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용희 목사
부정적 자아상의 반대 개념을 당연히 긍정적 자아상이라고 생각하기 쉽니다. 그런데 저는 그 말 대신에 성경적 자아상이라고 붙이고 싶습니다. 왜냐하면 성경적 자아상 그 자체가 긍정적 자아상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 긍정적이라는 단어만을 가지고는 성경적 자아상의 전체 모습을 다 설명할 수가 없기 때문에 저는 굳이 성경적 자아상이라는 말을 쓰는 편입니다. 성경적 자아상은 긍정적일 뿐만 아니라 창조적 자아상의 의미도 내포합니다. 앞서 비교의식이라는 말을 많이 썼는데 이제는 그 말 대신에 창조의식이라는 말을 써봅시다. 비교의식을 치유할 수 있는 정반대의 의식이 있다면 창조의식일 것입니다. 비교의식이 끊임없이 상대와 비교하며 나를 보는 의식이라면 창조의식은 창조주 하나님의 관점에서 나를 보는 인생관을 말합니다. 창조주 하나님께서 나를 이렇게 지어주셨다는 의식이지요. 따라서 외모가 어떠한가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나는 하나님께서 지어주신 아주 독특하고 유일무이하며 천상천하 유아독존의 존재이다라는 의식을 갖게 합니다.
당신의 얼굴을 거울에 한번 비춰보십시오. 전 세계 57억이 넘는 인구 가운데 당신의 얼굴과 똑같은 사람을 본 적이 있습니까? 우리는 아주 독특한 창조물입니다. 인생처럼 독특한 창조물은 없습니다. 나같이 생긴 사람이 없고 나같은 능력을 가진 사람도 없습니다. 우리는 저마다 다른 능력을 가지고 태어난 것입니다. 따라서 나와 남을 비교할 필요가 없습니다. 나는 나만이 가진 능력이 있고, 나는 나만이 성취해야 할 나의 고유한 삶의 영역이 따로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부모 역시 나에게 꼭 필요한 부모를 주셨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그 부모님이 아니셨으면 빚어질 수 없었던 나였기 때문입니다. 이와 같이 성경적 자아상 즉 창조의식으로 인생을 산다는 것은 이웃과의 비교를 통해 자신을 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바라보고 나를 보는 의식을 말합니다. 이를 다른 말로 하면 자존감 즉(self esteem)이라고 합니다. 그렇다면 성경적 자아상을 형성하는 전제가 무엇이겠습니까? 무엇이 긍정적이고 창조적인 자아상을 만들 수 있겠는냐는 것입니다. 첫째로 균형잡힌 성경적 자아관이 확립되어야 합니다. 성경이야 말로 가장 조화롭고 균형잡힌 자아관을 제시 합니다. 성경에 나와 있는 인간의 모습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습니다. 하나는 타락한 죄인의 모습이고 또 하나는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어진 모습입니다. 그런데 이 둘 중의 어느 것 하나만 지나치게 강조하면 문제가 생깁니다. 균형이 무너집니다. 타락한 죄인만 너무 강조하면 병적 열등감이나 지기비하 속에 빠질 가능성이 많습니다. 또 하나님의 형상 측면만 지나치게 강조하다보면 우월감이나 자기 우상화의 유혹 속에 빠질 수 있습니다. 그래서 균형이 필요한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종종 성경에서 하는 말들을 오해합니다. 창세기 3장에서 우리는 인간 타락의 원형을 볼 수 있습니다. 신학자들은 인간이 타락한 이후에 전적으로 부패되었다고 주장합니다. 그런데 이 전적인 부패라는 단어가 많이 오해받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 말은 인간이 다 썩었다고 선한 것이 하나도 없다는 뜻입니다. 죄가 인간의 지식과 감정, 의지의 모든 영역 속에 침투되었다는 것을 뜻합니다. 죄가 침투하지 않은 영역은 하나도 없습니다. 그것이 전적인 부패의 가장 중요한 뜻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