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은
누구도 이용할 수 없다
신문은
누구나 이용할 수 있다.
미주한국일보 현관에 높이 걸려있는 창간 발행인 백상 장기영 선생의 이 어록은 지난 반세기가 넘도록 한국일보의 춘추필법 정신을 지켜준 이정표였다.
‘신문은 누구도 이용할 수 없다’고 한 것은 외부로부터 신문의 독립과 자율을 선언함이요, ‘누구나 이용할 수 있다’고 한 것은 독자와의 소통과 개방을 천명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이같은 독립과 자율, 개방과 소통의 정신으로 한인사회와 동고동락해온 미주한국일보가 6월9일로 창간 51주년을 맞았다.
한국일보의 지난 51년은 영욕의 한인사회 반세기 역사와 다를 바 없다. 한인사회가 질적 양적 성장을 거듭해 나갈 때 한국일보는 기꺼이 마중물 역할을 마다하지 않았고, 한인사회가 아픔과 절망의 캄캄한 터널을 지날 때에는 처연히 희생의 횃불을 들었다. 반대로 한국일보가 긴 세월 온갖 풍상을 견디며 오늘 여기까지 온 것은 언제나 진정한 지지와 성원, 채찍과 질책을 아끼지 않았던 독자 여러분들의 덕이다. 심심한 감사를 드린다.
■위기 때마다 이겨낸 저력
모든 역사가 그렇듯 미주 한인사회도 굽이굽이 굴곡의 시기를 걸어왔다. 4.29 폭동 때는 피와 땀과 눈물로 일군 사업장이 하루아침에 잿더미로 변했고 전도유망했던 젊은이가 타운을 지키다 목숨을 잃는 아픔도 겪었다. 예고 없이 찾아온 지진과 산불의 천재지변으로 졸지에 재산피해를 입는 황망함도 있었다.
그러나 우리는 다시 일어섰다. 세계적인 상업의 거리 윌셔가는 한인 간판으로 물결을 이루었고 미국 제2의 도시 LA의 시의원을 두 명이나 탄생시켰다. 연방하원의원과 주 상하원의원, 수퍼바이저를 배출했으며 올 11월 선거에 새로 2명의 연방하원의원 탄생도 눈앞에 두고 있다. 한인들의 저력이 아니고서는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우리는 또 다시 혼돈과 시련의 위기를 맞고 있다. 코로나19 사태로 한인 뿐만 아니라 전 세계인이 고통을 받고 있다. 미증유의 전염병 사태다. 코로나19가 중국에서 발생했다는 이유로 아시안 차별 분위기도 일고 있다. 이민자의 나라 미국의 정체성이 의심받고 있다. 아메리칸 드림을 이룬 성공한 아시안들에 대한 질투와 두려움이 작용하고 있는 듯하다. 이에 더해 경찰관에 의한 흑인 사망사건으로 온 미국이 몸살을 앓고 있다. 이제 인종차별은 종말을 고해야 한다. 사람은 인종이나 피부색, 성, 언어, 종교 등 어떤 이유로도 차별받아서는 안된다. 이 진리는 이 시대에 해결해야 할 과제이자 사명이다. 우리 한인사회도 이같은 반 인종차별의 숭고한 대의를 외면하지 말고 다민족과 힘을 합쳐 세상을 바꾸는데 동참해야 한다.
■인내와 도전의 오뚝이 정신
새로운 인내와 도전이 필요할 때다.
한국일보 창간일의 6자와 9자는 쓰러지면 또 일어나는 오뚝이 정신이다. 이는 우리 한인 이민자들의 정신과도 통한다. 한국일보는 한인 특유의 근면과 개척정신의 불쏘시개가 될 것이다. 코로나19 사태 이후 산업과 생활환경도 크게 변하게 될 것이다. 지금까지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세상이 펼쳐질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이에 미주 한국일보는 51주년을 맞아 새 시대가 필요로 하는 언론의 사명을 다하며 불투명한 미래의 향도 역할을 기꺼이 수행할 것을 다짐한다.
첫째, 새 시대의 언론은 정론직필의 올곧은 보도와 언제 어디서든 펼쳐볼 수 있는 전자신문시대의 완전한 개막이다. 이미 토요일자 신문을 전자신문으로 대체하며 전자신문시대 개막을 선언한 미주한국일보는 한인사회 처음으로 공간의 장벽을 넘어 모든 한인들이 참여할 수 있는 웨비나(웹세미나) 개최도 발표했다. 아무도 가지 않은 미지의 길은 도전정신 없이는 불가능하다. 그것이 한국일보의 개척정신이다. 살아있는 뉴스, 가까이 있는 뉴스로서의 사명을 다해나갈 것이다.
■한인 정치력 향상의 디딤돌
둘째, 한인들의 권익과 위상을 위한 역할을 잊지 않을 것을 다짐한다. 이민자로서의 권익과 위상을 위한 첫 단추는 정치력 향상이다. 새 시대의 첫 선거인 오는 11월 선거가 중요한 이유다. 올 선거에는 이민사 120여년 만에 가장 많은 한인들의 미 주류 정계 진출 희망이 보이고 있다. 미주한국일보는 한인사회의 성원과 후원을 결집해 그들의 미 정계 진출 디딤돌 역할을 충실히 해 나갈 것이다.
셋째, 불투명한 한인 경제를 살리는 장터 역할을 다짐한다.
세계와 미국 경제가 한 치 앞을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안개속이다. 경기침체나 불황의 차원이 아니다. 1970년대 엘빈 토플러가 명명한 ‘제3의 물결’로 시작된 3차 산업혁명이후 정확히 반세기만에 4차 산업혁명이 본격화됐다. 비대면 산업과 온라인 거래가 주류를 형성하고 인공지능(AI)이 인간의 노동력을 대체하고 있다. 불확실성 시대다. 앞으로 우리가 걸어가야 할 길이다. 미주한국일보는 지난 반세기 동안 ‘잘 사는 한인사회’라는 기치를 걸고 뛰어 왔다. 이제 4차 산업 혁명시대를 맞아 급변하는 경제 환경을 파악하고 필요한 생활정보를 전달하는 경제 장터 역할을 다해나갈 것이다.
반세기의 높고 험한 봉우리를 지나온 미주한국일보는 겸허한 자세로 다시 옷깃을 여민다. 그리고 어제의 영광과 보람에 안주하지 않고 한인사회 동반자로서의 사명과 역할을 다해 나갈 것을 다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