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유창 목사(몽고메리 사랑 한인교회)
모두를 얻기 위해 세상에서 유일한 하나를 버려야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세상의 모든 영혼을 얻기 위해 자신의 소중한 전부를 과감히 버려야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온 인류의 영혼을 구하기 위해 유일한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구속의 속죄물로 단번에 내어주신 하나님의 사랑은 바로 <하나님의 역설적 은혜>에 비유할 수 있습니다.
또한, 개인적으로 그러한 인생을 <역설적 인생>이라 부릅니다. 행 9장의 바울의 회심사건은 여기에 가장 적절한 말씀입니다(행 9:1~22). 사도 바울이 회심이후에 갖게 된 <바울>이란 이름을 얻기 전에 그는 <사울>의 인생을 살고 있었습니다. 정확하게 말하면 <다메섹에서의 예수님 만남 이전과 만남 이후>의 기준이 되는 “회심의 터닝 포인트(Turning Point)가 있기 이전의 삶”과 “그 이후의 회심(Conversion)”으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바울처럼 <축복된 터닝 포인트의 인생이 되려면> 적어도 <세 가지>가 전제되어야 합니다. <첫째로, 절대적 대면이 필요하다. 둘째로, 영성의 중심이 필요하다. 셋째로, 지속적 추구가 필요하다.>
사도 바울은 이 세가지 전제조건을 만족시킨 사람입니다. 그는 다메섹 도상에서 이 땅에 복음으로 우주화를 성공시킨 예수 그리스도와 직접 대면하므로 사도 바울은 <하나님의 역설적 은혜>와 <역설적 인생>을 동시에 맞이하게 되는 <터닝 포인트의 인생>이 된 것입니다. 그는 예수 그리스도의 중심으로 거듭나기 위해 <철저한 회개와 회심의 바울>이 됩니다(행 9장, 22장, 26장). 다메섹에서 철저하게 회심한 사도 바울은 “지속적인 하나님의 나라와 그 의를 위해” “나는 날마다 죽노라”고 고백합니다(고전 15:30). 지속적인 하나님의 나라와 그 의를 위해 날마다 죽음을 각오하고 하나님의 나라를 찾고 구하고 부르짖었던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진정한 부활신앙>입니다.
<하나님의 역설적 은혜>의 가장 중심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메시아적 주권>이 자리잡고 있습니다(행 9:20~22). 구약 39권이 초점을 맞추는 단 하나의 주제는 <메시아이신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신약 27권이 초점을 맞추는 단 하나의 주제는 <그리스도이신 예수님>입니다. 그러므로, 다메섹 도시의 길 한복판에서 사울(바울이 되기 이전)이 누리는 <하나님의 역설적 은혜>의 중심도 당연히 <메시아이신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사울(바울의 옛 이름, “큰 자”)이 회심한 현장, <다메섹> 도시는 아브라함 시대 때부터 남 유다, 북 이스라엘로 분단국가 시대에 이르기까지 <역사의 중심무대>입니다. 바로 그 자리에서 예수님이 바울(회심 이후의 이름, “작은 자”)을 만나주셨다는 것은 바울을 <하나님의 역설적 은혜의 최고 수혜자>로 만드시려는 목적이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역설적 은혜>로 회심하자마자 바울의 실천적 신앙은 “즉시로, 각 회당에서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메시아)이심을 전파하니.”(행 9:20)로 일관된 <참 회심자, 사도 바울>의 길을 걷게 됩니다. <하나님의 역설적 은혜>를 맛본 자만이 <역설적 인생>을 살 수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수제자 베드로의 신앙고백 위에 “내 교회를 세우겠다” 천명하신 예수님의 말씀은 일관된 <하나님의 언약>입니다.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마16:18). 아직 끝나지 않은 <21세기 역병의 대란기>에도 바울처럼, 베드로처럼 “예수 그리스도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신 <메시아 신앙의 확신>에 거할 때, 다음과 같은 신앙고백을 날마다 할 수 있습니다. “야훼와 그의 능력을 구할지어다. 그의 얼굴을 항상 구할지어다.”(시 105: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