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자(시인·수필가)
추억이란 때로는 따스한 차 한잔을 마시듯 영혼까지 따스해지는 추억도 있고, 어느 땐 입에 소금을 한 움큼 물고 있는 것 같아 떠올리고 싶지 않은 추억도 있기 마련이다. 어떤 추억은 추억 속에 잠겨 있는 동안 삶의 윤활유가 가동되 듯 온 몸에 활기가 가득 채워지기도 한다. 깊어가는 가을 밤, 아름다웠던 흔적을 찾아보려는 미답의 공간 여정 중 상록 원 교사 시절 단상을 떠올리게 되었다.
거슬러 가보면 육십여 년이 지난 일이다. 1960년대 초반 4.19 혁명과 군사정변 발발 이후 사회혼란이 극심했던 시절이었다. 세상이 어수선하니 안정되지 못한 정황 중에도 국민학교를 졸업하고 중학교에 진학하지 못한 아이들이 모이기 시작하자 야간 수업을 열기로 한 기독청년 모임의 주도로 ‘상록 원’을 설립해 부산 서구 영남 중학교 교실에서 저녁마다 수업을 진행하게 되었다.
그 무렵 필자는 부산 직할시 건설국에 재직하면서 퇴근 후엔 ‘상록 원’ 아이들 교육에 전념했다. 한 없이 밝은 얼굴 표정에 맑고 초롱초롱한 눈빛을 지닌 아이들의 학구열은 눈물 날 만큼 열심이었다. 당시 중학교 교육은 의무교육이 시행되지 않은 시기라 가정 형편이 어려운 가정에서는 아이들 진학은 꿈같은 이야기였다. 아이들도 낮 시간에는 잔 심부름을 하는 급사 일로, 또는 배달 일로, 기술을 배우는 일등, 각자의 일에 종사하면서 저녁 식사도 거른 채 학교로 달려오는 아이들이 거의 대다수였다.
가르치는 선생님들 조차 퇴근 후 무섭게 학교로 달려와야 했는데 독지가 몇 분의 배려와 사랑으로 손수 빵을 만드셔서 꾸준히 헌신해오신 분들이 계셨다. 지금에 까지도 그 분들의 따뜻했던 마음이 상기될 때면 가슴에 따스한 기류의 전율이 전해지곤 한다.
여름, 겨울 방학을 앞두고 아이들과 마음을 나누는 시간이 마련되곤 했는데 장래 희망을 나누었던 시간들이 여태껏 기억에 남아있다. 지금 쯤 지구 방방곡곡에서 세상이 필요로 하는 사람으로 역경을 견디며 뛰어넘은 산 증인으로 존경받는 삶을 추구 해내고 있으리라고 믿는다.
문득 문득 동명이인일지도 모르는 이름들이 미디어를 통하거나 다양한 지면에서 만나질 때면 혹시나 하고 기웃거리게 된다. 아이들의 이름이 거의 기억나진 않지만 유난히 기억에 남는 이름들이 아직 남겨져 있다. 특별히 남다른 가정 환경이었지만 유난히 배움의 열기가 뜨거웠던 영호는 아직도 기억에 머물러 있다. 수업 시간, 아이들과 함께 책을 소리내어 읽었던 그 때는 몰랐었다. 세상을 바꾸는 힘이 숨겨져 있는 소리란 것을. 세상 소리 중 가장 아름다운 소리란 것도.
장래 희망 이야기가 나오면 많은 아이들의 반응이 “의사가 될 거예요” 라든지 “법대생이 되는 것이 장래희망이예요” 라는 선택이 주류를 이루었다. “경찰이 될 거예요” “저는 육군 사관학교에 갈 거예요” 씩씩하게 또렷하게 말했던 아이들이 그립다. “선생님이 될 거예요” 말하면서 슬쩍 코를 훔쳤던 모습이 여직 생생하다. “선생님처럼 공부에 재미를 붙이며 열중할 수 있도록 해주고 싶어요” 몸을 옆으로 꼬면서 홍당무가 되었던 태석이는 아마 좋은 선생님이 되었을 것이라 믿어진다.
자랑스런 표정으로 얼굴이 발그레한 그 아이들이 훌륭하게 세상을 주도하는 일인자가 되어 주기를 아이들의 조그만 두 손을 잡고 한 사람 한 사람 기도로 빌어주었다. 척박한 세상을 맞서온 여린 아이들의 생명력은 좋은 환경에서 자라온 아이들보다 강인했다.
아이들의 삶 속에 깊이 침투되어 이성과 자아를 강건하게 단련시켜 왔기 때문일 것이다. 끈기있는 정신력이 뛰어난 추진력으로 내성을 길러내며 목표를 향한 집념이 아이들의 앞날에 바람직한 도전으로 펼쳐질 것이라 믿어졌다. 학기가 끝나고 방학으로 들어갈 때면 아이들과 손가락을 걸고 약속했다. 꼭 건강해서 돌아와야 한다고, 너희들은 혼자가 아닌 상록 원 공동체 구성원이기에 힘들 땐 서로가 서로의 의지가 되어 주어야 한다고.
아이들이 지녔던 아름다운 순수가 시대를 반영하는 영원한 원동력으로 아이들의 삶 속에 남겨 지기를 바램 해왔었다. 아름다움 본질은 변함이 없는 것이기에. 부디 그 날의 상록 원 아이들 모두가 날마다 세상에서 아름다움을 새롭게 재발견하는 삶을 살아 주기를 소원 드린다. 선생님이 되고 싶어했던 태석이는 아마 지금쯤 교장 선생님으로 은퇴하였을 것 같다. 아이들 손에 이끌려 사진관을 찾게 되면서 유일하게 남겨진 흑백사진 위에 나도 몰래 감추이듯 번진 눈물 자국을 닦아낸다.
그립다. 상록 원에서 보냈던 소중한 노작의 추억들이. 내 삶의 여정 위에 우뚝 서 있는 유적 같은 회상의 기록으로 남겨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