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천(支泉) 권명오(수필가·칼럼니스트)
1992년 미주 한인 이민사회에서 발생한 충격적인 사건을 극화한 ‘오렌지 카운티에서 생긴 일’은 이민의 삶을 개척하는 1세들이 겪었던 아메라칸 드림의 참담한 비극인 동시에 한가정의 몰락의 실상이다. 이 작품은 남의 일이 아닌 우리들의 일로 공감하고 거울로 삼아야할 우리 이민 1세들의 문화적, 가정적, 세대적 갈등 등 코리언 아메리칸들의 자화상인데 어떻게 관객들에게 생생하게 극적으로 재연할 수가 있을까, 그것이 연출을 맡은 나의 고민과 숙제였다.
김 철 기획, 조원석 작, 권명오 연출 ‘오렌지 카운티에서 생긴 일’의 줄거리는 한인회장을 역임한 아버지인 최 목사를 딸들이 성폭행을 당했다고 고소를 한다. 최 목사는 아들 선호사상이 지나쳐 결혼을 몇 번 씩이나 하고 아들을 낳은 후엔 아들만 편애해 딸들이 불만과 함께 재산도 아들에게만 물려줄 것이라고 믿고 아버지를 불신하고 갈등이 심해 반감으로 노출이 심한 옷을 입고 디스코텍 등을 누비며 문란한 생활을 하는 것을 보수적인 최 목사는 참을 수가 없어 딸들을 강제로 집으로 끌고 가 가두고 홧김에 “말을 안 들으면 죽여버리겠다. 차라리 너 죽고 나 죽자”고 야단을 치게 된다. 그 때문에 큰딸 은숙은 동거 중인 미국인 대학교수와 합세해 아버지를 고발하고 최 목사는 강력하게 결벽을 주장하는 코리언 아메리칸 1세의 가정의 비극을 접한 한인 1.5세 김미혜 변호사가 무료로 변론을 맡고 재판에 참여한다. 김 변호사는 성폭행에 대한 확실한 증거도 없고 또 한국부모들은 자녀들을 선도하고 꾸짖을 때 화가 나면 “너 죽고 나 죽자”라 고 하는 것이 한국적인 문화라고 변론을 하고 한국인 증인들도 똑같이 증언을 했지만 미국법정이 인정하지 않아 공방이 치열했을 때 둘째 딸이 증인으로 나와 자기도 아버지에게 성폭행을 당했다고 해 최 목사는 유죄가 돼 수감된 후 자살을 한다. 그리고 그 소식을 들은 큰딸과 동거인 대학교수도 자살을 한다. 진실은 밝혀지지 않은 채 최 목사 가정의 비극은 끝난다.
우리는 5개월 이상을 이 작품을 위해 연습에 몰두했다. 각박한 이민생활에서 생업에 종사하다 어렵사리 연극이 무르익어 무대에 오르게 됐을 때 갑자기 중대한 사건이 발생했다. 주인공인 김미혜 변호사( 박경희)가 과로로 쓰러져 병원으로 실려간 것이다. 다음날 극장에서 총연습을 해야 되는데 그야말로 날벼락이다. 공연을 취소할 수도 없고 막은 올려야 되는데 앞이 캄캄하다.
그런데 박경희 씨가 어머니와 함께 찾아왔다. 병원에서 퇴원하자마자 가족의 만류를 뿌리치고 연극을 위해 곧바로 내게 온 것이다. 기적이다. 다행히 불가능한 극한 상황들을 극복할 수 있게 돼 어렵고 힘들게 첫 공연을 끝내고 최악의 조건과 관계없이 연극 2회 공연이 무사히 끝났다. 나 아닌 다른 객체의 인생사를 재연한 연극이 끝난 후 허탈한 상태로 되돌아가 넘어야 할 아리랑 고개를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