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 모세(애틀랜타 문학회 회원)
살아가면서 순수함을 잃는 순간이 있다. 삶이 어긋나고 불완전할 때이다.
불완전한 상황에서도 영혼이 빛을 발할 수 있는 삶을 어떻게 살아낼 것인가?
삶이 힘겨운 순간을 이성적으로는 받아들일 의지가 있지만, 감정이 수용하지 못하는 현실의 모순을 어떻게 감당할 수 있을까?
삶이 불확실해지는 순간 현실은 고통으로 다가온다.
현실이 아무리 힘든 상황일지라도 삶은 영혼의 빛을 향한 여정이 되어야지 않겠나 싶다.
성경의 창세기(1:4)에서 “그 빛이 하나님의 보시기에 좋았더라 하나님이 빛과 어두움을 나누었다”라고 말씀하고 있다.
하나님의 창조 사역의 질서인 나눔은 조화의 균형을 이루기 위함이다.
“빛을 낮이라 칭하시고 어두움을 밤이라 칭하시니라--”(1:5)
이 빛은 우주 전체의 근본적인 빛을 말한다.
빛에 의해 물리적 어둠이 물러가듯이 영혼의 밝은 빛에 의해 내면의 어둠의 심연이 드러난다.
순수를 추구하는 영혼엔 어둠의 세력이 깃들일 수 없다.
맑은 영혼에서 심오한 사상의 체계가 확립되며 격조 높은 순수한 예술성의 작품이 탄생한다.
치열한 성찰을 통해 자신의 내면(심연)에서 울려 오는 음성을 듣기를 원해야 한다.
“당신의 마음속에서 당신만의 우주를 찾으십시오.” 초월론의 창시자인 에머슨 목사의 말이다.
자신의 마음을 열어나가며 삶의 의미를 찾는 시간을 역설하고 있다.
자신만의 독창적인 관점을 키우라는 뜻이 아닌가.
삶을 깊이 있게 폭넓게 꿰뚫어 보는 심오한 관점, 통찰력을 말이다.
“만약 삶이 경이로 가득 차 있지 않다면, 삶은 살 만한 가치가 없으리라. 나는 아침에 깨어나 창가에 다가가, 먼동이 트는 것을 바라보며 지난날 나의 모든 생활 습관을 뭉개버리고 새로운 생활로 나를 초대하는 자연의 새로운 비밀을 발견하고 있다.”
그의 내면의 탐색은 진지했고 영혼의 빛을 향한 여정은 사색의 진솔한 기록(수상록)으로 남아있다.
인간의 자각과 삶의 긍지를 선하게 실현하고자 했던 그의 희망의 언어는 빛을 발했다.
“인생의 목적은 자신을 아는 데 있으며, 글 쓰는 목표는 글 속에 햇빛을 반짝이게 하는 데 있다.” 영국의 사상가 교우인 “칼라일”을 감동케 한 말이다.
“이 세상에서 인간의 목소리를 나에게 전해 주는 것은 오직 당신뿐이오.” 칼라일의 인격적 신뢰성의 찬사다.
에머슨의 영혼을 향한 신실한 삶의 여정처럼 새로운 삶의 경이로움을 꽃피우게 해야겠다.
지치고 힘든 삶을 신선한 경이로움에 찬 가치 있는 삶으로 변화시켜 나가야 하리라.
영혼의 순수를 추구하는 삶이란 진실 된 자신의 모습을 삶 속에서 자연스럽게 드러내는 것이 아닐까. 에머슨의 삶의 교훈이 주는 도전의 삶을 어떻게 살아 낼 것인가?
모든 사람이 자신의 일생이 끝날 때까지 영혼의 정화를 위해 밝은 빛을 추구하며 내면을 순수성으로 가득 채우는 삶을 살아야 하지 않을까.
빛은 생명력을 품고 있으며 창조력의 근원이기도 하다.
그러면 창조적인 삶을 어떻게 살아낼 것인가.
진취적이고 역동적인 삶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자신의 내면에 잠재된 창조력을 일깨워 삶 속에서 실현하는 참신한 모습을 열망하고 있다.
삶의 통찰과 지혜로 단련된 영혼의 세계와 순수한 내면의 다채로운 표정은 생기발랄하다.
지혜(슬기로움)는 삶의 고통과 아픔을 겪으면서 깨닫게 된 삶의 건전한 자존감이 아닌가.
순수한 영혼과 따뜻한 심성을 지닌 사람의 본이 되는 모습을 닮길 원한다.
그동안 마음을 어둡게 했던 코로나 상황을 견딜 수 있었던 희망의 메시지는 “이 또한 지나가리라”(This too shall pass away)라는 간절한 믿음이다.
힘들었던 기간을 지나면서 더욱 감사한 것은 하나님의 섬세한 보살핌과 이웃을 통해 도우시며 마음을 어루만져 주시는 위로와 사랑의 손길이다.
오늘도 자신이 추구해야 할 삶의 지향점을 찾는 지혜와 강인한 생명력은 영혼의 빛을 향한 여정이 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