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앙은 '심근 세포'…쉬지 않고 뛰면서 돌연변이 축적
에너지 대사 부산물 '활성 산소' 증가→DNA 손상 쌓여
미국 보스턴 아동병원 연구진, '네이처 에이징'에 논문
국내 질병 사망 1위는 암이다. 하지만 세계적으로는 심혈관 질환이 압도적인 1위다.
국내에서도 평균 수명이 늘고 생활 습관이 서구화하면서 심혈관 질환 환자가 상당히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심혈관 질환은 대략 심근경색, 협심증, 동맥경화, 고혈압, 부정맥, 선천성 심장병 등 6가지다.
과학자들은 심혈관 질환을 일종의 노화 질환으로 본다.
보통 혈압과 콜레스테롤 수치가 높으면 심혈관 질환 위험도 커지는 것으로 알고 있다.
하지만 이것만 갖고는 노화와 심혈관 질환의 연관성을 명확히 설명하기 어렵다.
나이가 들면 왜 심혈관 질환 위험이 커지는 걸까.
그 직접적 원인이 심장 근육 세포(cardiomyocyte)의 돌연변이 축적에 있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이렇게 돌연변이가 늘어난 심근 세포는 손상된 DNA를 복구하는 능력도 상실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미국 보스턴 아동병원 과학자들이 수행한 이 연구 결과는 11일(현지 시각) 저널 '네이처 에이징'(Nature Aging)에 논문으로 실렸다.
연구팀은 첨단 생물정보학 기술과 분석 기법을 동원해 56점의 심근 세포 샘플을 놓고 전체 염기서열 분석을 진행했다.
세포를 제공한 환자의 사망 시점 나이는 유아기부터 82세까지였다.
하지만 심장병과 연관된 원인으로 사망한 경우는 일단 모두 제외했다.
각 세포의 체세포 돌연변이(somatic mutation), 즉 유전되지 않은 돌연변이를 비교해 심장병 메커니즘을 설명할 만한 돌연변이 패턴이 있는지 탐색했다.
지금까지 인간의 심장에서 단일 세포 수준의 체세포 돌연변이를 관찰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심근 세포를 채취한 기증자의 나이가 많을수록 DNA의 '단일 뉴클레오타이드 변이'(single-nucleotide variant)도 많이 발견됐다.
이런 돌연변이 패턴은 산화 손상으로 인한 변이가 다수일 때 나타나는 것이다.
보스턴 아동병원의 심장병 학자인 첸밍후이 박사는 "쉬지 않고 뛰는 심장은 많은 에너지가 필요하다"라면서 "이때 부산물로 나오는 활성 산소의 수위가 너무 높으면 DNA를 손상할 수 있다"라고 설명했다.
설상가상으로 이렇게 생긴 돌연변이는 정상 세포가 손상된 DNA를 고칠 때 쓰는 복구 경로를 교란했다.
실제로 활성 산소의 DNA 손상이 도를 넘으면 이 메커니즘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
나이가 들면 세포의 DNA 복구 메커니즘도 고장 난다는 걸 시사한다.
논문의 공동 교신저자인 크리스토퍼 월시 박사는 이번 연구에 결정적으로 기여한 '단일 세포 유전체 전장 분석'(single-cell whole genome sequencing)과 생물정보학 분야의 개척자로 꼽힌다.
최근엔 알츠하이머병 환자의 뇌 신경세포(뉴런)에 어느 정도 돌연변이가 생겼는지 확인하는 방법을 공개하기도 했다.
심장 세포처럼 계속해서 분열하지 않는 세포는 대개 돌연변이가 잘 생기지 않는다.
그런데 심근세포는 계속 분열하는 세포와 거의 같거나 오히려 더 빠르게 돌연변이를 축적했다.
심근 세포의 돌연변이 축적 속도는, 똑같이 계속 분열하지 않는 세포 유형인 뇌 뉴런의 3배나 됐다.
심근 세포의 돌연변이는 DNA 복구 경로뿐 아니라 세포 골격과 관련된 유전자에도 나쁜 영향을 미쳤다.
첸 박사는 "나이가 들면서 심근 세포의 돌연변이가 늘어나다가 임계점을 넘어서면 심장에 병이 생긴다"라면서 "DNA 손상이 쌓여 심장이 더는 제대로 뛰지 못하게 되는 것"이라고 부연했다.
연구팀은 이번에 심근 세포의 단일 뉴클레오타이드 변이만 살펴봤다.
DNA의 잘못된 염기 삽입이나 염기 결손과 같은 다른 유형의 돌연변이가 얼마나 있는지는 모른다는 뜻이다.
심근 세포의 돌연변이가 심장병과 어떻게 직접 연관되는지도 확인하지 못했다.
심장병과 무관한 환자의 심근 세포만 실험했기 때문이다.
연구팀은 노화 과정에서 다른 유형의 심장 세포에 어느 정도 돌연변이가 생기는지 확인할 계획이다.
심장병이 있는 암 환자에 대한 연구 계획도 잡혀 있다.
연구팀은 이번 연구 결과를 '빙산의 일각'으로 보고 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