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자(시인·수필가)
교통 사고로 무릎 근육이 찢어지는 곤혹을 당했다. 정형외과를 수 차례 방문하고서도 후유증에 시달리고 있다. 지팡이를 의지하면서 걷는 모습을 보시고는 “착한 사람은 빨리 낫는대요.” 위로의 말이 가슴 깊이 생각의 틀에 박혀버린 듯 잠자리에 들 때도, 일어날 때도, 어김 없이 떠오른다. 착하다는 말에 한 점 부끄럼 없이 살아왔는가. 마음가짐이 바르고 어질게 살아왔는가. 하루를 시작할 때 나를 일으켜 세우며, 하루를 마무리 할 때, 나를 돌아보는 일을 지표로 삼으며 자신을 돌아보게 된다. 유년부터 예쁘다는 말 보다 착하게 생겼다는 말을 줄곧 들으면서 자라온 터라 착함을 삶의 덕목으로 삼아 왔지만 착함에 대한 무게가 가벼웠던 적은 없었던 것 같다.
왠지 늘 착한 모습을 유지해야할 것 같은 책무감에 붙잡혀 있었던 것 같다. ‘착하다’의 사전적 뜻은 언행이나 마음씨가 곱고 바르며 상냥함을 이르는 것인데, 경상도 억양의 무뚝뚝한 말씨가 투박하기 이를 데 없음 이요, 마음 씨가 곱기는 고사하고 눈꼴사나운 일을 보기만해도 비위에 거슬리는 걸 감출 수가 없다. 옳고 그름의 잣대를 정확하게 들이대며 경우 바르게 살아야 한다고 부르짖는 모습에선 착함을 찾아내기란 쉽지 않다. 겨우 변명이라 내밀 수 있는 건 억울하고 따지고 싶어도 참고 견디며 작은 마음이라도 베풀려고 애쓰며 살아왔다는 것이다.
주일학교 어린이가 눈물 범벅이 되어 회개 기도를 올리는 모습 속에서 무슨 그리 아픈 잘못을 저질렀겠는가. 두 손을 모으고 기도하는 아이들 앞에서는 항상 부끄러웠던 일들이 무수히 떠오른다. 특별한 계층을 제외하고는 우리네는 다들 착하게 살아간다. 힘든 이웃을 동정하며 도와주고 싶은 마음이 동하는 것도, 이웃이 잘되기를 바라는 것도, 고생 끝에 낙을 얻게 되면 내일인양 기쁜 것이 우리네 인정이다. 오랜 병원생활을 끝내시고 퇴원하신 분이 계시면 찾아뵙고 함께 기뻐해주며, 이웃 새댁이 순산했다는 소식만 들어도 기쁨을 나눈다. 우크라이나가 빼앗긴 땅을 회복했다는 뉴스를 들었을 때도 기뻤던 건 매한가지. 눈에 띄이는 크고 굉장한 것에 마음을 두기 보다 작고 여린 것에 마음을 두며, 기쁨도 슬픔도 지혜롭게 견디게 해주시기를 바램 하는 단정한 착함이 갈급한 시대이다. 미사여구 없이 순수하고 간결한 글들이 오래도록 기억에 남겨지는 진리처럼.
수 없이 생각을 했던 일이다. 인류의 한 사람으로 쓸모 있는, 세상을 착함으로 전이 시킬 수 있는가에 골몰했던 시간들이 얼마였던가. 어떻게 남은 날들을 착하게 살아갈 수 있을까. ‘오늘 네가 있어 마음이 꽃 밭이다’ 라는 나태주 시인의 시 구절이 정답이 될 것 같다. 누구에게나 마음의 꽃밭이 되어주는 착한 사람으로 살아지고 싶다.
착하게 살고 싶은데 착하게만 살다 보면 바보 취급 받기가 딱 좋은 세상이긴 하다. 착한 사람보다 악한 사람이 더 잘 되는 것 같은 세상이 된지 오래다. 마지막 때가 가까워지고 있다는 실증일 것이다. 어떻게 사는 것이 착하게 사는 것일까. 착한 삶의 정석을 제시를 할 수 없는 것이 문제다. 착하게 상냥하고 반듯한 예의로 행동하고 주위에 민폐를 끼치지 않으며, 부탁을 받으면 거절할 줄 모르고, 빌려 달라는 것 마다 무조건 베풀고 사는 것이 착한 삶일까. 착한 말들이, 착한 심성들이 민망스러워 숨고 싶겠다.
착하게 살아가는 마음은 이기적으로 남을 생각할 줄 모르는 사람들이 흐트려 놓은 세상을 이타적인 아름다운 마음으로 세상을 가꾸어 가노라면 어느 땐가 살만한 세상으로 흘러가겠지 하는 마음의 비롯이라 생각된다. 착한 삶의 자부심에서 파생된 여유로움의 행복을 후손들에게 심어 주어야 할 것이다. 착한 사람들이 좀 더 애쓰고 좀 더 살만한 세상으로 만들어 가는 것이라고, 착하게 바보처럼 살기로 마음을 다진다. 내가 살아야 하기 때문이다. 상대의 무례함에도 관여치 않으며 따지지도 말고 서운해 하지도 말며 편히 살기로 했다. 누군가를 원망하는 동안, 일상도 꼬이고 일의 능률도 떨어졌다. 분명 내 잘못은 아니지만 오히려 어둠에 휩싸이는 딱한 지경에서 벗어나기 위해 착하게 바보처럼 사는 길을 택한 지혜를 존중하게 되었다. 바보와 착한 사람은 한 끝 차이라 착하다는 말이 욕이 되는 세정이다. 마음 먹기 달렸다. 세상을 즐겁게 살아가기 위해 주어진 만큼의 소출로 주변을 어지럽게 하지 않으며, 사려 깊은 배려와 친절, 양보와 겸양을 두루두루 적용해가며 일상을 감사로 채워가기로 했다. 착한 바보가 되는 길이 평안을 누릴 수 있는 지름길이라 인정해가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