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유창 목사(몽고메리 사랑 한인교회)
<디스토피아(Dystopia)>란 말은 존 스튜어트 밀의 의회 연설에서 처음으로 등장한 단어입니다. 존 스튜어트 밀은 <디스토피아(Dystopia)> 는 “나쁜 장소”를 가리키는 말로서, 그리스어 <Dys(나쁜)>와 그리스어 <Topos(장소)>가 결합된 말이라 소개합니다. <디스토피아>를 단적으로 말하면, <역(逆) 유토피아, 안티 유토피아>를 가르킵니다. 저자 요한의 메시지에 나오는 “은혜 위에 은혜”는 이 <역(逆) 유토피아> 가 아닌 <정(正) 유토피아>, <순(順) 유토피아>를 대변하는 예수 그리스도의 강력한 메가 파워를 가진 말씀입 니다(요1:16). 영성 신학자, 존 마크 코머(John Mark Comer)는 <디스토피아 시대의 원흉>을 <만성적 바쁨>이라 했습니다. 바빠서 관심(Attention)을 가질 수 없는 <은혜 예수 그리스도가 이끄시는 유토피아> 즉, <천국>에 무관심한 시대를 예리한 영적 통찰력으로 밝혀냈습니다. “지금, 우리의 모습에서 <은혜 예수의 유토피아>가 보입니까?” 만일에 오늘날, 이와 같은 질문을 개개인의 크리스천들이 받는다면, 십중팔구, <충격적인 질문>일 것입니다. 예수님의 출현이 이미 도래한 당시의 시대적 상황에서 유대인들이 가장 거부하는 사건이 그들 앞에 도래하였습니다. 예수님을 거부하고 있는 유태인들의 <역(逆) 유토피아>의 사상을 추종했던 당시의 유대인들이나 오늘 21세기의 현대인들의 공통점은 <순(順) 유토피아>가 아닌 <안티 유토피아>에 해당하는 를 원하면서도 를 거부하는 모순에 빠져 있습니다.
본문의 말씀은 사도 요한이 오늘 메시지 속에서 증언하고 있는 <세례 요한의 메시지>의 핵심은 당시 사회 안에 팽배하는 <모세의 율법시대의 종결>을 의미하는 센세이션이 찾아 온 것입니다. “말씀”이라는 주체는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1:17, 17:3, 20:31, “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라”). 이 “말씀”이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키는 것이라고 선포한 사도 요한의 메시지 자체가 강력한 혁명과도 같은 말씀입니다. 학자들의 연구에 의하면, “말씀이 육신이 되어”가 곧 <예수>님을 가르킨다는 것을 마태복음에서 150번, 마가복음에서 81번, 누가복음에서 89번, 합계, 237번을 사(四) 복음서 안에서 사용하고 있습니다. 신약 39권 전체 안에서는 905번 사용하고 있습니다. 사도 요한은 오늘 본문 1:17, 17:3, 20:31에서 <순(順) 유토피아, 정(正) 유토피아>의 주체가 되시는 분은 <예수 그리스도>라 선포하고 있습니다. <디스토피아 시대의 은혜 예수>가 원하시는 <마음의 변화>를 <은혜 위의 은혜>라 말씀하고 있습니다(1:16). 인도의 마하트마 간디는 분명 인도의 정신혁명의 지도자입니다. 오늘의 크리스천은 이 시대의 정신혁명의 지도자가 되어야 합니다. 요한복음 1:15~18의 하이라이트가 증명하는 말씀은 요1:18입니다. “본래 하나님을 본 사람은 없으되 아버지 품 속에 있는 독생하신 하나님이 나타내셨느니라.” 1장은 요한복음 전체의 서론입니다. 이 서론이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로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요한복음의 저자 요한이 주고자 하는 메시지의 핵심은 <예수님을 보면 하나님이 보인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오늘 우리에게 적용해보면, “크리스천을 보면 예수님이 보인다” 지금 이 시대는 예수님께서 직접 현장에 출현하셔서 역사하시는 시대가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는 성령님이 역사하시는 시대>입니다. 그래서, 세상의 믿지 않는 불신자나, 세상에 믿는 신자나 할 것 없이 예수님을 눈으로 볼 수 있는 유일한 통로는 바로 “크리스천”입니다. “은혜 위에 은혜”는 <끊임없는 은혜, 지속적인 은혜>입니다. “은혜 위에 은혜”는 <디스토피아(Dystopia)시대의 은혜 예수>를 선포하는 핵심사상입니다. <만성적 바쁨>으로 인하여 천국을 부정하고, 천국에 무관심하고, 천국에 역행하여 살아가는 현대인들의 모습은 <디스토피아의 원형 그 자체>입니다. 바쁜 것은 축복이 아니라, 자신을 지옥으로 몰아가는 <영적 유토피아의 최대 적(敵)>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