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 에이전트가 최대의 위기를 맞고 있다. 주택 거래 감소와 심각한 매물 부족으로 지난해부터 거래 성사율이 뚝 떨어졌다. 성사된 거래가 준다는 것은 곧 에이전트의 수입 감소를 의미한다. 수수료 수입은 크게 줄었지만 치솟은 물가는 떨어지지 않아‘투잡’, 심지어‘쓰리잡’에 나서는 에이전트도 있다. 경제 전문지 비즈니스 인사이더가 주택 시장 둔화로 고충이 이만저만이 아닌 부동산 에이전트 현실을 조명했다.
적은 매물 놓고 치열한 경쟁에서 살아남아야
수수료 수입 감소로‘투잡’뛰는 에이전트 많아
◇ ‘쓰리잡’ 뛰어도 에이전트 포기 못 해
부동산 에이전트 크리스티나 아놀드가 그녀의 첫 거래를 성사시킨 것은 불과 4달 전인 작년 12월. 주택 시장 둔화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던 시기지만 생애 첫 거래를 마친 아놀드는 부동산 에이전트로서 성공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충만했다. 4개월이 지난 현재 그녀는 가까스로 얻은 기회를 통해 두 번째 거래를 진행 중이다.
아놀드가 거래 성사로 받은 수수료 금액은 더욱 초라하다. 첫 번째 거래를 통해 받은 수수료는 고작 600달러. 현재 진행 중인 거래를 성사하면 이보다 조금 더 많은 2,300달러를 받게 된다. 그녀가 활동하는 지역의 주택 가격이 낮아 수수료도 타지역에 비해 상대적으로 낮기 때문인데 소속 부동산 회사와 수수료를 분배하면 손에 쥐는 금액은 쥐꼬리만도 못하다.
생활비로는 턱없이 부족한 수수료 수입에 낮에는 피자 배달, 밤에는 식당에서 일하며 ‘쓰리잡’을 뛰는 아놀드는 에이전트라는 직업을 포기할 계획은 꿈에도 없다. “소득이 불안정한 것은 단점이지만 어느 정도 경력이 쌓이면 괜찮아질 것”으로 믿는 아놀드는 “유동적인 근무 시간이 가장 매력적”이라며 에이전트로서 성공을 다짐하고 있다.
◇ 새내기 에이전트 1년 수입 8,800달러
이처럼 최근 초라한 성적표를 손에 쥔 에이전트는 아놀드뿐만 아니다. ‘전국부동산중개인협회’(NAR)의 조사를 보면 2021년 경력 2년 미만의 새내기 에이전트가 집으로 가져간 수수료 수입(중위 금액)은 8,800달러에 불과하다. 한 달 평균 약 733달러 불과한 금액으로 한 달 생활비로는 턱없이 부족한 수입이다.
녹록지 않은 에이전트의 현실에도 불구하고 성공의 꿈을 안고 부동산 업계에 뛰어드는 에이전트 숫자는 눈덩이처럼 불었다. 주택 시장에 이른바 ‘팬데믹 붐’이 일었던 2020년과 2021년에만 무려 15만 6,000명이 신규 에이전트가 자격증을 취득했다. NAR에 따르면 2021년 10월 등록 에이전트 수는 약 160만 명을 넘어 사상 최고치를 기록하기도 했다. 주택 시장에 주택 구입 수요가 넘쳐나 자고 일어나면 집값이 치솟던 시기다.
자격증만 따면 마치 성공이 보장된 것처럼 여겨지던 시기였지만 이제 사정은 180도 바뀌었다. 주택 거래가 감소하고 매물 부족 현상은 심화하면서 눈덩이처럼 숫자가 불어난 에이전트들은 서로 치열한 경쟁 상대가 됐다. 자격증 취득과 고객 확보를 위해 투자한 비용과 시간을 보장받을 수 있을지도 불투명한 현실로 에이전트 명함을 유지해야 할지 고민만 늘고 있다.
