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천(支泉) 권명오(수필가·칼럼니스트)
이승남 한인회장과의 인연은 그 분이 한인회 부회장일 때부터 시작됐다. 이 회장은 내가 기고하는 칼럼 “Q형” 의 팬이라면서 내 글에 대한 이야기를 전하다가 친분이 두터워졌다. 그 후 이승남 회장이 하는 여러 행사들을 돕게 됐다. 그리고 그의 추진력과 끈질긴 설득력에 감탄을 했다. 이 회장은 회장 재직시 미주 한인총연합회 총회를 애틀랜타에서 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행사를 위해 곽창근 이사장과 나를 찾아와 행사 위원장을 맡아 달라고 해 능력도 없고 총 연 회원도 아니고 또 개인적인 사업과 한국학교와 연극협회 일도 많아 못 한다고 사양했지만 이 회장의 끈질긴 노력과 설득을 이기지 못하고 총회 행사위원장직을 맡게 되었다.
미주 각 지역에서 온 회원들의 숙식과 라이드 문제와 골프시합 및 총회에 관한 일들이 복잡했다. 총회 장소 및 숙소는 공항 인근 힐튼 호텔로 정하고 시작한 행사가 무사히 성공리에 잘 끝났다. 이승남 회장과 곽창근 이사장의 적극적인 지원과 협조 덕분이다. 많은 손님들을 접대하는 행사는 잘못하면 고생만 하고 비판을 받게 되고 위상만 추락하게 될 수가 있어 어렵고 힘들었다. 그 때문에 이 회장과 자주 만나 의견 교환을 하면서 한인사회에 대한 여러가지 다른 문제들도 논하게 됐는데 행사가 끝난 후 호텔 커피숍에서 이 회장이 느닷없이 한인회관 건립위원회를 새로 조직하고 회장 임기 중 한인회관을 건립하겠다면서 동참해 달라고 했다. 그리고 새 건축 위원장은 박선근 전 회장이 맡게 됐다고 했다. 박 회장은 능력이 탁월하고 그동안 한인사회를 위해 헌신적인 노력을 다 한 분이라 적극 찬성하지만 나는 일단 사양을 했다. 어쨌든 박 선근 회장을 설득한 이승남 회장의 노력과 수완이 남다르다. 박선근 전 회장은 한인회관 건립위원장 재직시 Glenwood 선상에 있는 한인회관 부지를 구입하는데 큰 역할을 했다.
그런데 훗날 그 한인회관 부지 때문에 박회장이 곤혹을 치르게 됐다. Glenwood에 있는 한인회관 부지를 구입할 당시에는 Glenwood와 Memorial 드라이브 인근에 한인교회와 상가와 식당들이 있었고 또 한인들의 거주지도 남쪽 Jonesboro와 Memorial과 Stone Mountain과 Buford와 Marietta였기 때문에 위치상으로 적합했다. 구입 당시 현지답사와 공청회를 거친 후 구입한 땅이다. 그런데 세월이 지난 후 예기치 않은 일이 발생해 한인들이 떠나고 한인생활 중심지가 Buford로 바뀌고 회관부지 인근이 우범지대로 변해 안전을 보장할 수가 없게 되고 땅을 팔 수가 없게 돼 불만과 책임론이 불거졌다.
어느 인사는 박선근 회장을 질책하면서 무책임한 인신공격까지 하며 땅값 14만3천불을 변상하라고 성토했기 때문에 박선근 회장이 건립위원장을 다시 수락하게 된 것이 참으로 힘들고 어려운 선택이라고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