도> 통하여 현실로 이뤄지는 <하늘의 기쁨, 하늘의 소망>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