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유창 목사(몽고메리 사랑 한인교회)
화이트헤드(Whitehead)는 “현대의 모든 철학은 플라톤의 주석이고 현대의 모든 신학은 어거스틴의 주석이다”라고 말하였습니다. 이 시대의 신앙의 골격을 이루게 한 위대한 신학자 어거스틴(St. Augustinus)은 그를 위대하게 만든 어머니의 기도로 회심의 인생으로 전환하게 되었습니다. 그의 어제, 그의 과거를 돌아보면 그의 삶은 “타락과 방황과 불신앙”으로 점철되었습니다. 바로 그러한 그를 위대한 성 어거스틴(St. Augustinus)으로 바꾸어 준 말씀이 롬 13:11~14의 말씀입니다. 한 인간의 오랜 방황과 타락의 어두운 밤을 종식시킨 것은 “오직 성령의 감동으로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롬 13:11~14의 말씀은 종말론적인 메시지입니다.
로마서의 저자, 사도 바울과 어거스틴의 공통점이 있다면, 신앙이 깊어질 수록 죄인식과 겸손함이 동시에 커져가다 마침내 신앙의 완성인 성화의 사람, 오직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회심의 절정을 이루는 <겸손의 사람>으로, <그리스도의 사람>으로 돌아선 것입니다.
롬 13:11~14의 서론은 “너희가 이 시기를 알라!”고 시대정신을 일깨우는 말씀입니다. 이 시대의 방황과 타락의 종지부를 찍어야 할 시기가 바로 이 시기라는 것을 사도 바울은 롬 12:2에서 강력하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영적분별력이 필요한 시기가 바로 오늘 이 시대입니다. 양심의 분별력, 옳고 그름에 대한 분별력, 타성과 변화의 분별력을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하라!”고 정확한 디렉션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시대는 끊어야 할 때가 왔습니다. 사도 바울은 이 시대를 밤으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밤이 깊었다”는 것은 “밤이 거의 끝 날 시기”에 왔다는 것입니다. 즉, “세상의 종말”이 가까왔다는 말씀입니다. 밤이 끝나고 낮이 가까웠다.
지금의 시점은 바로 <종말의 정점>에 서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 종말의 정점에서 우리가 마땅히 할 일이 무엇인가?> 바로 이 도전에서 사도 바울과 성 어거스틴은 하나님 앞에 철저히 무릎을 꿇고 결단을 하였습니다. 물론 모든 하나님의 백성인 신자들이 함께 결단을 하여야 합니다. 그것은 “빛의 갑옷”을 입자는 결단에 일제히 합심하여야 합니다. 빛의 갑옷은 무엇입니까? 사도 바울은 아주 상세하게 빛의 갑옷을 밝히고 있습니다. “낮에와 같이 단정히 행하고 방탕하거나 술 취하지 말며 음란하거나 호색하지 말며 다투거나 시기하지 말고,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고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라.”(롬 13”13~14) 사도 바울은 이 빛의 갑옷을 다메섹 도상에서 예수 믿는 자를 잡아 옥에 가두어 사형에 처하는 일에 본격적으로 나서기 위해 달려가다가 예수님을 만나 갑자기 눈이 멀어지고 앞을 분간못하게 되어 회심의 전환점을 맞이하면서 철저히 깨닫고 육신의 옷, 정욕의 옷, 시기와 탐욕의 옷은 과감하게 벗어버리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사명으로 완전무장하는 <빛의 갑옷>을 입게 되었습니다. 30년동안 <타락과 방탕함>에 의존하던 어거스틴은 바로 이 롬 13:11~14의 말씀 앞에서 완전히 고꾸라졌습니다. 그리고 그의 신앙의 완전한 변화를 일으키도록 <빛의 갑옷> <예수 그리스도로 옷>을 입게 되는 순간, 지난날의 어두운 어제를 종지부를 찍은 <고백록(Confessions)>의 회개, 찬양, 감사의 사람이 된 것입니다. 오늘 이 시대, 지구의 종말이 가까운 이 시기는 “자다가 깰 때요, 어둠의 일을 벗고 빛의 갑옷을 입어야 할 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