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애틀랜타
엘리트 학원
첫광고
경동나비

[보석줍기] 아궁이

지역뉴스 | 외부 칼럼 | 2021-12-20 12:11:32

보석줍기,오윤숙,아궁이

구양숙 부동산표정원 융자누가 스킨 케어

오윤숙(꽃길걷는 여인·쥬위시타워 보석줍기 회원)

 

아궁이 불을 지피는 모습은 이제 한국 민속촌이나 구석진 산 속 시골집에서나 볼 수 있을까? 내 어린 시절은 전쟁 후라 모두가 어렵고 힘든 때였다고 들었다. 가을부터 남자아이들은 학교 다녀온 후면 지게를 매고 산으로 향한다. 땔감을 지게에 가득 채워 동네에 들어서면 노을이 뉘엿뉘엿 저물어가기 시작하고 이집 저집 초가집 저녁 아궁이 불이 벌겋게 타오르면서 굴뚝에서는 보리와 감자를 삶는 구수한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난다. 허기진 배로 따뜻한 온돌방에 둘러앉아 찬 없는 밥이라도 가족이 오손도손 둘러앉아 밥을 먹으면 그 맛은 꿀맛이다. 늦은 저녁, 아궁이에서 다 탄 불을 화로에 옮겨 방으로 옮겨 윗풍을 따스하게 데우면서 고구마와 밤을 화롯불 속에 묻어 놓고 꾸벅꾸벅 졸다가 다 태워버리면 또 다시 구우며 긴긴 겨울밤을 지새우기도 한다. 사랑방에서 머슴 아재들은 밤새는 줄 모르고 눈을 비비며 이런저런 이야기로 담소를 나누면서 새끼를 꼬고, 새벽 동이 터 오르면 여인들은 머리에 흰 수건을 두르고 식구들이 추울 새라 아궁이에 불을 지펴 세숫물을 데우고 밥짓기를 시작하고 시래기 된장국 냄새는 온 식구들을 깨운다. 나는 데운 물을 바가지에 떠서 손가락으로 소금을 찍어 이를 닦고, 대야에 따스한 물을 부어 고양이 세수를 하고 하루를 시작한다. 가을 추수가 끝날 무렵에는 가을 추수걷이를 하면서 한 해 농사를 지켜주심을 감사하는 제사를 드리는데, 아궁이에 커다란 시루를 얹어 불을 지피고 팥시루떡을 찌면 나와 동생들은 큰 잔치를 하는 듯 좋아 폴짝거리고 집집마다 떡을 돌리는 심부름을 하면서 이웃 간에 정을 나누곤 하였다.  추수걷이가 지나면 김장이 시작된다. 땅 속에 커다란 항아리를 여러개 묻고 온 동네 사람들이 모여서 새 봄까지 먹을 김치, 동치미, 깍두기 등 여러 가지 김치를 담는 날에는 아궁이 가마솥에 돼지 고기도 삶고 한 쪽에 된장풀어 배춧국을 끓인다. 그 구수한 냄새에 차가운 몸이 훈훈해지고, 배추 쌈에 돼지머리 고기 맛은 지금도 잊을 수 없는 맛이다. 또 한해 농사지은 콩을 아궁이 가마솥에 오래 오래 삶아 메주를 만들어 긴 겨울 동안 메주를 띄운 후에 그걸로 봄에 간장, 고추장과 된장을 만들어 일년 동안 두고 먹는다. 그것 뿐인가 추수한 쌀로 아궁이에 밤새도록 엿을 고아 명절에 만든 산자와 콩엿은 겨울 간식으로 최고이다. 이렇듯 친근하게 우리 곁에 있던 고마운 아궁이가 이제는 찾기 어려운 옛 것이 되었으니 괜시리 맘이 한편이 섭섭하고 울적해진다.

 

 

댓글 0

의견쓰기::상업광고,인신공격,비방,욕설,음담패설등의 코멘트는 예고없이 삭제될수 있습니다. (0/100자를 넘길 수 없습니다.)

[내 마음의 시] 생명의 은인
[내 마음의 시] 생명의 은인

박달 강 희종 (애틀란타문학회 총무) 사랑해요 여인같은아카시아 나무 전에는붉은 장미 속에서 선물을 넘치게  백합 꽃 향기진주 목걸이다이아몬드 반지 강물같은 그대호수같은  세월동안 

[애틀랜타 칼럼] 추수감사절 (Thanksgiving Day) 의미

이용희 목사 추수감사절은(Thanksgiving Day)은 1년 동안 추수한 것에 대해 가을에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는 개신교(기독교)의 기념일이다. 미국에서는 크리스마스와 더불어

[법률칼럼] 트럼프의 대량 추방대상

케빈 김 법무사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대규모 이민자 추방을 주요 공약으로 내세운 그의 이민법 집행 계획이 실제로 어떤 모습일지에 대해 논란이 커지고 있다. 트럼프 당선자는

[벌레박사 칼럼] 카펫 비틀 벌레 퇴치법

벌레박사 썬박 미국에 있는 대부분의 집들은 카펫이 깔려 있다. 카펫에서 나오는 벌레 중 많은 질문을 하는 벌레 가운데 하나가 바로 카펫 비틀(Carpet Beetle) 이다. 카펫

[행복한 아침] 자연의 가을, 생의 가을

김정자(시인·수필가)                                       단풍 여행을 떠나자는 권면을 받곤 했는데 어느 새 깊은 가을 속으로 들어섰다. 애틀랜타 가

[삶과 생각] 청춘 회억(回憶)

가을이 되니 생각이 많아진다. 그런 생각 중에서도 인생의 가장 치열한 시간은 대학입시를 준비하던 때인 것 같다. 입시를 앞 둔 몇 달, 마지막 정리를 하며 분초를 아끼며 집중했던

[데스크의 창] ‘멕시칸 없는 하루’ 현실화될까?

#지난 2004년 개봉한 ‘멕시칸 없는 하루(A Day Without a Mexican)’는 캘리포니아에서 어느 한 날 멕시칸이 일시에 사라졌을 때 벌어질 수 있는 가상적인 혼란을

[인사이드] 검사를 싫어하는 트럼프 당선인
[인사이드] 검사를 싫어하는 트럼프 당선인

말도 많고 탈도 많던 이번 대선에서 트럼프가 재선에 성공했다. 선거전 여론 조사에서 트럼프와 해리스가 연일 박빙의 구도를 보였으나 결과는 이를 비웃는 듯 트럼프가 압승을 거두어 모

[뉴스칼럼] 유튜브 채널의 아동착취

가족을 소재로 한 유튜브 콘텐츠가 적지 않다. 주로 부부가 주인공이다. 유튜브 부부는 경제적으로는 동업 관계다. 함께 제작하거나 동영상 촬영에 협력하면서 돈을 번다. 유튜브 채널이

[신앙칼럼] 차원 높은 감사(The High Level Of Gratitude, 합Hab. 3:16-19)

방유창 목사 혜존(몽고메리 사랑 한인교회) “나는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리로다”(합 3:18). 여호와, 하나님을 감사의 대상으로 삼는

이상무가 간다 yotube 채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