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인관계 창고서 목매
지난 해 LA 카운티에서 20대 한인 여성이 자살했다. 하지만 가족들은 타살 가능성을 주장하고 나섰다. 자살할 이유가 없을 뿐더러 수사 과정이 미흡하고 의심스러운 정황도 많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가족들은 경찰측에 재수사를 의뢰하기 위해 피해자에 대한 부검까지 요청한 상태다.
지난 해 10월13일 LA 인근 플로렌스-그레이엄 지역의 한 건물(8820 Miner Street, LA)에서 성인 여성 1명이 목 매달아 자살했다는 내용의 신고 전화를 받고 소방국이 현장 출동했다. 현장에 도착한 응급요원들은 목 앞부분에 멍이 있고 의식이 없는 채로 바닥에 눕혀져 있는 성인 여성을 발견하고 심폐소생술을 시행했지만 살려낼 수 없었다. 사망자는 1998년생으로 당시 24세였던 한인 이선영씨로 확인됐다.
LA카운티 셰리프국 보고서에 따르면 당시 사건 현장에는 이선영씨와 연인 사이였던 40대 한인 남성 A씨가 있었고, 사건이 벌어진 창고 건물은 A씨의 사업장이자 거주지였다. A씨는 셰리프국 요원들에게 당시 상황을 다음과 같이 진술했다. (이하 주요 내용 요약)
“우리 둘은 이 건물에 있는 침실에서 두 사람의 관계에 대해 얘기를 나눴다. 내가 먼저 헤어지자고 말했다. 선영이는 만약 헤어지면 자살할 것이라고 했다. 얼마 후 선영이가 계단 난간에 샤워기 호스로 목을 매 자살을 시도한 장면을 목격하고 급히 달려가 호스를 풀었다. 선영이를 계단 아래로 끌고 내려가 심폐소생술을 실시했다. 직원에게 전화를 걸어 도움도 요청했다. 영어를 잘 못했던 나 대신에 현장에 달려 온 직원이 911에 신고했다.”
A씨측 주장에 따르면 자신의 이별 통보에 이선영씨가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는 것이다. 셰리프 당국은 A씨의 이같은 진술과 함께 외관상 목 외에는 다른 곳에 상흔이 없고 현장에 타살을 의심할만한 요소가 없었다는 이유로 자살로 잠정 결론냈다.
그러나 숨진 이선영씨 가족들은 이에 동의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자살이 아닌 타살 가능성이 농후하다는 것이다.
이선영씨의 어머니 리사 박씨는 “선영이는 평소 성격이 밝고 복용하는 약이나 우울증과 같은 정신적 문제도 없는 앞날이 창창한 24세 여성이었다. 40대 중반의 남성과 만나다 헤어졌다고 해서 자살을 할 아이가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납득할 수 없는 것은 이러한 이유 뿐만이 아니다”라고 박씨는 입을 열었다.
박씨에 따르면 현장에는 이선영씨 외에 A씨와 직원 2명 밖에는 없었고, 최초 대응한 응급요원들이 발견한 시신은 목을 매단 상태가 아니라 바닥에 눕혀져 있었다. 박씨는 “현장에 실시간 녹화되는 감시 카메라(CCTV)가 있었지만 초동 수사 과정에서 경찰이 전혀 확인하지 않았다. A씨의 진술만 믿고 목 외에는 외관상 상흔이 없다는 이유로 자살로 결론 내 버렸다”고 항변했다.
박씨는 이어 “심지어 CCTV 영상은 무슨 이유에서인지 수개월이 지난 지금까지도 우리 가족들이 볼 수 없는 상황이며 A씨와는 연락도 되지 않는다”고 하소연했다. 실제로 당시 사건 보고서에는 경찰이 CCTV 영상을 확인했다는 내용은 없었다. 나중에서야 CCTV 영상을 확인한 경찰은 타살로 볼 수 있는 내용이 없었다고 밝히긴 했지만, 여전히 이선영씨 가족이 직접 확인하지는 못하고 있다.
박씨는 “현장을 직접 가보니 자살이 쉽지 않아 보였다”고 말했다. 박씨는 “답답한 마음에 직접 실험해 보기도 했는데 샤워기 호스로 계단 난관에 혼자서 목을 감아 매고 숨이 넘어갈 때까지 그대로 있는다는 것은 쉽지 않다. 목 매단 위치도 그리 높지 않았고 얼마든지 딛고 내려올 수 있는 박스들이 주변에 있었다”고 전했다.
LA한인회도 이선영씨 사건에 대한 적극적인 검토와 협조를 셰리프국에 의뢰했다.현재 이선영씨 케이스는 가족들의 요청에 의해 셰리프국 살인사건 부서로 넘어갔다. 하지만 검시국 기록에는 23일 현재 사인이 자살로 명시돼 있다.
박씨는 “갑작스런 큰 딸의 사고에 가족들은 아직도 잠을 제대로 이루지 못하고 시도때도 없이 찾아오는 분한 마음에 고통속에 살고 있다”고 울먹이며 말했다. 이어 “사랑하는 딸을 갑자기 잃은 것에 더해 경찰과 A씨의 태도에 더욱 상처를 받았다”면서 “한 줌의 의혹도 남지 않게 수사가 제대로 이뤄지길 바라는 마음”이라고 호소했다.
<한형석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