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든글로브가 결국 외국어 영화를 작품상 후보에 올리기로 했다.
골든글로브 시상식을 주관하는 할리웃외신기자협회(HFPA)는 지난달 30일 외국어 영화와 애니메이션을 앞으로 작품, 감독, 연기상 후보에 포함한다는 새 규정을 발표했다. 부정부패 등 여러 의혹으로 존폐 위기에까지 내몰린 골든글로브가 특히 올해 초 시상식에서 ‘미나리’를 외국어 영화로 분류하면서 일어났던 거센 논란과 비판을 수용한 결정으로 보인다.
할리웃외신기자협회의 알리 사르 회장은 이날 성명에서 “우리의 가이드라인을 재검토하고 업계 의견을 청취한 결과 자격이 있는 영화들이 그에 걸맞은 주목을 받을 수 있도록 새로운 접근법을 채택하기로 결정했다”라며 “최고로 인정받는 데 언어는 더 이상 장벽이 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외국어영화를 작품상 후보에 올리고 비영어권 영화가 드라마 부문이나 뮤지컬·코미디 부문에서 최고의 작품상을 받을 수 있게 규정을 바꾼 것이다. 바뀐 규정에 따르면 영화 부문 뿐만 아니라 TV 시리즈 역시 미국 밖에서 제작된 TV 프로그램이라도 미국 파트너사와 공동 제작할 경우 자격이 주어진다.
HFPA의 이번 발표와 관련, AFP는 평단의 찬사를 받았던 ‘미나리’가 올해 골든글로브 시상식에서 작품상 등이 아닌 ‘외국어 영화상’을 수상한 데 대해 격한 비판이 쏟아졌던 점을 들었다. 실제 ‘미나리’는 지난해 말 HFPA가 이 작품을 ‘외국어 영화상’ 후보로 분류하면서부터 ‘홀대’ 논란이 불거졌다. 당시 각종 국제 영화제에서 상을 휩쓴 ‘미나리’는 한인 정이삭 감독이 연출하고 배우 브래드 피트가 설립한 제작사 ‘플랜B’가 제작한, 이야기의 배경도 미국인 ‘미국 영화’이지만 대사가 주로 한국어라는 이유로 ‘외국어 영화’로 분류된 것이다.
HFPA는 대사의 50% 이상이 영어가 아닌 경우 외국어 영화로 분류한다는 규정을 두고 있었다. 같은 이유로 지난해 초 영화 ‘기생충’도 골든글로브에서 외국어 영화로 분류돼 수상했다. 또, 골든글로브 운영진 내부의 부정부패 의혹과 폐쇄적 운영 시스템, 인종·성차별, 불공정성 등에 대한 논란까지 잇따라 터졌다. 탐 크루즈, 스칼릿 조핸슨 등 할리웃 배우들은 공개 비판에 나섰고 급기야 매년 시상식 중계를 해온 NBC방송이 “변화가 필요하다”며 내년 시상식을 중계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워너브라덧, 넷플릭스 등 메이저 제작사와 유명 할리웃 배우들도 시상식 보이콧을 선언하면서 78년 역사의 골든글로브가 존폐 기로에까지 내몰렸다.
논란이 거세지자 HFPA는 다양성을 확대하는 방향으로 회원수를 늘리겠다는 개혁안을 지난달 발표했다. 부정부패를 차단하고자 회원들이 선물을 받는 행위를 금지하는 윤리 행동 강령을 개정하고 회원에 대한 다양성 및 형평성 교육 완료 등 조직 개혁, 그리고 신고 핫라인을 개설하는 내용이 포함됐다.
HFPA는 “다양성과 공평성을 기하고 조직 혁신에도 큰 진전을 이뤘다. 다음 시상식 날짜와 관계없이 즉시 변경된 조치를 시행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HFPA는 “개혁안을 통해 다양하고 책임감 있는 투명한 협회를 만드는 데 전념할 뿐만 아니라 골든글로브를 통해 모든 영화와 예술에 대한 문화적 이해와 적절한 인정을 제공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골든글로브는 아카데미 시상식과 함께 미국 양대 영화상으로 꼽히는 시상식이다. 아카데미 시상식보다 먼저 진행돼 ‘아카데미 전초전’으로 불리기도 한다.
<하은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