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해바라기 마을

August 01 , 2022 9:52 AM
외부 칼럼 수필 김경자(숙명여대 미주총회장)

김경자(숙명여대 미주총회장)

 

십년을 경영하여 초가 삼간 지어 내니

나 한 칸  달 한 칸에 청풍 한 칸 맡겨 두고

강산은  들일 데 없으니 둘러 두고 보리라.    { 옛 시조 }

오늘처럼 마음이 스산한 날은 어디론가 훌쩍 길 떠나고 싶다. 매년 가을이면 부르리지 산자락 밑에 조용한 해바라기 마을을 찾아 길 떠난다. 고국의 가을을 연상케하는 스모키 산 자락 한 모퉁이에 숨어있는  ‘썻치 l마을’이다. 구름도 쉬어가는 추풍령고개와 비슷한 그림같은 작은 동네다. 지나는 길손을 위해 해바라기를  밭 한가득 심어놓고 물소리, 바람 소리에 마음씻기에 딱 좋은  내 마음의 쉼터다. 아무도 찾아오는 이 없어도  새소리, 바람소리, 청풍처럼 드리운  우거진  솔, 하늘 , 구름 흐르고 팔베개하고  낮잠자기 가장 어울린 심심산골. 숨기어둔  연인처럼  내 마음 안식처이다. 샘물 길어다가 마른 솔 태워  차를 달이고, 산새 벗삼아 산길을 거닐며 푸른 솔 어루 만지며 혼자 앉아서 흐르는 샘물에 발 담그고, 지는 해는 붉은 노을로 산을 태우고 계곡 흐르는  맑은 물에 내 마음 담그며  때묻지 않은 산 사람들 얘기나 듣고 싶네…

스모키 산 자락에 연인처럼  숨기어둔  해바라기 마을은 두고온 내 고향 강진 기암 절벽 석문산과  닮았다. 그 산골에는 마음씨 좋은 노부부가 우리 친구되어  살고 있다. 손수 가꾼 해바라기  만발하고, 감자랑 , 호박 , 오이, 강낭콩 등을 바구니에 담아 놓고 팔기도 하시지만 그냥 주시는것이 더 많다. 가스 펌프  하나, 백년도 넘은 듯한  주유소,  가게라야  천불어치도 안 되는  작은 구멍가게다. 마음이 답답하면 찾아 뵙고 싶은 내 마음의 안식처이기도하다.

 

운명 같은건 필요 없어

하늘을   닮아

하늘 처럼 

살기로 했네

 

가난해야  보이는 하늘

비워줘야  보이는  행복

 

해를 닮아   해바라기

노오란 누명 쓰고

빛으로 사는 네 얼굴

천년의 은총 가슴만  타네

 

해바라기

네 앞에서면  웬지  난 부끄러워 

있는 그대로 노오란

해가 되어 피어 난  꽃 한송이

출렁이는 기쁨

크나큰 지혜

사랑 , 기쁨 안고 태어 난 

불타는 영혼의 꽃  해바라기  

내 앞에 서면

난   사람임이 부끄러워 ---   ( 해바라기     김경자)

얼마 전  오랜만에 그 마을을 방문했을 때 그 집에 들어서면서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텅 빈 집은 비워진 채 텃밭은 잡초만 무성하고 문이 굳게 잠긴 채 노부부는 보이지 않았다. 문에는 방문객들의 남기고 간 명함들만 꽂힌 채 집이 텅비어 있었다. ‘ 어느 한 분이 돌아가신 걸까? 아니면 양로원으로  가신 걸까 ? 진직 찾아뵙지 못한  아쉬움과 그리움으로 목이 메었다. 이웃들에게 노부부 안부를  물었더니, 할아버지가 돌아가시자  할머니는 동생 집 근처로  옮기셨다 한다. 산다는 것. 그리고 내게 남은 생의 허락된 세월들을 어떻게 보낼까…

산길을 내려오면서 수많은 생각으로 생의 무상함, 허무가 옆구리를  스쳐갔다. 인생길  푸르디 푸른 젊음의 뒤안 길… 황금의 수의입고 길 떠난 한잎 낙엽같은 인생길. 누가 인생을 ‘일엽 생애’라 했던가. 방랑시인처럼 낙엽이  스쳐간  그 자리. ‘지심 귀명래라’ ‘나 지극한 마음으로  고향으로 돌아갑니다.’ 이름모를 산새 한 마리 서산으로 날아간다. 저녁놀에 곱게 물든 산들은  그대로인데 사람이 떠난 빈 집에는 바람만 머물고 가슴시린  고독, 허무만 안고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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