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이 시간에도 누군가 목숨을 끊는다. 시간당 1.5명, 하루 평균 38명이 극단적인 선택을 한다.
한국생명존중희망재단 자료에 따르면, 2019년도 한 달 평균 극단적인 선택으로 사망한 사람은 1,150명, 이로 인해 사망한 사람은 연간 1만3,799명이다.
이 때문에 우리나라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자살률 1위라는 불명예를 안고 있다. 10만 명당 자살률은 24.6명으로 OECD 평균(11.0명)의 2배가 넘는다.
우리나라 다음으로 △리투아니아(21.6명) △슬로베니아(16.5명) △벨기에(15.9명) △일본(14.7명) △미국(14.5명) 순으로 자살률이 높다.
자살은 정신 건강 문제(34.7%)가 가장 큰 원인이다. 경제생활 문제(26.7%), 육체적 질병 문제(18.8%), 가정 문제(8.0%), 직장이나 업무 문제(4.5%) 등이 그 뒤를 이었다.
이강준 인제대 일산백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우울증은 부정적이고 비관적인 생각에 몰입하는 왜곡된 인지를 갖게 한다”며 “자신을 무능하고 열등하며 무가치한 존재로 여겨 자기 비하적인 생각을 하고 결국 자살 생각을 들게 만든다”고 했다.
이 교수는 “신경전달물질인 세로토닌이 결핍되면 충동 조절이 안 돼 자살 위험이 높아질 수 있다”며 “심리적 원인도 중요하지만 생물학적 원인도 간과하지 말고 약물 치료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절망감ㆍ자기 비하 표현은 자살 징후
“죽고 싶다”는 말을 평소와 달리 자주하면 자살 징후일 수 있다. “더 이상 사는 것이 의미가 없어” “유일한 해결책은 내가 죽는 거야” 같은 말도 위험하다.
“나는 이제 가망이 없어”와 같은 절망감을 표현하기도 하고 “불안하고 초조해서 아무것도 못 하겠어” 같이 불안 초조증을 심하게 나타내기도 한다.
또 “내가 없어지는 것이 훨씬 낫겠어” “나는 아무짝에도 쓸모 없어” 같은 자기 비하 표현도 위험 징후다.
행동이나 표정에 변화가 생겨도 주의 깊게 살펴야 한다. 평소 아끼던 물건을 주변 사람에게 나눠 주거나 주변 사람과 관계를 단절하거나 대화를 피하는 등 이상 징후를 보일 수 있다.
다른 사람 몰래 약을 사 모으거나 위험한 물건을 감추는 행동, 표정이 없이 우울 증상을 보이는 것도 자살 징후일 수 있다.
이 교수는 “오랫동안 침울하던 사람이 뚜렷한 이유 없이 갑자기 평화스럽게 보이거나 즐거워 보이는 등 태도가 변하는 행동도 위험한 징후일 수 있다”며 “자살을 결정하면 오히려 차분해질 수 있어 한번 더 주의 깊게 살펴봐야 한다”고 했다.
◇논쟁ㆍ충고 피하고 경청ㆍ공감해야
자살 징후를 보일 때 논쟁이나 충고, 훈계는 피해야 한다. “자살 같은 생각은 하지 말아라” “네 부모님은 생각 안 하니?” 같은 말은 고통스러운 감정을 악화시킬 뿐 도움이 되지 않는다.
자살 징후를 보이는 사람 말에 경청하고 공감하는 것이 자살 예방에 도움 된다. 듣는 과정에서 구체적인 자살 계획에 대한 정보를 알 수도 있다. 얼마나 위기에 처해 있는지도 파악해 도움을 줄 수 있다.
이 교수는 “자살을 생각하는 사람은 누구도 나를 이해하지 못하거나, 얘기해도 소용없다고 생각하기에 마음을 잘 열지 않는다”며 “그들의 말을 잘 들어주는 것만으로도 자살 예방에 큰 도움이 될 수 있다”고 했다.
◇혼자 있는 시간 줄이고 충분히 잠자야
자살 예방을 위해선 평소에 불안과 우울감을 줄이고 잠을 푹 잘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우울한 기분이 들 때는 운동ㆍ산책ㆍ일기 쓰기ㆍ명상 등이 도움이 된다. 되도록 혼자 있는 시간은 줄인다. 속에 담아둔 힘든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친구도 도움이 된다.
불안 우울감이 계속되면 적극적으로 상담이나 약물 치료를 받는 게 좋다. 만약 자살 위기가 닥친 위급한 상황이라면 지역에서 운영하는 ‘자살예방센터’에서 도움을 받을 수 있다.
이 교수는 “자살은 우울감뿐만 아니라 순간적인 충동으로도 일으키기에 기분과 충동이 잘 조절되지 않고 괴롭고 힘들다면 혼자 해결하려고 하지 말고 주변에 도움을 구하거나 정신건강의학과를 찾아 상담하고 약물 치료를 받는 것이 좋다”고 했다.
그는 “심리적인 스트레스, 성격, 주변 환경뿐만 아니라 생물학적인 이유로도 자살할 수 있기에 원인을 파악해 마음을 조절할 수 있는 적절한 치료를 받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권대익 의학전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