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유창 목사(몽고메리 사랑 한인교회)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내 멍에를 메고 나한테 배워라. 그리하면 너희 영혼이 쉼을 얻으리니”(마11:29). 신년벽두에 시작을 <누구와 함께 시작하느냐?> <무슨 마음 가짐으로 시작하느냐?> 이것은 시작의 중요성을 강조한 속담, “첫 단추를 잘 꿰어야 한다”는 지혜의 격언과 일치합니다. “예수님이 누구신가?”라고 질문한다면 그 질문에 가장 적절한 대답이 예수님께서 스스로 자신을 밝히신 마태복음 11장 29절이 명확한 해답입니다. 이 예수님을 이사야 선지자는 “그가 곤욕을 당하여 괴로울 때에도 그의 입을 열지 아니하였음이여 마치 도수장으로 끌려가는 어린 양과 털 깎는 자 앞에서 잠잠한 양같이 그의 입을 열지 아니하였도다.”(사 53:7)
예수님을 한 단어로 압축하여 표현하자면, “온유”라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가지고 계시는 이 온유함을 영어식으로 표현하자면 “부드러운 비단 장갑 속에 숨어있는 철권(An iron hand in the velvet glove)”. 다른 말로 표현하자면, “외유내강(外柔內剛)”입니다. 겉으로는 유하지만 그 속은 강하신 분이십니다. 예수님은 분명히 천국에서 이 땅으로 오실 때 스스로 <강하심과 힘의 원리>를 다 내려놓으시고 오셨습니다.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의 동등 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빌 2:7) 하나님과 동등한 힘과 권세를 가지셨지만, 그 힘의 권세를 다 포기하고 “상한 갈대와 같이 약한 존재, 질그릇같이 깨어지기 쉬운 존재인 사람”의 모습으로 오셨다는 것은 분명히 하나님과 같이 <생사화복의 절대주권자>이시지만 우리와 같은 연약한 죄인들을 구원하시기 위해 첫 단추를 <구원의 단추>에 맞추셨다는 것입니다. “내가 내 목숨을 버리는 것은 그것을 내가 다시 얻기 위함이라. 내 목숨을 내게서 빼앗는 자가 있는 것이 아니라 내가 스스로 버리노라 나는 버릴 권세도 있고 다시 얻을 권세도 있으니”(요10:17~18).
예수님은 외강내유(外剛內柔)를 충분히 펼치실 수 있는 분이었으나 “질병과 환난과 죽음”에서 우리를 건지셔서 <구원의 친 백성>을 만드시고자 스스로 십자가에 자신의 몸을 내어놓으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그들과 함께 계시리니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은 친히 그들과 함께 계시리니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닦아 주시니 다시는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라. 보라 내가 만물을 새롭게 하노라.”(계21:4~5)
<외유내강의 오케스트라>. 이것은 사도 마태가 기록한 마태복음을 현대식으로 표현한 것입니다. 임인년 새해를 맞은 우리는 이 해를 호랑이 해라 말합니다. 그런데 밀림의 왕에 비유되는 동물은 사자입니다. 사자가 조용히 있어도 그 사자의 위엄을 밀림 속의 모든 동물들이 다 인지하고 있듯이 비록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죽기까지 연약한 인간의 모습의 극치를 보이셨지만 십자가는 결코 패배자의 자리가 아니라, 요한계시록 21장에 기록된 말씀처럼,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계셔서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닦아주시고, 다시는 죽음이 없게 하시고, 다시는 질병이 없게 하시도록 완전한 승리”를 주시기 위해 그리스도의 낮아지심의 진정성을 나타내신 자리입니다. 이 승리자 예수님과 함께 신년벽두를 시작한다면 <예수 승리, 내 승리>가 되고, <예수 축복, 내 축복>이 되는 것입니다. 새해 인사를 예수님 의 성품이신 “온유함”으로 인사를 해본다면, “예수 온유, 내 온유” “예수 십자가, 내 십자가” “예수 승리, 내 승리”. 이 존귀한 마음가짐을 지구촌의 모든 사람들이 큰 소리로 외친다면 장엄한 <외유내강의 글로벌 오케스트라>가 되어 힘차게 펼쳐질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