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자(숙명여대 미주총회장)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 누구든 그 자체로서 온전한 섬은 아니다.
모든 인간은 대륙의 한 조각이며, 전체의 일부이다.
만일 흙덩이가 바닷물에 씻겨 내려가면
유럽의 땅은 그만큼 작아지며,
만일 갑이 그리되어도 마찬가지며
만일 그대의 친구들이나 그대의 영지가
그리되어도 마찬가지다.
어느 누구의 죽음도 나를 감소시킨다.
왜냐하면 나는 인류 전체 속에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누구를 위하여 종이울리는지를 알고자
사람을 보내지 말라!
종은 그대를 위하여 울리는 것이니! ( 시 , 영국 시인 존던의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
영국의 엘리자베스 여왕이 96세 일기로 세상을 떠나셨다. 감히 여왕의 업적이나 한생을 부족한 내가 글로 표현할수 있을까 망설이다 지구 별을 함께 걸어 온 작은 여성으로 엘리자베스 여왕의 타고난 선천적인 덕행과 그 인격을 돌아본다. 영국인들은 ‘여왕은 영국을 세운 굳건한 반석이었다’여왕의 죽음을 애도한다. 70년의 그녀의 생애 15명의 영국 수상을 접견했고 윈스턴 처칠 부터 죽기 이틀 전까지 그녀의 마지막 수상을 접견한 ‘수퍼 우먼’이었다. 여왕의 수많은 업적을 헤아릴수 없지만 여왕의 ‘은총, 진지함’ (GRACE, GRAVITAS)에 대하여 ‘월 스트리트 저널’이 특집으로 소개한 글을 함께 나누고 싶다. 엘리자베스 여왕은 언제나 어떤 경우에도 ‘그때, 자리에 꼭 서 있는 바로 그 사람이었다.’ 영국이 2008년 경제적 파국을 맞이했을때 그녀의 자신의 생일 잔치를 취소하라고 명했고, 미국의 9/11 으로 피격을 당했을때, ‘함께 슬퍼함은 사랑의 최고의 실천이다.’함께 가슴 아파하셨다. 멀리서 바라만 본 영국 왕실의 끝없는 아픔, 상실, 실망들은 감히 상상도 할 수 없는 재난들이 얼마나 많았던가를 우린 보았다. 아무도 여왕의 아픔을 이해하거나 위로조차 할 수 없는 남모를 고뇌가 얼마나 많았겠는가. 영국의 수많은 정치 소용돌이 속에서도 언제나 크게 대립함이 없는 보수적인 견해로 이해하고 수용한 여왕의 70년의 생애는 함께하는 ‘대중을 위한 진실과 성실함을 기본’으로 영국 국민을 사랑하는 마음 ‘은총과 진지함’이었다. ‘넬슨 만델라’ 대통령 취임식에는 초청도 되지 않았는데 참석하여 축하인사를 하였다한다. 70년의 여왕으로서 자유함 없는 그녀의 삶을 우리같은 소인은 상상도 할 없지만 그녀의 죽음은 이미 우리의 일부의 죽음이기도하다. 한 세기를 지구별을 거닐으면서 한 여인이 남기고 간 96세의 생의 흔적은 과연 우리에게 무엇을 말하는가… 그녀는 영국의 여왕으로써 70년의 생애는 수많은 위기와 아픔도 함께 했음을 우린 안다. 수많은 위기 중 영국의 대처 수상 때였다. ‘스웨즈 운하’ 위기 때 여왕의 하야를 강력히 촉구했을 때 가장 어려운 영국 여왕의 위험이었다한다. 1980년 여왕의 정치적 공격을 지혜로 이끌어낸 여왕의 지혜, 인내를 영국은 이제 이해하고 오늘의 ‘푸틴의 우크라이나 사태’를 알고나 있었던 여왕의 깊은 지혜에 감사하다고 입을 모은다.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 그 누구의 죽음은 나의 죽음이기도하다는 존던의 시처럼 ‘엘리자베스 여왕의 한 생애는 96세의 일기로 영국에 장엄한 서사시를 쓰고 떠나셨다. 찰스 3세가 왕위를 이어 받고 ‘어머니, 여왕이신 당신의 위대한 그 혼을 이어 받겠다고 눈물을 흘렸다.
‘누구를 위하여 종이 울리는지 알고자 사람을 보내지 말라!
종은 그대를 위하여 울리는 것이니!
’사람을 보내지 말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