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영국의 심리학자는 “21세기의 인간은 더 이상 죄책으로 말미암아 괴로워하지 않는다”라는 유명한 선언을 했습니다. 아마도 이 사람은 “죄책이란 시대에 뒤떨어진 미개한 사람들의 자기 연민 정도”일 것이라고 이해했을 지도 모릅니다.
현대의 유명한 문학자인' T.S 엘리엇'이 쓴 ‘칵테일 파티’(The Cocktail Party)라는 책이 있습니다. 이 책에 실리아라는 여인이 등장합니다. 이 여인은 자기가 가지고 있는 도덕적인 어떤 죄책 때문에 괴로워하다가 더 이상 자기 자신을 지탱할 수가 없어서 마침내 정신과 의사를 찿아갔습니다. 그리고 상담을 합니다.
이때 의사는 여러가지 질문 끝에 이런 질문을 던집니다. “당신이 어려서 자랄 때에 부모와 가족들은 죄를 어떻게 생각하셨는지요?”
이때 실리아는 이런 대답을 합니다. “우리의 가족들은 죄라는 것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그런 것은 정신 건강에 해롭기 때문에 생각하지도 않으려고 하며 우리 가족들은 죄를 무시하는 방향쪽으로 저를 인도해왔습니다. 선생님. 그런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마음 속에서 내가 범한 잘못에 대해 불결한 느낌과 공허하다는 느낌과 실패감과 수치감, 더러운 감정 등 이런 것들에서 나는 해방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런 안타까운 고백을 토합니다. 이것은 정직한 고백입니다. 이 여인은 죄에서 도피할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현대인은 죄나 죄책이라는 말 앞에 반발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이 말을 의도적으로 망각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런 이유로 오늘 날 우리는 자주 주변에서 죄나 죄책이라는 말을 들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대신 ‘콤플렉스’(Complex)라는 소리를 얼마나 많이 듣습니까?
정신적으로 불안하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늘어갑니다. 신경증을 가진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혹은 공포에 대한 두려움에 대한 감정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의 근저에는 무엇이 있습니까? 결국그것은 죄문제입니다.
현대인들은 죄라는말 대신에 다른 용어를 발견해냈을 뿐. 인간이 죄와 더불어 갈등하며 씨름하고 있다는 그 사실을 하나도 변하지 않았습니다.
이 죄책에 대한 성경의 처방은 무엇입니까? 성경은 죄에 대해서 그리고 죄책에 대해서 단 하나의 유일한 해결책 밖에는 없다고 선언합니다. 그것은 자백입니다. 자백을 통해서만 죄문제는 비로소 해결될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이 자백에 대해서 오해가 있습니다. 신자들도 오해하고 불신자들도 오해하고 있습니다.
신자들은 자백이나 회개라는 말들을 너무 많이 그리고 자주 들어왔기 때문에 너무나 쉽게들 생각합니다. 그래서 일주일에 한 번 교회에 나와서 “하나님. 잘못했습니다”라는 단 한마디의 말. 그것이 자백이라고 생각합니다. 너무 쉽게 형식적이고 습관적이고 의례적인 고백 정도가 자백의 전부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신자들의 모습을 보고 주변의 불신자들은 비판하기 시작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자주 이러한 비판을 듣습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 6일 동안 죄 짓고 주일에 교회에 나가서 겨우 하나님 앞에 잘못했다고 한마디만 하면 다 되는 것인가.”
이런 비판을 우리는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 받고 있습니다. 사실은 이것도 성경이 가르치는 자백의 진정한 의미를 몰라서 하는 말입니다. 여기 신자의 오해가 있고. 불신자의 오해가 있습니다. 자백은 무엇입니까? 자백은 우리의 삶에 어떤 결과를 가져옵니까?
성경이 가르치는 자백의 참된 의미를 알기 위해서는 세상 사람들이 자기의 죄책에서 벗어나려고 취하는 여러가지 방법들이 얼마나 무기력하며 그것들이 결코 죄책을 해결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그래야 비로소 성경이 가르치는 자백의 능력과 자백의 위대함을 깨닫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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