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용희목사
고대 에스키모족에게 전해 내려오는 우리에게 잘 알려진 이야기 하나가 있습니다. 옛날 에스키모족들에게도 한국의 고려장과 비슷한 관습이 있었던가 봅니다.
어느 날 한 아버지가 사랑하는 아들과 함께 자기 아버지 곧 꼬마에게는 할아버지를 버리려고 했습니다. 일종의 고려장을 지내기 위해서 그들은 썰매를 타고 북극의 얼음바다 계곡 아주 깊은 곳으로 갔습니다. 인적이 미칠 수 없는 곳까지 이르렀을 때 이 아버지와 아들은 노인에게 작별인사를 합니다. 그리고 썰매에 노인을 그대로 놓아둔 채 아버지는 자신의 썰매를 타고 집으로 돌아가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아들이 “아빠. 잠깐만”하고 할아버지가 있는 곳으로 다시 썰매를 타고 돌아가더랍니다. 그러더니 썰매에 묶인 할아버지를 풀고는 썰매를 가지고 왔습니다. 그래서 아버지가 “야. 너 왜 썰매를 가지고 오니”라고 묻자 그 아들은 이 다음에 제가 아버지를 여기로 데리고 올 때 이 썰매가 또 필요하잖아요라고 당연하다는 듯이 대답을 했다는 것입니다. 그 이야기를 들은 이 아버지는 충격을 받고 잠시 거기서 생각에 잠겼다가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고는 노부를 다시 모시고 집으로 돌아 왔다는 이야기입니다.
유명한 시인인 윌리암 워즈워드가 한 말 가운데 “모든 아이는 어른들의 아버지다”라는 애기가 있습니다. 이 말은 몇 가지 중요한 교훈을 우리에게 전달해줍니다. 첫 째는 아버지가 살아왔던 삶의 스타일은 자녀들에게 그대로 반복된다는 사실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모든 가정의 자녀들은 부모의 거울이다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말이 의미하는 또 하나의 중요한 뜻은 어린 시절에 우리가 경험했던 모든 영향력은 어른이 되더라도 쉽게 떠나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우리가 어른이 되고 아버지가 되고 어머니가 되어도 어렸을 때 우리들이 받았던 영향력은 그대로 우리 안에 내적으로 잠재해 있다는 것입니다. 즉 유년기를 지배했던 형상이 평생의 삶의 스타일과 의식구조를 결정하고 지배한다는 사실입니다. 바로 이러한 영향력을 가리켜서 최근의 심리학자들은 우리들 안에 존재하고 있는 과거의 어린 아이라고 정의 했습니다.
유명한 오하이오 주립대학의 정신의학자이며 교수로 있던 휴 미슬다인 박사가 이 말을 맨 처음으로사용한 분이었습니다. 소위 내재된 과거와 아직도 존재하고 있는 나의 어린아이 같은 모습. 이것을 어떤 심리학자들은 숨겨진 아이라고 부릅니다. 흔히들 보편적으로 사용하는 술어인 성인아동이라는 의미입니다. 저는 창조적이고 행복한 가정을 만들기 위한 가장 중요한 열쇠가 있다면 그것은 바로 ‘성인 아동의 극복” 이라고 생각합니다. 즉 어떻게 어린 시절의 영향을 극복 할 수 있고 받아들일 수 있느냐 하는 문제 입니다. 물론 어린 시절의 영향력이 다 나쁘고 부정적인 것은 아닙니다. 거기에는 상당히 좋은 영향력도 존재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받았던 매우 부정적인 영향력이 한 평생 우리를 불행하고 고통스럽게 만든다는 사실을 부인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이것을 극복하는 정도만큼 우리는 성숙할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심리학자들이 이러한 사실을 지적하기 훨씬 오래 전부터 성경의 한 저자인 바울 사도는 이러한 유명한 말을 했습니다. “내가 어렸을 때에는 말하는 것이 어린아이와 같고 장성한 사람이 되어서는 어린아이의 일을 버렸노라”(고전13:11)
이것은 자기 안에 있는 성인 아동의 모습을 극복한 성숙의 고백으로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성인아동을 극복하는 것이 우리에게 중요한 과제일까요? 그것은 몇 가지로 정리할 수 있습니다. (다음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