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자(시인·수필가)
세상을 살아가는 데는 엄격한 규제도 있지만 은밀한 약속들도 존재한다. 각종 신호, 경계 표시, 문자, 숫자를 비롯해서 법, 돈, 시간, 계량, 윤리, 도덕, 신용 등이 인간사에 존재하는 막강한 약속인데 과학이 세상을 이끌어 가고 있다는 사실을 결정적으로 믿을 수 밖에 없는 세상으로 가고 있다. 팬데믹은 과학에 기존한 의학을 믿고 따라야 생존이 보장된다는 담론을 정설로 자리잡아 가도록 길을 내주었으니 말이다.
예술은 상상력에 실려 비상하고 경제는 우주로 까지 손을 뻗치고 디지털 4차 산업혁명은 미래 전반에 걸쳐 문화를 장악하겠다고 기염을 토하며 끝없이 발전을 거듭하고 있지만 믿음이 가는, 믿을 수 있는 세상 풍조나 정의로움과는 거리가 멀어져 가고 있다. 이러한 시대 흐름에 동승하지 못할 바엔 차라리 정체성에 귀의하 듯 현대 문명 답습을 보류하는 모드도 있기에 조용히 세상과의 교류에 여지를 두고 올곧은 정체성만은 지켜내며 진리에 이르는 사유 활동방식을 택하는 길이 열려 있음에 깊은 감사를 하게 된다.
윤리, 도덕은 인간의 삶을 존속시키는데 필요한 것들인데 세상은 불신으로 가득하고 서로를 향한 믿음이 갈수록 손쉽게 버려지고 묵언으로 지켜져야 할 약속들에 도리어 인간이 볼모가 된 느낌이 드는 것은 나만의 착각일까. 세상 사조는 믿을 수 없는 세상이란 부유물만 떠오를 뿐 소심의 쟁취는 행방 묘연이다. 요컨대 세상을 믿을 수 없다는 불편함과 모호한 섭섭함을 상쇄해보고 싶다는 전제하에 벌어진 발상이라 무조건 믿어보자는 것에는 문답무용이다. 전개될 세상 흐름을 궤도 수정까지는 아니더라도 상상력에 맡겨보는 것도 조금은 숨통이 트일 듯도 해서 상상력에 대한 논지들을 찾아보았다. 상상력은 원시적 신화적 발상 체계를 거쳐 예술로 승화되고 문화적 돔을 구축해가며 드디어는 경제와 과학에까지 승부수를 던지고 있다. 상상력이 이루어 놓은 과학 발전이나 예술과 문화 생성과 인간에게 미치는 영향력이 마치 원시 사회보다 문명화된 현대사회가 월등하다고 우기는 가설을 이미지화 시켜버린 진부한 논리가 정설로 버티고 있다 한다. 세상은 설득력이 미심쩍은 믿기 힘든 가설을 우격다짐으로 들이대는 일들이 다반사다. 짜증 같은 반발심에 불을 지피고 있는 세상 흐름 또한 밀어내고 싶지만 철벽 같이 강압적으로 버티고 있는 터라 가끔은 외면하거나 잠적해버리고 싶은 심정이 되기도 한다. 돈키호테 같은 웃픈 대담성의 강심장이 아니라면 묵묵히 세상 조류에 떠밀려가는 수 밖에 없음도 개탄스럽다.
재미난 한자 풀이가 있다. 믿을 신(信)은 사람(人)과 말씀(言)’이 합성된 글자로 믿음이라는 뜻을 가진다. 사람이 전하는 말, 서신 즉 편지, 정보라는 뜻으로 송신 수신 통신 등으로 풀이 되기도 한다. 사람의 말이 곧 믿음이라는 뜻으로 믿을 수 있는 말만 해야만 한다는 가르침을 시사하고 있다. 사람이 자기가 한 말을 지키게 되면 그 사람은 다음에도 자기의 말을 지킬 것이라는 믿음이 가게 된다. 일터나 크고 작은 모임이나 단체에서 관계를 지속해 가려면 일단은 믿음이 가야 하는 것인데 그게 그리 쉽지가 않다는 게 난관이다. 아이러니 하게도 서로 믿지 못하는 분위기가 만연하고 있는데도 서로 믿지 못하면 종내 세상이 어찌 제대로 돌아갈 수 있으랴 싶은 기우가 앞서니 말이다. 서로를 향한, 정부와 국민 간에, 단체와 대표 사이에서도 믿음이 없이는 인간관계도 사회도 국가도 존립하기가 어렵다. 작금의 세상이 불신이 팽배하고 기만과 눈 가림 식의 배임이 난무하는 것도 신의, 즉 믿음과 의리가 없기 때문이다.
역사를 거슬러 보면 서로 믿지 못하는 난제를 안게 될 때 국가나 민족의 제도가 붕괴되고 이를 틈타 이웃들이 침략해서 영토를 넓혀가는 일을 반복해온 것이 인류의 역사가 아닐까. 이러함에도 사람을 믿고 단체를 믿고, 국가를 믿고 살아가야 하는 것인지 통분한 질문을 던지게 된다. 세상이 헛바퀴 돌듯 돌아가고 믿을 만한 일이 드문 세상이다. 거짓말이 덧없이 뿌려지고, 아무 말이나 내뱉고도 아님 말고 식에 낯부끄러운 줄 모르고 거기에 언론의 자유까지 들이댄다. 세상을 정부를 기업을 공동체를 향한 신뢰가 갈수록 신빙성이 훼손되고 부정적 시선이 늘어나고 있다.
사람의 말을 얼마나 믿고 계십니까. 또한 당신의 말은 얼마나 믿을 만 한가요, 길을 막고 물어보고 싶다. 이즈음 같이 너 나 할 것 없이 마음껏 날개를 펼쳐보지 못하는 암울하고 허망한 팬데믹 시기라서 더욱이 믿어보고 싶고 믿음으로 서로를 바라보는 세상에서 살고 싶어진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믿음으로 결속된 세상을 꿈꾸어도 될까. 과연 그러한 세상이 도래하게 될까. 차라리 세상을 사회를 주변을 무조건 믿어 보자. 믿고 뒤통수 맞고 속임 당하는 일이 생기더라도 일단 믿어 보자. 아쉬움에 마음을 조이더라도 작은 일치점 하나라도 찾아 보자. 과연 정답을 얻을 수 있을까. 서글프지만 이 길만이 세상을 살아가는 유일한 통로일 것 같다는 생각이 밀려든다.
믿어보자. 임인년 남은 날들을 살아가기 위해. 새삼 한 번 더 물어본다. 고군분투 연습을 한다해서 과연 가능한 일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