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자(시인·수필가)
계절이 떠나고, 들어서고 순환을 거듭하며 마주 스치는 길목에는 시류 흐름이 지류를 돌고 돌아 계절 평야가 조성되고 있음이 경이롭다. 계절이 남긴 부유물들이 침전되고 계절 특유 서정까지도 정성껏 품어온 계절 삼각주가 인생들의 오만과 이중성까지도 토사 켜켜이 묻어두면서 퇴적되기를 기다리며 인생들을 품어온 것이었다. 계절이 흐르고 지구에도 아늑한 시간이 흐르고 있지만 지구 행성의 마지막 걸작품을 만들자며 마지막 계절 겨울은 지칠 줄 모르고 계절들이 건너갈 단단한 토질을 다지고 있다. 생명을 품을 물길이 흐르도록 물꼬를 틔워내고 봄비를 재촉하며 계절의 삼각주를 일구느라 미처 사월이 들어선 줄도 모른다. 계절이 베푸는 비옥하고 풍성한 시기라서 따스하고 그리 덥지도 않고 가끔 시원한 비 소식도 찾아들고 있어 나들이에도 만남을 재촉하기에도 계절의 삼각주를 누리기에 최적기를 맞고 있는 것이다.
삼각주는 하천으로 흘러든 토사와 침전물들이 하구에 이르면서 오랜 시간 동안 고이고 고여 오면서 퇴적으로 형성된 지형을 말한다. 강줄기를 지나는 바람과 모랫길도 시간 흐름을 따라 모래톱이 토양 삼각주를 만들어내듯 계절이 흐르는 길목 마다 윤택한 계절의 삼각주를 만들어내고 있었던 것이다. 계절의 삼각주를 도모하는 까닭은 인생들을 윤택으로 이끌어주고 싶어 살가운 선물로 남기고 싶었기 때문일 게다. 삼각주 유역은 토양이 기름져서 농사 짓기에 최적이며 삼각주를 터전 삼는 동식물도 많을 뿐더러, 다양성 있는 풍부한 우수종을 품고 있어 생태학적으로도 막대한 가치를 부여하고 있다. 이를 인류에게 베풀어주고 싶었던 애틋함이 창세로 품어온 연유일 게다.
계곡 따라 흐르던 물줄기는 모태의 품이 되어 하류에 이르고 한계 길목에 이르기까지 발달된 사구로 부터 석호와 사주가 범람원이 되기도 하지만 사행천이며 배후 습지들은 자연과 인간이 공존할 수 있는 융합과 복합적인 자연환경을 제공해주고 있었다. 인간의 삶을 윤택하게 이끌어주며 철새 도래지가 되어 쉼터가 되어주기도 하는 것이 천연의 삼각주라면 계절 환승이 일구어 놓은 계절의 삼각주가 지금 쯤이 아닐까 싶다.
겨울이라는 이름표에는 적막한 색상이 물들어 있다. 겨울이 떠밀려가야 하는 서러움의 여운이 곁들여 있어 망연히 하늘을 올려다 보게 된다. 빈 가지 끝에서 바람결에 나부죽하니 흔들리는 연록의 잎새들이 무성해지면 머뭇머뭇 마음이 자맥질하듯 잠겨든다. 계절이 남기고 간 연륜의 이질감이 세포 속으로 번져가기 시작하면 한 번도 가보지 않은 미지의 곳을 만나고 싶은 절박한 서성임이 돌발하 듯 마음을 흔들어댄다.
삶의 현장은 무채색이다. 실존에 색을 입히는 것은 예찬을 의도한 것이라 했다. 삶이 권태롭고 고달플 때는 세상이 잿빛 투성이가 되지만 인생은 무엇을 얼마나 더 높이 쌓아야 하느냐보다 무엇을 느끼고 감동하며 살아 가느냐가 이정표가 되어야 한다. 감동이 넘칠 때에야 비로소 감동을 나눌 수 있기 때문이다. 시인의 마음은 세상을 아름답게 채색을 입히고 그 어여쁨에 감동하고 감동을 공유하는 것이다.
시인의 마음이 되어 감동에 젖어보자. 시인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자. 연륜이 익어가는 만큼 소중한 것을 가려 분별할 줄 알아서 부디 계절의 삼각주에서 남은 날들을 아끼며 본향을 향한 그리움들을 절절한 묵상으로 쏟아내보자.
봄날 숲길을 누비다 보면 마지막 계절의 쇠락을 풀어내고 있는 산자락이 느긋한 안도와 평온으로 물들고 있다. 나뭇잎들도 뿌리가 빨아올린 수액과 따스한 햇살과 바람의 어루만짐으로 자연 균형에 이바지 해오며 계절의 흐름 따라 생태계의 생명 줄을 붙들고 온 것이었다. 아직 새순을 내밀지 못한 나목 곁에 서면 계절의 소멸이 먼저 눈에 들어오지만 성숙과 결실의 표정도 곁들여져 있어 조바심이 평안을 부등켜 안기도 한다.
자연계 순환과 인생살이의 오버랩되는 부분들을 새로운 흐름으로 각색하고 싶은 희원이 아쉬움을 안고 명상으로 사색으로 사념이 깊어져갈 수밖에 없는 계절의 삼각주를 조성해가고 있었던 것이다. 계절의 삼각주를 꿈꾸는 하늘도 바람도 연록의 푸르름으로 이끌어낸 계절 봄으로, 생명력을 불태우며 열매가 익어가도록 헌신해온 성숙의 뜨거운 계절 여름으로, 결실을 거두어 들이도록 내려놓음과 비움의 계절 가을로, 종내 마지막 계절 겨울의 스산함과 울울함까지도 품어내는 미묘한 계절의 삼각주에는 연록의 희망들이 두런두런 물들기 시작했다.
인생 삼각주를 꿈꾸어 보지만 어쩌면 이미 인생의 삼각주에 안착해 있는지도 모를 일이란 생각에 가슴 뭉클한 한 편의 글줄기가 풀려나올 것 같다. 돌아보면 삶 자체가 한 줄 한 줄 써내려 온 문장이었다. 옷깃을 여미며 정갈하고 간결한 한 편의 글이 구상될 듯 하다. 잘 다듬어진 글이 작품이 되는 공간 속에서 계절의 삼각주를 가없이 그지없이 누리고 싶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