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월 말 코비드 백신 2차 접종을 마친 A씨는 얼마 전 이메일로 접종 확인증을 받았다. 접종을 주관한 의료그룹이 보낸 이메일이었다. 이메일에 첨부된 사이트를 클릭하자 본인 확인절차를 거친 후 언제 어디서 1차 2차 접종을 받았다는 확인증이 떴다. 말하자면 백신여권이었다. “셀폰에 ‘여권’이 담겨있으니 이제 어디든 여행을 갈 수 있겠지?” - A씨는 잠시 설레었다.
코비드 팬데믹이 시작된 지난해 3월 이후, 누구에게나 가장 힘든 것은 집안에 갇혀 사는 것이었다. 수퍼마켓 한번 마음 편히 갈 수 없었고, 식당 카페 미장원 실내 운동시설 샤핑몰 등 평소 생활의 일부였던 곳들이 전부 접근금지 구역이 되었었다.
마스크 쓰고, 손 씻고, 사회적 거리 두는 일이 국민적 생활습관이 되고, 바이든 행정부 출범 이후 대대적으로 펼쳐진 백신 접종 덕분에 상황은 엄청나게 개선되었다. 그렇다고 아직 코로나바이러스가 사라진 것은 아니니, 백신 접종자들부터 코비드 이전의 생활로 돌아가게 하자는 것이 백신여권 아이디어이다.
예를 들어 이스라엘은 일찌감치 ‘그린 패스(Green Pass)’를 도입했다. 1차, 2차 접종을 마치면 그린 패스가 발급되고, 이를 소지하면 영화관 스포츠경기장 실내 체육시설 등지를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다. 여행도 일부 자유로워졌다. 이스라엘은 그리스, 키프로스와 협정을 맺고 그린 패스 소지자가 이들 나라를 여행할 경우 자가 격리를 면제하게 했다.
코비드 감옥에 갇혀 살던 사람들에게 숨통을 틔어준다는 점에서 백신여권은 세계적 추세가 되고 있다. 유럽연합(EU)은 물론, 중국 일본 한국 등이 도입했거나 도입을 추진 중이다.
그런데 유독 그 반대쪽에 서있는 나라가 미국이다. 백악관은 지난달 국민의 사생활과 인권 보호를 이유로 연방정부 차원의 백신여권 도입 계획은 없다고 못 박았다. 주정부와 지방정부 재량에 맡기겠다는 것이다. 주별로 뉴욕이 백신여권을 발급하고 있고, 많은 주들은 아직 발급 여부를 결정하지 않은 반면 텍사스, 유타, 아이다호, 플로리다 등은 발급금지 조치를 발표했다.
미국인들은 왜 이렇게 백신여권에 반대하는 걸까. 백신여권 전자정보를 통해 개개인의 의료정보가 노출될 수 있다는 점, 백신 접종자만 우대하는 불평등이 초래될 수 있다는 점 등이 이유다. 거기서 한 발짝 더 나가 나치 치하 유대인들에게 강요되었던 노란별 배지 같은 것이라는 주장까지 나왔다. 지난주 오렌지카운티에서였다.
여섯 모로 된 별모양인 ‘다윗의 별’은 유대주의의 상징이다. 1939년 11월부터 나치 정부는 모든 유대인들에게 노란색 다윗의 별을 의무적으로 겉옷에 부착하도록 명령했다. 이를 어길 경우 혹독한 처벌을 면치 못할 것이라고 했다. 유대인들을 눈에 띄게 하여 사회로부터 격리시키고 집단수용한 후 궁극적으로 몰살시키려는 의도였다.
까마득하게 잊혀진 다윗의 별 배지를 새삼 들고 나온 것은 오렌지카운티의 극우 시위대였다. 지난 11일 오렌지카운티 수퍼바이저 위원회는 시험적으로 원하는 주민들에 한해 백신여권을 발급하는 안을 논의했다. 이 소식을 들은 자칭 ‘애국자’ 극우진영 시민들이 성조기와 트럼프 상징 모자 등을 챙겨들고 집결해 ‘절대 반대’ 시위를 벌였다.
‘코비드는 허구’라며 마스크 착용을 반대하는 이들은 다양한 음모설을 펼쳐냈다. 백신은 거대한 인간실험, 백신 전자여권은 바코드여서 인간에게 가축처럼 소인을 찍는 행위, 겉옷 앞뒤로 노란별을 달게 해서 유대인을 가려냈던 것 같은 조치 등등. 정부에 대한 깊은 불신, 소셜미디어에 넘쳐나는 음모론이 합쳐지면 어떤 기발한 이론들이 생겨나는지, 놀라울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