◇ 2006년~2008년 상황 반복
직전 주택 시장 침체가 발생한 2008년에도 부동산 업계에 지금과 거의 비슷한 현상이 있었다. 2대째 부동산 에이전트로 활동하는 제시카 레인하트는 부동산 에이전트 자격증을 딴 2005년 업계 상황을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집값이 폭등을 거듭하자 너도나도 주택 구입에 나서던 해로 주변 한 사람만 건너면 부동산 에이전트를 쉽게 만날 정도로 에이전트 숫자가 불던 시기다.
2008년부터 시작된 사상 최악의 주택 시장 침체를 견뎌낸 레인하트는 현재 덴버 메트로 부동산 중개인협회 대표직을 맡고 있다. 협회 소속 에이전트 숫자가 주택 시장 둔화가 시작되기 직전인 지난해 9월 9,500명까지 불어나 한 달에 한 번 열던 신입 에이전트 오리엔테이션이 두 번으로 늘었다.
그런데 불과 6개월도 안 되는 사이 많은 에이전트가 협회를 탈퇴하면서 협회는 오리엔테이션을 다시 한 달에 한 번으로 줄였고 예산도 10%나 줄일 예정이다. 레인하트 에이전트는 “2006년과 2007년에도 똑같은 현상을 겪었다”라며 “앞으로 에이전트 숫자가 더욱 줄 것으로 알고 있다”라고 내다봤다.
◇ 거래량 줄면 업계 떠나는 에이전트 많아져
주택 시장이 호황과 불황을 거듭하며 순환하듯 에이전트 숫자도 주택 시장 경기에 크게 영향을 받는다. 주택 시장이 사상 최대 호황을 구가하던 2006년 한 해에만 약 10만 명의 신규 에이전트가 NAR 회원에 이름을 올렸고 그해 NAR 등록 에이전트 수는 약 140만 명으로 사상 최고치를 찍었다. 얼마 안 가 주택 시장 거품이 꺼지고 주택 시장이 장기 침체에 돌입한 2012년 초 NAR등록 에이전트 숫자는 96만 4,000명으로 급감했다.
지난해에도 당시와 비슷한 현상이 재현됐다. 10월 160만 명까지 불었던 에이전트 숫자가 이후 5개월 연속 감소하기 시작했고 현재까지 약 7만 4,000명이 부동산 업계를 떠난 상태다. 로렌스 윤 NAR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고난의 시기’를 거치며 에이전트 수가 감소할 수밖에 없음을 인정하고 있다. 윤 이코노미스트는 “부동산 중개 업계는 경쟁이 고객 확보를 놓고 치열한 경쟁이 펼쳐지는 업계”라며 “수요 감소로 주태 거래가 줄면 경쟁에서 뒤처진 에이전트는 업계를 떠날 수밖에 없다”라고 비정한 업계 현실을 전했다.
◇ 매물 부족에 에이전트 일 두 배로 늘어
모기지 이자율 급등이 주택 수요에 영향을 미치기 전부터 부동산 중개 업계에는 이미 여러 고충이 존재했다. 주택 공급 부족 현상이 장기간 이어지면서 주택 시장에 심각한 매물 수급 불균형 현상이 나타났고 사상 유례없이 치열한 주택 구입 경쟁에 바이어는 물론 에이전트도 시달려야만 했다.
특히 첫 주택 구입자를 돕는 에이전트의 고충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새 매물이 나오자마자 여러 명의 바이어가 몰려 내 집 마련은 그야말로 하늘의 별 따기보다 더 힘들었다. 에이전트는 매물 찾기 혈안이 된 것은 물론이고 시도 때도 없이 바이어를 대동하고 집을 보여줘야 했고 다른 바이어와의 경쟁에서 번번이 실패한 에이전트는 수십 건이 넘는 오퍼를 작성하는 사례도 빈번했다.
<준 최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