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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석등곁에 밤 물소리

지역뉴스 | 외부 칼럼 | 2022-11-28 08:27:20

수필, 김경자(전 숙명여대미주 총동문회장)

구양숙 부동산표정원 융자

김경자(전 숙명여대미주 총동문회장)

 

내 사랑하리  시월의 강물을석양이 짙어가는 푸른 모래톱

지난날 가졌던  슬픈 여정들을, 아득한 기대를

이제는 홀로 남아 따뜻이 기다리리.

 

지난 이야기를 해서 무엇하리

두견이 우는 숲 새를 건너서

낮은 돌담에 흐르는  달빛속에

울리던 목금소리 목금소리--

 

며칠내  바람이 싸늘히 불고

오늘은 안개 속에 찬비가 뿌렸다

늦가을 빗소리에 온 마음 끌림은

잊고 싶은 약속을 못다한 탓이리.

 

아늬,

석등곁에 

밤 물소리

 

누이야 무엇 하나

달이 지는데

밀물 지는 고물에서

눈을 감듯이

바람은 사면에서 빈 가지를 

하나 남은 사랑처럼 흔들고 있다

 

아늬. 

석등 곁에

밤 물소리.   (시 황동규 시인 1958년생, 아버지 황순원 시인)

 

낡은 단청 밖으로 바람이 이는  늦가을, 멀리 잔잔히 다가오는 어스름 저녁, 며칠내 늦가을 낙엽들이 바람에  흔들린다.  푸른 삶은 꿈이요, 꿈은 삶이었나보다. 혼자 왔다, 그렇게 혼자 길 떠나는 낙엽 뒹구는 소리 싸늘히 늦가을 비에 젖어 낙엽내리는 저녁 산사에 불빛도  알 수 없는 갈잎새에 젖는다. ‘지심 귀명래’라 했던가… 인생을 아는 건  참 어려운 일이다. ‘너무 이르면 알 수 없고, 알면 너무 늦다’ 섹스피어의 말처럼 이 나이에도 난 인생을 아는 것이 없다. 수많은 스승들이 인생에 대해 얼마나 많은  지혜를 쏟아 놓았던가 … 그들도 모르는 건 마찬가지다. 그래서 공자는 ‘나는 아는 것은 안다고 말하고 모르는 것은 모른다’ 말했나 보다. 인생이란 차라리 모르는 것이 약인지도 모른다. 쓸데없는 인생이란 허상을 붙잡고 씨름할 일 없다. 산다는게 꿈속의 꿈일런지도 모른다.  

어쩌다 돌산 그림자 안고 살아온 내 한생에 감사한다. 우리 집 마당에 들어온 바위 돌들을  쓰다듬으며 바위 위에 난꽃을 피운 이끼들에 물을 주고  돌들과 사니 말수가 줄었다. 쓸데없는 말 없이 듣는 즐거움을 돌들에게 배운다. 돌들을 좋아하다보니 명품같은 건 내겐 무용지물이다. 좋아하는 명시나 내 사유의 뜰을 적시고 시를 읽는 것이  마음의 거울을 닦는 일이요, 시인들의 가슴에 묻힌 영혼을 흔드는 그 시의 맑은 샘물에 내 마음 적시고 싶다. 요즘처럼  컴퓨터만 누르면 모르는 것이 없는 이 시대에 사람은 목이 마르다. 젊은이들이 얼마나 목이 말랐으면  할로윈데이 그 참사를 과연 누가 만들었는가?  눈은 보아도 족함이 없고, 들어도 들리지 않는 병든 이 시대를 누가 만들었는가, 출세를 위해 수많은 학원을 전전해도 좋은 시 한 구절, 명작을 읽을 젊은이가 없다. 이 병든 세대를 만든 이는  어른들이다. 자녀를 돈 만드는 기계로 만들고 있는 교육 자체에도  문제가 있다. 그렇게 공부해서 명문을 가면 행복할까… 세계 자살률 일위의 한국은 어른들의 그릇된 생각, 명품, 일류라는 허상에서 벗어나야 할 것이다. 조금 못살아도 행복한 아이를 우린 왜 키우지 못 할까… 난 50년을 시골집에 살면서 나무와 숲,  들꽃들이 선물한 자연이 나를 키운 생명임을  지금도 배운다. ‘자연은 그 자체로 완벽하다’ 는 말처럼 많이 알려고 많이 찾으려고 발버둥칠 필요가 없다. ‘헨리 데이비드 소로’ 월든이란 책에서 ‘내 속에는 거의 모든 사람들이 그러하듯이 더 고상한 삶을 살고 싶은 충동과 함께 원시적인 야만의 생활을 하고 싶은 충동이 있어서 자연속의 삶을 동경한다’고 말한다.

창밖에  가득히 낙엽 내리는 저녁

나는 끊임없는 자연의 불빛이 그리웠다.

세모에 저믄 한해  마지막  한장  달력

쫓기듯 달려 온  내 발걸음

산사에  밤이 깊어 가고

바람은 빈 가지를 흔들고

마지막 잎새처럼  사랑이 흔들리고 있다

야늬.

석등곁에 

세모의 종소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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