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천(支泉) 권명오(수필가·칼럼니스트)
애틀랜타 한국어 TV 방송과 라디오 방송의 개척자는 심중구 사장인데 그를 만나게 된 것은 1987년 차타누가 전 한인회장인 이웅길씨 때문이다. 이웅길씨는 한국에서 소극장 운동을 했던 분이라 가까워졌는데 심중구 사장은 연예계와 방송에 대한 관심과 꿈이 대단했다.
그 때문에 연극방송동우회 창립에 동참했다. 그 당시 애틀랜타 한국인은 3만명 미만이었고 또 한인들의 경제사정도 어려운 실정이었다. 그런데 심 사장이 TV 방송을 시작했다. 너무나 무모한 모험이고 도박이었다. KBS TV에서 11년 이상 수백 편의 드라마에 출연했던 나는 TV 방송에 대한 관심이 많아 심 사장의 KTN 개국을 축하하고 격려하고 성공을 기원했지만 솔직히 무모하다고 생각했다. 심 사장이 방송에 대한 전문지식과 경험이 전무한 까닭이었다. 어쨌든 그는 TV 방송을 시작하고 나를 자문위원으로 위촉했다. 나는 그에게 삼성 이병철 회장이 TV 방송국을 개국하면서 5년 이상 적자를 예상한 사실을 상기시키며 적자를 각오하고 정진할 준비를 하라고 했다. 그리고 연극방송동우회 시인 한만희씨와 김동식씨 그리고 연극을 했던 허봉구씨와 KBS 기술과 출신 최왈수씨가 적극 도왔다.
심 사장이 무에서 유를 만드는 난관을 헤쳐나가던 중 KBS TV 연속극 “바람꽃은 시들지 않는다”를 애틀랜타에서 촬영하게 됐다고 연극방송동우회에서 도와달라는 연락이 왔다. 드라마의 줄거리와 무대가 UGA가 있는 아덴과 애틀랜타이기 때문이다. 극작가 이철향씨와 나는 각별한 사이였고 염현섭 연출자와 주연배우 임동진씨와 정애리, 민욱씨가 나의 후배들이라 적극 후원을 하게 됐고 연극방송동우회 회원들이 특별출연을 하고 결혼식 피로연 촬영을 집이 크고 넓은 심중구 사장 집에서 했다. 심 사장이 적극 도우면서 KTN TV와 연극방송동우회 협찬이란 자막을 드라마에 넣게 했다. 그후 KBS TV와 인연을 맺게 된 심 사장이 KBS TV 프로를 방영할 수 있게 됐다. 하지만 운영에 필요한 재정문제가 심각했다.
그런데 또 1993년 애틀랜타 라디오 서울을 개국했다. 호출부호 FM 95 단파 한국어 첫 방송이다. 그후 심 사장은 TV UHF 채널 67을 취득했다. 계속 역경과 고난을 헤쳐나가던 1991년 동남부 무역협회 북한 방문단에 심 사장과 내가 동참하게 됐고 방문 중 심 사장이 평양과 고려호텔, 백화점, 능라도 경기장, 모란봉, 옥류관, 금강산, 만물상, 구룡 폭포와 삼일포, 원산, 남포 관문 등을 촬영한 것을 편집한 후 시인 김동식씨 사회로 심 사장과 내가 해설을 겯들여 방영을 했는데 큰 반응을 일으켰다. 그후 빅토리아 연예인(단장 이철향 )들을 초청해 공개방송을 하는 등 TV 방송 발전에 심혈을 기울인 심중구 사장은 코리언 아메리칸 한국어 방송의 선구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