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자(시인·수필가)
시월의 마지막 날에 피지 못한 청춘들을 가슴에 묻었습니다. 꿈도 많고, 하고 싶은 것도 많은, 신선한 젊은 패기가 용솟음치는 생기 발랄한 소중한 젊은이들을 어처구니없이 떠나 보냈다. 이에 대해 사회 전반과 국민 전체의 처절한 반성과 함께 시민 의식 대전환이 요구되는 시점이다. 이태원 할로윈 참사의 가장 큰 요인은 무질서가 원인이겠지만 한국 사회의 안전불감증이 부른 참사였다고 본다. 대규모 인파 밀집에 따른 위험을 진작에 예견했어야 했고 대비했어야 했다.
주최측이 없다는 핑계는 변명도 아닌 궁색한 책임 전가이다. 안전사고의 전형적인 패턴인 여러 안전 장치 결함이 동시간 대에 겹쳐지면서 발생한 사건이다.
마치 만성 숙질마냥 오랫동안 앓고 있었던 고치기 어려운 안전불감증이 빚어낸 마음 아픈 치욕적인 사건이다. 사고 당일 같은 서울 시내에서 보수와 진보 진영간의 맞불 집회에는 많은 경찰 인력이 투입되었고 마약 단속에 치중한 경찰의 대처는 비난을 피하기 어려울 것이다.
워싱턴 포스트 지에 ‘삼풍 참사 이후 27년 동안 한국은 아무것도 배운 게 없는지 의문’이란 기사가 게재되었다.
이태원은 ‘서울 속의 외국’ 혹은 ‘서울의 이방인 동네’라 불리며 한국에서 가장 이색적이고 독특한 외국 문화 공간으로 자리매김한 곳에서 역대 최다 인명 피해를 낸 압사 사고가 발생 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는다.
역대 인재가 빚어낸 여러 안전사고를 돌이켜보면 겉모양은 선진국 대열에 들어섰다는 자부심이 팽배해 있지만 그 속내를 조심스레 열어보면 아직 후진국 대열에서 맴돌고 있다.
안전사고가 발생하면 구태의연한 절차로 사고 책임 소재를 두고 목소리를 높이는 일이 급선무였다.
언론 매체는 보도에 분분하고 정부 기관에서도 당장 안전한 국가로 만들어낼 것 같은 회유에 집중하지만, 보라. 이태원 사고 이틀 뒤 의왕시 오봉 역에서 철도공사 직원 한명이 작업중 사망했고 사흘 뒤 영등포 역에서 무궁화 호 탈선 사고로 34명이 부상한 사고가 이어졌지 않은가.
또한 사건 사고 발생 후 얼마간을 지나다 보면 언제 그런 사고가 있었냐는 듯 예전 타성으로 돌아가 버리는 냄비근성이 재현된다. 한국 사회와 국민 의식의 현주소임을 통렬하게 인정해야 한다.
지금부터는 국민 모두가 자기에게로 손가락질을 돌려야 한다.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이 이러한 사고에서 내가 방심하고 내가 맡은 직무에 소홀했기에 어느 누구랄 것 없이 다 저지를 수 있는 직무유기 사고였고, 나도 그 골목에서 겪을 수 있었던 사고였음을 절절히 깨달아야 할 것이다. 사고의 전환이 이루어지지 않고서는 한국인 고질인 안전불감증은 더 나은 진전을 불식시키거나 고쳐질 수 없다는 현실을 인지해야만 한다.
반복되는 크고 작은 인재 사고는 재난 예방, 대응 한계점이 문재가 아니라 정부와 국민이 버리지 못하고 있는 안전 불감증이 가장 큰 벽이다. 국민이 안전하게 일상에 전념할 수 있도록 지켜주어야 할 정부의 대책과 제도적인 대안은 책상위에서만 이루어지고 있는 보고 문서에 그칠 뿐 안전 불감증이 빚어낼 참사가 여전히 곳곳에 방치되어 있음을 정부와 국민이 통분하며 주시해야 할 과제다.
참사가 발생할 때마다 국가가 내놓기 좋아하는 시스템 론이 등장하는데 시스템을 구상하는 탁상공론 또한 허울좋은 일시모면적 회피수단일지도 모를 일이란 생각을 떨칠 수가 없다.
한국 방문 시 구급차와 소방차 출동에 아랑곳하지 않는 이기적 시민의식에 울분을 느꼈었다. 이러한 안전 불감증이 만들어낸 것이 성수대교 붕괴, 삼풍 백화점 붕괴. 세월호 침몰 같은 참사가 되풀이 되고 있는 것은 쇄신되지 않은 시민 의식이 이태원 참사를 불러들일 수 밖에 없었음을 통감해야 할 것이다. 한국 사회에 만연하고 있는 안전 불감증에 대한 변화와 그릇된 것, 묵은 것을 버리고 새로워져야 할 개혁 정신, 갱신이 분골쇄신으로 빠른 시한에 각성과 변화를 가져올 것 같지 않은 미흡함에 불안을 덜어낼 수 없음이다. 국민 10 명중 8명이 사회 전반 안전 체감을 하지 못한다는 통계까지 불안을 부추긴다.
정부 관련 부처와 전 국민이 모두 각자 자리에서 지켜내야 할 역할을 감당해 냈다면 얼마든지 피할 수 있었던 참사였기에 무거운 마음으로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위기 관리는 국민의 인식 변화를 요구하는 시대적 정신, 의식 개혁이다. 이태원 참사를 정쟁화 하려는 것 또한 옳은 접근법이 아니다. 일터에서, 거리에서 더는 안타까운 죽음이 없는 안전한 세상을 함께 만들어가는 일에 여야가 함께하는 정치가 구현되지 않는다면 대한민국의 미래는 희망이 없다.
책임감을 가져야 할 높으신 분들이 외면한 자리를 156명 희생자와 생존자들의 트라우마가 그 좁은 골목을 지키고 있어야 할까.
정부는 국민의 존엄과 가치를 새롭게 깨우치며 경성해야할 것이며, 국민은 나만 안전하면 그만이라는 개인의 번영이 아닌 다 함께 하는 공생의 길을 찾아 나서야할 때이다.
꽃다운 젊음들의 희생이 헛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친구를 보내고 혼자 살아 남았다는 죄책감, 사고 현장에서 ‘사람이 죽고 있어요’ 목놓아 소리쳤던 이태원 파출소의 김 경사님. 한 사람이라도 더 살려 보려고 혼신을 다했지만 유족들에겐 면목이 없어 서로가 서로의 붉어진 눈을 바로 바라보지 못했다는 CPR자원 봉사자들, 미처 피지 못한 청춘들을 지켜주지 못해 오열하는 안타까움, 사랑하는 이를 잃어버린 상실감이 그 좁은 골목을 떠나지 못하고 맴돌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