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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다시 만난 첫눈

지역뉴스 | 외부 칼럼 | 2022-01-20 15:07:03

수필, 김명숙(전 나라사랑 어머니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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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숙(전 나라사랑 어머니회 회장)

어제 아틀란타는 눈 재난을 선포하였으니 오늘은 교회로 가는 길이 한산하리라 생각하고 길을 나섰다.

허락받지 않은 눈오는 날의 외출을 아무도 모르게 즐기는 일을 이 도시에서 아는 이들은 안다. 겁먹은 사람들이 집안에 스스로 갖혀 있을 때 아무도 없는 거리로 미끄러져 가는 이 통쾌함은 쓸모가 없는 쾌락이긴 해도 좋기는 하다.

그런데 2022년 정월 이른 아침 이 진풍경은 반란이 아닌가 싶은 것이 아마도 열받은 지구가 자유 시간을 구가하는 중인가 싶었다. 퉁가라 하는 작은 나라가 화산 폭발로 가라앉고 있다는 슬픈 소식에다가 미국의 환태평양대인 서부일대와 일본이 같이 몸살을 앓고 있다는 간밤의 뉴스는 환한 마음에 갑자기 회색의 그림자를 드리웠다. 그리고는 눈에 온 몸을 내주고 조용히 서있는 뒤뜰 푸르른 동생의 나무와 함께 내 신혼이었던 24세로 달려가고 있었다. 

그때도 오후 갑자기 눈이 펑펑 내리기 시작하였고 나는 동료 교사들과 첫눈이야! 그렇게 함성을 지르며 차를 마시며 수다를 떨다가 늦게 귀가하였다. 그날 중학생이던 내 동생 성국이는 쌀 한가마니와 김장한 김치를 싣고 어머니와 함께 우리 집을 방문했다. 2층까지 운반하지 못해서 어쩌나하는 어머니의 한숨을 제끼고 그 무거운 것을 혼자서 번쩍 들어 메고 셋집 2층까지 올라와서 문 앞에 두고 어머니를 모시고 돌아갔다.

어린 것이 무얼 안다고 시집간 누이 집에 쌀 한가마니를 지고 올라 왔을까? 어머니는 철없고 순진하기만 한 딸이 잘 살기를 저녁마다 걱정을 하시다가 어린 동생을 앞세우고 오셨을게다.

그리고 세월이 흘러 한국 “IMF”로 어려워진 사업을 접고 신접 부부인 동생 내외가 미국으로 온지 2년이나 넘겼을 때로 생각된다. 여기로 온 이래로도 일이 잘 안 풀렸던지 가져온 재물을 다 소진하고 한국으로 돌아가기 바로 전이었다. 어린 조카 민기를 품에 안고 온 예쁜 내외…

“나 내일 떠나는 데 이 나무는 누나가 맡아줘.”

“거기 아무데나 놔.”

이름도 모르는 작은 화분을 흘깃 바라보며 관심도 없이 아무렇지도 않게 받아서 집 한구석 어딘가를 차지한 성국이 나무는 언제부터인지 내 마음과 더불어서 자라가고 있었다.

성국이가 두고 간 나무는 그 때에 키가 50cm 안팎이었다고 기억한다. 조그만 나무가 작은 화분에 담겨서 이리저리 우리가 이사하는 집을 따라 옮겨 다녔는데 죽은 줄 알면 살아내기를 10여년 가까이 하더니 오늘에 보니 키가 2m는 되는가 보다. 뒤뜰에 아무렇게나 버려 진 듯이 자라나더니 내 동생의 시리기만 했을 그 추운 날을 첫눈과 속살거리며 살살 녹아가고 있었다.

알고보니 세월에 부딪혀도 아무렇지도 않을 내 동생을 등에 업고 창 밖에 서서 나와 함께 자랑스레 제 눈물을 반짝이고 있는 게 아닌가? 제 몸보다 작은 화구 안에서 그동안 말없이 잘도 자라 주다니 고맙기도 하지. 자세하게 들여다보니 화분에 뿌리가 간신히 끼어서 위로만 자라 오고 있었다. 그래도 가지를 멋지게 뻗고 하늘을 향해 섰음이 어찌 자랑스러운지! 화분을 집안으로 옮겨 들이자 더욱 서럽게 눈물을 뚝뚝 흘리는 늘 푸른 키다리에게 말을 건넸다. “걱정 하지마, 여기 내가 있잖니?”

창 밖에 펄펄 내리던 눈도 쉬기를 시작하였으니 포근한 흰 눈은 땅을 감싸안고 세상을 어지럽히던 코비드네 동족들을 이끌고 땅 아래로 녹아드는 중인가 보다. 하얀 평화가 비둘기처럼 내리는 오늘 사랑하는 동생 내외가 다복하여 축복을 세며 살아가기를 푸르기만 한 키다리나무와 함께 기도한다. 

01/16/2022 일요일 눈오는 오후에   김명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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