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용희 목사
부모는 결혼한 자녀들을 떠나 보내는 것을 즐거워해야 합니다. 부모는 모름지기 자녀들의 행복을 기뻐하고 도와주어야 합니다. 시어머니 중에는 아들의 결혼 생활을 질투하는 분이 있습니다. 심지어 아들과 며느리를 못 살게 하여 이혼시키고 가정을 무너뜨리는 무서운 부모도 있습니다.
얼마 전에 두 자녀들 둔 모 여대 교수가 시어머니의 반대로 남편과 별거 생활을 하다가 의문의 죽음을 당한 사건이 있었습니다. 이런 것은 남자가 부모를 떠나지 않는 데서 오는 비극입니다. 부모나 자녀나 서로 떠나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자식은 결혼과 함께 부모를 떠나는 것이 원칙입니다.
저는 가끔 젊은 시어머니 모시느라고 젊은 청춘의 자매들이 좋은 시절을 그냥 보내는 것을 봅니다. 시어머니 혼자 능히 살 수 있는데 그 어머니 보살핀다고 점심 거를까봐 어디든 마음놓고 가지를 못합니다. 그 시어머니가 “내 걱정말고 너 행복하게 살아라” 그 한 마디를 해주면 될 것을 그렇게 하지 못합니다. 인생은 젊은데 시어머니 받들다가 인생 다 지나가 버리면 얼마나 안타까운 일입니까?
어머니들이여/ 인생은 결코 길지 않기에 사랑하는 며느리들이 행복하게 살 수 있도록 떠나 보내십시오. 이것은 내 마음이 아니고 하나님의 마음이니 나도 순종하리이다 하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둘이 연합하여 하나가 된다는 말은 접착제로 붙는다는 말입니다. 이 사이에는 아무도 끼어서는 안 됩니다. 부부 사이에 자식이 끼어들면 안된다는 것입니다. 부모님도 중간에 장애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이것이 무슨 뜻입니까? 부부는 한 몸입니다. 한 몸으로 정착을 시키리려면 일체 불순물이 없어야 합니다. 있는 것 자체가 정착하는데 장애물입니다. 정착시킬 때는 순수해야 합니다.
성경은 “부모님을 떠나”라고 하십니다. 부모를 “떠나라”는 말과 “공경하라”는 말을 혼동하지 말아야 합니다. 여기서는 떠나라고 했고 출애굽기 20장에는 공경하라고 했습니다. 공경한다는 것은 집안에 모시고 공경하는 것은 아닙니다. 떠나서 공경하라는 것입니다.
옛날 한국의 여인들이 결혼을 할 때는 남편과 결혼하는 것이 아니라 시아버지. 시어머니, 시동생. 시누이 섬기려고 결혼하여 섬기는 종으로 한 집안에 들어갔습니다. 예로부터 우리나라 신랑 신부들은 대가족 제도 하에서 부모를 떠나지 못하고 살았습니다. 그래서 불행한 가정이 많았습니다. 부모를 떠나 둘이만 살았다면 행복했을 사람들이 주변에 둘러싸인 시집 식구들 눈치 보느라고 고운 청춘을 눈물로 보냈습니다. 결혼은 시작부터 둘이 살아야 합니다. 둘이 하나가 되기 위해서는누구든지 끼어들어서는 안 됩니다. 부모님의 인자한 훈계까지도 장애물이 될 수가 있습니다. 부모님도 부부 사이에 있어서는 끼어들어서는 안 됩니다.
그런데 성경은 아무도 부부 사이에 낄 수 없다는 가정의 신비를 태초부터 보여주었습니다. 그러므로 부모들이 이것을 먼저 이해해야 됩니다.
“아담과 그 아내 두 사람이 벌거벗었으나 부끄러워 하지 아니하니라”(창2:25) 벌거벗었을 때 부끄러움의 장애가 되지 않도록 멀리 떠나도록 해야 합니다. 자녀들이 결혼을 하면 둘이 살도록 해야 합니다. 그들만의 보금자리로 아늑한 공간을 꾸며 주어야 합니다. 인생은 짧습니다. 청춘도 한때요. 즐겁게 사는 젊은 시절도 잠깐입니다. 그러므로 자녀들이 행복하게 살도록 도와주어는 부모가 되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