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를 뒤흔들고 있는 차량용 반도체 품귀 현상이 장기화되면서 미국 내 중고차 가격이 신차 가격을 추월하는 기현상이 미국에서 벌어지고 있다.
자동차 전문 웹사이트 ‘블랙북’(Black Book)에 따르면 지난 1년 사이에 승용차와 픽업트럭을 포함한 미국 중고차 가격이 평균 30% 올랐으며 수요가 높은 차종은 출고됐을 당시의 신차 가격 보다 비싸게 거래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예를 들면 2019년 도요타 타코마 SR 더블캡 모델의 경우 출시 가격이 2만 9,000달러 미만이었지만 현재 중고차 도매 시장에서 1,000달러 이상 비싼 가격에 팔리고 있다. 최종 소비자가 구매하는 중고가는 대략 3만3,000달러 선에서 형성되어 있을 정도다.
블랙북의 알렉스 유르첸코 수석부사장은 “포드 F-150 랩터 픽업트럭, 메르세데스-벤츠 G클래스 AMG63, 2020년형 기아 텔루라이드와 현대 팰리세이드 등 SUV나 픽업트럭 가격이 높은 편”이라며 “출고된 지 1~3년된 차량 중 현재 신차 보다 중고차 가격이 더 비싼 차종만 73개에 달한다”고 설명했다.
중고차 가격 상승세는 물가 지수에도 그대로 반영되어 나타나고 있다.
지난 10일 연방 노동부가 발표한 5월 소비자물가지수(CPI)에서 증가폭이 두드러졌던 것이 중고차 가격으로 전월(4월)보다 7.3% 올랐으며 지난해 같은 달에 비해 29.7%나 급등해 전체 물가지수의 상승에 큰 영향을 주었다.
미국 중고차 가격이 급등한 데는 자동차용 반도체의 품귀 현상이 자리잡고 있다. 지난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확산되고 있던 4월 자동차 제조업체들이 약 8주간의 공장 가동을 멈춘 여파로 생산에 차질을 빚으면서 신차 재고가 크게 줄어든 탓이다.
여기에 올해 들어 자동차에 들어가는 반도체 칩을 생산하는 반도체 제조기업들이 휴대폰이나 노트북 반도체 수요와 함께 차량용 반도체 칩 수요를 감당하지 못하는 사태가 벌어지면서 상황이 악화되었다.
신차 매물이 부족 현상이 미국 전역으로 확산되었다.
연방 경제분석국(BEA)에 따르면 올해 초 북미에서 조립 완성된 새차 국내 재고분은 39만6,500대로 사상 최저치를 기록했다. 이마저 판매되어 6월 초 현재 25만4,800대로 줄어들었다.
‘JD 파워’와 ‘LMC 모토모티브’에 따르면 지난달 미국 내 자동차 판매 딜러십에 입고된 새차 중 33%가 10일 이내에 판매될 정도로 빠른 판매 속도를 보였다. 이는 2019년 18%에 비해 2배 가까이 재고 소진이 빠르게 일어나고 있음을 보여준다.
신차 매물 부족 현상으로 가격이 급등하자 차량을 구매하려는 수요가 중고차 시장으로 대거 몰리기 시작하면서 중고차 가격 급등의 동인으로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
중고차 시장에 차를 많이 매각하는 렌터카 업체들도 신차 확보 어려움에 내놓지를 못하고 있어 중고차 가격 상승을 부추기고 있는 또 다른 원인이 되고 있다.
당분간 미국의 중고차 가격이 코로나19 사태 이전 수준의 가격으로 되돌아오기는 쉽지 않다는 게 관련 업계의 전망이다.
유르첸코 수석부사장은 “중고차 가격이 정상화되려면 반도체 수급 정상화가 선행되어야 한다”며 “신차 재고가 늘어나면 중고차 가격은 자연스럽게 예전 수준으로 돌아올 것”이라고 예상했다.
<남상욱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