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자(전 숙명여대미주 총동문회장)
우수수 가랑잎 구르는 소리긴 방황이 서성이며
낙엽이 쓰고 간
방랑시인의 시를 읽는다
얼마나 뜨거운 가슴이기에
그토록 고운 생명으로 타는가
푸르디 푸른 젊음의 뒤안 길
황금의 수의입고 먼 길 떠나 시려나
웃음이었나, 울음이었나
바람같은 '일엽생애' 란
불타는 낙엽안고 하룻밤 지새우면
내마음 갈 잎새되어 붉게 타려나
가을의 방랑 시인
황금의 잎새들이 쓰고 간 편지
'지심 귀명래'라
나 겸허한 마음으로 돌아갑니다
고향 흙으로 --- (낙엽이 쓰고 간 시ㅡ김경자)
오늘은 오랜만에 목화밭을 찾았다. 늦가을 갈꽃들도 지고 조금은 늦은 철이라 목화들이 없으면 어쩌나 망설이다가 그래도 갈 목화밭이 그리워 길을 나섰다. 50년 이민의 삶에서 내 마음이 길이 보이지 않는 날, 찾아 간 나혼자만의 방 마음껏 소리쳐 울고싶은 날 나만의 숨기어 둔 빈방이 목화밭이었다. 멀리 하늘 가까이 나를 기다리는 어머니를 만나고 싶어 큰소리로 빈 뜰에서 어머니를 부르기도 하고, 한이 맺힌 아픈 이민의 삶에서 마음을 풀고 싶어 찾아간 목화 밭은 내 영혼의 따스한 목마름을 찾는 희망의 장소였다. 꽃도 지고, 잎새들도 져버린 빈 들녁 늦가을 추수가 끝난 허허로운 빈 들녘 목장의 소들이 한가히 풀을 뜯고 자랑할 것도 없는 한가한 시골 동네이다.
난 왜 목화를 그리 좋아하는지 우리집엔 목화들이 한 식구되어 내가 마음 잃은 날 묵언의 도반이다. 얼마나 마음을 맑게 배웠으면 그 맑고 따뜻한 꽃으로 태어날 수 있을까… 잎도 지고 꽃도 시들은 메마른 나뭇가지에 피어난 하얀 목화, 맑게 비운 선승 처럼 마음 따스한 하얀솜꽃을 피울 수 있을까…
내 마음 스산한 날 괜찮다, 괜찮다 나를 다독이는 내 영혼에 걸터 앉은 파랑새처럼 넌 해낼 수 있어… 희망이 속삭인다.
세월 속에 열정, 희망은 어디로 갔는지 때론 글쓰는 일도 이젠 그만하고 싶다 망설이는 날도 많아졌다.
어느 날 ‘이 아침 축복의 꽃비가’라는 장영희씨 수필을 읽으며 내 자신이 얼마나 부끄러운지 모른다. 지금은 이세상을 떠난 그녀의 마지막 소원이 척수암으로 한 모금의 물도 마실 수 없는 항암 치료를 하면서도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이 아침, 축복의 꽃비가…’ 그녀의 칼럼을 생의 마지막까지 연재하였다.
다시 살아보자, 물 한 방울 먹어도 마치 칼을 삼키듯 힘들었던 때도 ‘하루만 최선을 다해 다시 살아보자’하며 이 아침, 축복의 꽃비가… 칼럼을 끝까지 끝내고 2005년 그녀는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수많은 재소자들에게 희망의 편지를 남기고 간… 영문학자 장영희 시인이 남기고 간 그 아름다운 희망이 묵언의 속삭임되어 하루 한 순간이 영원을 향한 소중함을 깨닫고 힘들더라도 인내와 감사하며 살아내는 오늘, 이 순간이었으면 나를 다독여 본다.
산 넘어 산
바다 건너 바다
마음 뒤의 마음
그리고 가장 안전한
꿈속의 어떤 사람
상상속에 있는것은
언제나 멀어서 아름답지
그러나 내가 오늘도 가 까이
안아야 할 행복은
바로 앞의 산
바로 앞의 바다
바로 앞의 내마음
바로 앞의 그사람
놓치지 말자
보내지 말자 ( 가까운 행복, 시인 이해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