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머스 연방 대법관 폭로보도 뒤늦게 시인
미국에서 가장 높은 수준의 지성과 도덕성을 요구받는 연방 대법관이 출장 및 여행 때 억만장자로부터 공짜로 자가용 비행기를 제공받은 사실을 뒤늦게 인정했다. 이에 따라 연방 대법관의 윤리 문제가 다시 도마에 오를 것으로 예상된다.
31일 공개된 클래런스 토머스(75·사진·로이터) 대법관의 연례재정공개보고서에 따르면 그는 작년 텍사스의 부동산 사업가 할런 크로가 제공한 자가용 비행기를 타고 텍사스주 달라스를 오간 사실을 밝혔다고 로이터 통신과 폴리티코 등 매체들이 보도했다.
토머스 대법관은 지난 2022년 5월 달라스에서 보수 성향 싱크탱크 미국기업연구소(AEI)가 주최한 컨퍼런스에 기조연설자로 참석하면서 크로가 제공한 비행기를 탔다고 소개하고, 그때 크로가 비행기 이동 및 식사 비용을 부담했다고 밝혔다.
토머스 대법관은 당시 ‘신변 안전’ 문제 때문에 자가용 비행기 편으로 왕래했다고 해명했다. 작년 5월 대법원이 연방 차원의 낙태권을 인정한 기존의 ‘로 대 웨이드 판례’를 뒤집을 것이라는 판결 초안 내용을 폴리티코가 보도하면서 자신의 신변 안전에 불안 요인이 생기자 자가용 비행기를 썼다는 설명이다.
토머스 대법관은 또 작년 2월 역시 달라스에서 열린 AEI 컨퍼런스에 참석했을 때도 크로가 식사와 자가용 비행기를 제공했다고 밝혔다. 이 때는 예상치 못한 악천후 때문에 자가용 비행기를 제공받은 것이라고 해명했다. 또 같은 해 7월 뉴욕주의 애디론댁 산지를 여행했을 때도 크로의 도움으로 자가용 비행기를 무료 이용했다고 밝혔다.
토머스 대법관은 최근 비영리 인터넷 언론 ‘프로퍼블리카’의 관련 폭로 보도가 있자 뒤늦게 이 같은 사실을 공개했다. 프로퍼블리카는 토머스 대법관이 지인들로부터 바하마 요트 크루즈를 비롯해 최소한 38회 여행을 제공받았다고 폭로했는데, 당사자가 그 의혹의 일부를 시인한 것이다.
미국에서 판사는 업무상 관계있는 사람으로부터 선물을 받지 못하게 돼 있지만, ‘개인적 호의’에 따른 선물은 예외적으로 허용되는데 그 예외의 범위가 명확히 규정되지 않은 점이 법망의 ‘구멍’이라는 지적이 제기되어 왔다.
1948년생인 토머스 대법관은 1991년 조지 H. W. 부시 당시 대통령의 지명을 받아 대법관으로 취임했으며 현직 대법관 중에서 가장 보수적 색채가 강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미국 역사상 두 번째로 임명된 흑인 대법관이자 현재 연방 대법원 최선임인 그는 작년, 대법원이 낙태권을 보장한 ‘로 대 웨이드’ 판결을 폐기한 뒤 동성혼과 피임 등과 관련한 기존 대법원 판례도 재검토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히기도 했다.
아울러 토머스 대법관에게 자가용 비행기 등을 제공한 크로는 공화당의 거액 기부자라는 사실도 부적절성 논란을 키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