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자(시인·수필가)
눈과의 조우가 그리 쉽지않은 애틀랜타에 3월의 눈이 내렸다. 지난 주말, 이른 아침 창가엔 바람에 흩날리는 하얀 눈의 춤사위가 유쾌하게 이어지고 있었다. 성긴 눈발이긴 했지만 반가움에 눈맞이 채비를 하고 밖으로 나섰다. 바람도 겨우 내내 불어댔던 바람으론 한에 닿지 않았던지 한겨울에도 보기 드물었던 거센 풍속으로 내달린다. 떠나는 겨울과 영하로 기울어진 이른 봄날의 허밍이 얼떨결에 눈 손님을 영접하는 풍경을 연출하고 있었다.
빈 가지 끝 고요 속에서 봉곳이 새순을 내미는 환희를 보았기에 더는 뒤돌아 보지 않으며 떠날 수 있었나보다고 연민의 정을 접고 있는 터였는데 겨울 나름 아쉬움에서인지 한나절을 사뭇 몸부림으로 나뭇가지를 못 견디도록 흔들어댄다. 잠시 잊고 있었던 이른 봄날 빙점이 반짝 세일처럼 애틀랜타 주말을 역습했다.
갑자기 떨어진 영하의 일기가 당혹스럽기도 하지만 문득 미우라 아야코 ‘빙점’이 떠오를 만큼 혹한이 들이닥친 것이다. 이른 봄날이 영하 한기를 직감하고는 깊은 골에서 빠져나와 물색없이 소설 ‘빙점’을 떠올려 놓고 말았다. 소설 ‘빙점’은 1964년 아사히 신문 현상 공모 당선작으로 일본 문단에 센세이션을 불러 일으키고 영화로도 만들어진 알려진 작품이다. 자신의 13년 간 투병과 남편의 헌신적인 사랑을 작품 속 ‘요코’ 고백으로 서술해 놓았다. 가족사에 얽힌 애증의 깊은 원망과 고심, 죄책감 속에서 성장해 가는 요코 모습을 통해 ‘죄를 용서한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세상에 묻고 있었다. 인간 원죄를 다룬 소설 ‘빙점’은 주인공의 고백을 통해 인간 마음을 얼어붙게 하는 빙점의 바닥을 유려한 필체로 묘사했다.
죄짓기를 거부하며 살아온 주인공은 혐오스런 자신을 안고 눈 덮인 겨울 언덕길을 오르게 된다. 높은 언덕에 오른 주인공은 하얀 눈길에 남겨진 발자국을 보게 된다. 한 치의 흐트러짐 없이 앞만 보고 걸어왔다고 생각했는데 눈 위에 남겨진 발자국은 흐트러지고 질서 없는 발자국이 아닌가. 그 순간 인생을 바르게 살아간다는 것이 쉽지않은 힘든 일임을 깨닫고 용서할 수 없었던 어머니를 용서하게 된다. 초월할 수 없는 용서의 한계를 3월에 내린 눈처럼 예측할 수 없었던 사랑의 절정을 보여주었다.
기후 빙점은 수은주가 알려주지만 인간 빙점은 보이진 않는다. 마음이 얼어붙는 빙점은 태초부터였을 것이다. 정도 차이는 있긴 하지만 자신도 모르는 빙점을 지니고 살아간다. 미움에서 시작된 마음 얼음은 기후 빙점과는 무관한 아무리 녹이려해도 녹일 수 없는 심성 깊은 곳에 자리한 고통의 근성과 정점을 섬세한 심리 묘출로 접근했다.
빙점은 얼음이 얼기 시작하는 온도이면서 녹는 온도이기도 한데 인간 빙점은 자신 안에 흐르는 원죄 실상을 파헤친 작가 의도가 돋보인다. 떠나는 겨울과 이른 봄날이 지닌, 차가운 빙점과 따뜻한 배려가 곁들여지는 계절 여울목을 느닷없이 찾아든 눈 손님이 생각없이 찾아오지 않았을 것이란 부록을 달아본다. 인간 본성의 차가움 속에 내면의 나약함이 빙점의 시작이 아닐까.
사람과 사람이 만들어내는 관계 원색은 아름다움에서 메마름으로 쇠락과 소멸로 가랑잎 더미를 만들 뿐이라고 단정지어서도 아니될 것이라 일러준다. 고왔던 단풍도 마지막을 고하라는 재촉에 다 비우고 내려놓았던 것도 존재의 한 방식이었을 것이므로. 고뇌 끝에 꿇은 고해의 스틸 마저도 스스로 용서해주고 싶은 가당찮은 허영에 빠져들기도 하지만, 이 과정 또한 성숙의 단계로 받아 들이라 한다.
용서하고 품어주는 것에까지 계산이 앞서는 세상이라 쉽게 얼어버리고 쉽게 해동되는 양상 앞에 당혹스러운 상황도 많다. ‘빙점’ 작가는 분노와 증오는 상대 뿐 아니라 스스로를 피폐하게 만드는 것이라서 인간을 위안해주려는 의도로 ‘빙점’을 세상에 내놓은 것이 아닐까 한다.
3월의 눈과 마주하며 마냥 게으름에 젖은 채 생각조차도 쉬고 싶어 깊은 침묵을 붙들고는 눈이 멈춘 후에도 내내 바깥을 맴돌았다. 휘영하니 불어대는 바람의 언어에 귀를 기울이며. 이불을 덮어도 잠까지 덮이지 않는 계절 길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