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유창 목사(몽고메리 사랑 한인교회)
성경에 자신을 스스로 <나그네>라고 소개한 인물이 있습니다. 시편 39편 12절에, “나는 주와 함께 있는 나그네입니다.” 다윗은 스스로 주와 동행함을 고백하면서, 자신의 신분을 <나그네>로 고백합니다. <나그네>를 존 번연은 <필그림(천국 순례자, 천국길을 가는 여행자)>이라 부릅니다. 히브리어로 나그네를 <게르>라 합니다. 게르의 뜻은 <이방인>, <필그림>입니다. 게르의 사람, 다윗은 자신의 삶의 궤적을 회상하기를, “나의 모든 조상들처럼 떠도나이다.” 즉, 한곳에 정착을 할 수 없었던 유목민족 특유의 필그림의 삶을 말하고 있습니다. 다윗의 후손, 우리 구주 예수님께서도 자신을 <나그네>라 소개합니다. 마 25: 35에 보면, “내가 나그네 되었을 때”라고 하시면서 예수님이 이 세상에 체류하시는 동안에 예수님의 신분은 <나그네>였음을 고백하고 계십니다.
히브리서 11장에서 <믿음의 영웅들>을 소개하면서,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히11:6) 평생, 더 나은 본향 천국을 소망하면서 살아갔던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 이삭, 야곱 그리고 수많은 믿음의 영웅들을 히브리서 기자는 한마디로 이렇게 정의하고 있습니다. 히11:13에, “이 사람들은 다 믿음을 따라 죽었으며, 약속을 받지 못하였으되, 그것들을 멀리서 보고 환영하며 또 땅에서는 <외국인과 나그네임>을 증언하였으니”라고 말씀합니다.
왜 성경은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을 비롯하여 야곱, 다윗, 예수 그리스도, 베드로 등의 인물들이 자기의 정체성을 <나그네>로 인식하였을까요? 그것은 <더 나은 본향, 천국>을 사모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이제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니 곧 하늘에 있는 것이라.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들의 하나님이라 일컬음을 받으심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시고 그들을 위하여 한 성을 예비하셨느니라”(16절). 베드로는 이 신의 도성을 바라보며 한평생 <천국 순례자, 하나님의 나그네> 삶을 살았습니다. 그런데, 베드로는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나그네>에게 가장 중요한 덕목이 무엇일까?’를 깊이 고민하며 살았습니다. 마침내, 그는 한가지 결론에 도달하였습니다. “외모로 보시지 않고 각 사람의 행위대로 심판하시는 이를 너희가 아버지라 부른즉 너희가 나그네로 있을 때 두려움으로 지내라.”(벧전 1:17)
그리고, 하나님의 도성인 천국을 소망하면서 가지게 되는 두려움의 정체는 바로 “거룩(Holiness)”입니다. 베드로에게 정신적인 영향을 결정적으로 미친 말씀은 “너희는 거룩하라. 이는 나 야훼 너희 하나님이 거룩함이니라.”는 레위기의 “거룩”입니다(레19:2). 영국이 영적으로 타락의 길로 치닫고 있을 때, 과감하게 이 “거룩(Holiness)”으로 회귀할 것을 외친 믿음의 영웅이 있습니다. 그는 장로교 목사의 아들, 죤 웨슬레(John Wesley)입니다. 웨슬레의 “거룩”으로의 영적대각성 운동은 바로 이 베드로의 나그네 정체성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잠시 머물다 갈 이 세상을 <여관>으로 본다면, 모든 인생의 현주소는 <나그네>인 것입니다. 천로역정의 길을 가는 나그네, 하늘가는 밝은 길이 항상 우리 앞에 있음을 깊이 인식하면서 현주소의 정체성이 <하나님의 나그네, 필그림>임을 명심하여 “두려움”으로 한 걸음씩, 한 걸음씩 <하늘 나그네>의 궤적을 남기며 인생길을 걸어가야 하는 것이 모든 크리스천의 <올바른 정체성>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