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윤숙(꽃길걷는 여인·쥬위시타워 보석줍기 회원)
아궁이 불을 지피는 모습은 이제 한국 민속촌이나 구석진 산 속 시골집에서나 볼 수 있을까? 내 어린 시절은 전쟁 후라 모두가 어렵고 힘든 때였다고 들었다. 가을부터 남자아이들은 학교 다녀온 후면 지게를 매고 산으로 향한다. 땔감을 지게에 가득 채워 동네에 들어서면 노을이 뉘엿뉘엿 저물어가기 시작하고 이집 저집 초가집 저녁 아궁이 불이 벌겋게 타오르면서 굴뚝에서는 보리와 감자를 삶는 구수한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난다. 허기진 배로 따뜻한 온돌방에 둘러앉아 찬 없는 밥이라도 가족이 오손도손 둘러앉아 밥을 먹으면 그 맛은 꿀맛이다. 늦은 저녁, 아궁이에서 다 탄 불을 화로에 옮겨 방으로 옮겨 윗풍을 따스하게 데우면서 고구마와 밤을 화롯불 속에 묻어 놓고 꾸벅꾸벅 졸다가 다 태워버리면 또 다시 구우며 긴긴 겨울밤을 지새우기도 한다. 사랑방에서 머슴 아재들은 밤새는 줄 모르고 눈을 비비며 이런저런 이야기로 담소를 나누면서 새끼를 꼬고, 새벽 동이 터 오르면 여인들은 머리에 흰 수건을 두르고 식구들이 추울 새라 아궁이에 불을 지펴 세숫물을 데우고 밥짓기를 시작하고 시래기 된장국 냄새는 온 식구들을 깨운다. 나는 데운 물을 바가지에 떠서 손가락으로 소금을 찍어 이를 닦고, 대야에 따스한 물을 부어 고양이 세수를 하고 하루를 시작한다. 가을 추수가 끝날 무렵에는 가을 추수걷이를 하면서 한 해 농사를 지켜주심을 감사하는 제사를 드리는데, 아궁이에 커다란 시루를 얹어 불을 지피고 팥시루떡을 찌면 나와 동생들은 큰 잔치를 하는 듯 좋아 폴짝거리고 집집마다 떡을 돌리는 심부름을 하면서 이웃 간에 정을 나누곤 하였다. 추수걷이가 지나면 김장이 시작된다. 땅 속에 커다란 항아리를 여러개 묻고 온 동네 사람들이 모여서 새 봄까지 먹을 김치, 동치미, 깍두기 등 여러 가지 김치를 담는 날에는 아궁이 가마솥에 돼지 고기도 삶고 한 쪽에 된장풀어 배춧국을 끓인다. 그 구수한 냄새에 차가운 몸이 훈훈해지고, 배추 쌈에 돼지머리 고기 맛은 지금도 잊을 수 없는 맛이다. 또 한해 농사지은 콩을 아궁이 가마솥에 오래 오래 삶아 메주를 만들어 긴 겨울 동안 메주를 띄운 후에 그걸로 봄에 간장, 고추장과 된장을 만들어 일년 동안 두고 먹는다. 그것 뿐인가 추수한 쌀로 아궁이에 밤새도록 엿을 고아 명절에 만든 산자와 콩엿은 겨울 간식으로 최고이다. 이렇듯 친근하게 우리 곁에 있던 고마운 아궁이가 이제는 찾기 어려운 옛 것이 되었으니 괜시리 맘이 한편이 섭섭하고 울적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