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천(支泉) 권명오(수필가·칼럼니스트)
1994년 4월 9일 한국학교 운동회가 개최됐다. 애틀랜타 한인사회 경사다.
오전 9시 NORCROSS 고등학교 운동장에는 꿈나무들의 밝고 맑은 모습들이 활짝 피었다. 간단한 개막식이 끝나자 “백군 이겨라, 청군 이겨라” 열띤 응원의 함성이 넘치면서 학생들이 신나게 달리고 밀고 당기면서 최대의 기량을 발휘하는 모습들이 너무나 아름답고 감개가 무량했다. 티 없이 밝은 꿈나무들이 사랑스럽고 자랑스럽다. 나의 아들딸들이 아닌 데도 너무나 귀엽고 예쁘고 아름다워 가슴이 벅차다. 운동장에 함께 모인 학생들과 선생님과 학부모들이 혼연일체가 되는 운동회는 참으로 뜻깊은 행사다.
그런데 각박한 이민사회의 현실 때문에 한인회 지도자들과 학부형들이 많이 참석을 못 해 아쉽고 학생들 보기가 미안했다. 관객 없는 연극과 손님 없는 잔치와 운동회는 쓸쓸할 수 밖에 없다. 50년 전 한국 국민학교 운동회 때는 시골 면 전체가 모이는 축제의 날이었고 그 당시 학생들은 운동회가 일년 중 가장 기쁘고 신나는 날이었다. 운동회에 참석한 사람들은 맛있는 음식들을 준비해와 서로 나누어 먹으며 학생들의 사기를 진작시키는 대축제의 날이었던 추억을 더듬으면서 앞으로 한국학교 운동회가 우리 꿈나무들의 건강하고 활기찬 잔치가 되고 또 애틀랜타 한인들의 화합과 축제의 날이 되기를 간절히 기원했다. 경기에 열중한 학생들은 코리언 아메리칸들의 미래의 꽃이고 앞으로 우리 꿈나무들은 인류사회 발전에 큰 재목이 될 보배들이다. 그 때문에 이사장인 나는 더욱 더 책임을 통감했다.
지난날 개학을 1개월 앞두고 공부할 장소가 없어져 개학을 못 하게 될 위기에 처했을 때 김경숙 교장선생님과 장소를 구하기 위해 백방으로 노력했지만 장소를 구할 수가 없었다. 당시엔 한인회도 사무실도 없는 형편이고 한인사회 경제도 어려운 형편이라 난감했다. 개학 날짜가 다가올수록 애가 탔는데 다행히 구세군교회 장사관께서 교회 사무실들을 사용하게 해주어 개학을 하게 됐다. 학생들이 공부할 조건과 환경은 최하인 상태로 6.25 피난 당시 부산 천막학교와 같은 실정이었다.
이사장인 나는 그 당시가 인생 최대의 역경이었다. 왜냐하면 폐교의 책임이 이사장인 내게 있고 교육의 중단은 학교 창립보다더 중요사인 때문이다. 그 후 최영돈 한인회장의 도움으로 운 좋게 NORCROSS 고등학교에서 공부를 할 수 있게 됐고 오늘 넓고 좋은 운동장에서 한국학교 운동회를 개최하게 된 것이다. 많은 사람들과 한국학교 관계자들도 잘 모르지만 학교가 위기에 처했을 때 구해주신 구세군교회 장사관과 최영돈 한인회장의 업적과 공로를 나는 잊을 수 가 없다. 개학을 앞두고 학생들이 공부할 장소가 없다는 기막힌 사실이 얼마나 큰 고통과 중대사인지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잘 모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