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 윤동주
다들 죽어가는 사람들에게/ 검은 옷을 입히시오/ 다들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흰 옷을 입히시오/ 그리고, 한 침대에/ 가지런히 잠을 재우시오/ 다들 울거들랑 젖을 먹이시오/ 이제 새벽이 오면/
나팔 소리 들려올 게외다/
나팔 소리가 울리면 잠에 빠진 사람은 일어나 <새로운 시간(New Time)>을 준비합니다. <새로운 새벽(New Dawn)>은 “죽어가는 사람들”과 “살아가는 사람들”이 한 힘으로 모여야 비로소 혁명의 새벽은 밝아올 수 있기 때문입니다. 시인의 간절한 바람은 새벽의 나팔수가 새벽을 깨우게 되기를 소원하는 것입니다. 그래야 새벽은 죽어가는 사람들과 살아가는 사람들이 함께 혼연일체(渾然一體)가 되어 <생각, 행동, 의지>가 완전히 하나가 되어 <완벽한 혁명의 새벽>은 광명으로 찬란하게 빛나기 때문입니다. 이 간절한 바램의 예언을 대선지자 이사야는 이사야 52:1~2에서 새벽의 나팔수가 무슨 일을 하는 지를 잘 보여줍니다: “시온이여 깰지어다 깰지어다 네 힘을 낼지어다 거룩한 성 예루살렘이여 네 아름다운 옷을 입을지어다….너는 티끌을 털어 버릴지어다 예루살렘이여 일어나 앉을지어다 사로잡힌 딸 시온이여 네 목의 줄을 스스로 풀지어다.” 새벽의 나팔수는 곧 하나님이십니다. 이 거룩한 하나님께서 성자이신 예수님을 통하여 그 나팔수가 됨을 마가복음 9:22~23절에서 말씀의 성취로 보여줍니다. “귀신이 그를 죽이려고 불과 물에 자주 던졌나이다. 그러나 무엇을 하실 수 있거든 우리를 불쌍히 여기사 도와주옵소서. 예수께서 이르시되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히 하지 못할 일이 없느니라.” 불가항력의 완전불능의 상황에 놓인 <믿음이 없는 세대>의 귀신 들린 아이를 귀신에게서 완전한 자유를 누리게 하신 치유의 기적이 일어나게 하신 원동력이 있습니다. 그것은 새벽의 나팔수 되신 예수님의 새벽을 깨우는 나팔소리 같은 말씀입니다.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히 하지 못할 일이 없느니라”(막9:23).
새벽의 나팔수는 예수님이십니다. 우리 예수님의 역사적 개입이 있어야 <생각, 행동, 의지>가 혼연일체(渾然一體)가 되어 새벽은 반드시 복음의 혁명을 이루게 되므로 완벽한 혁명의 새벽은 밝아오고야 마는 것입니다. 마가복음의 기자가 새벽 나팔수 예수님을 너무나 확실하게 소개하고 있습니다. “할 수 있거든(If you can)”은 새벽 나팔수 예수님을 향한 믿음의 불확신, “결코 새벽은 오지 않으리라”는 미증유의 확신이 전제되는 <믿음이 없는 세대의 전형>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새벽 나팔수>로서 “믿는 자에게는 능히 하지 못할 일이 없느니라”는 새벽 나팔의 메시지를 공고히 외치십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이 새벽 나팔수 예수님께서 무슨 말씀으로 새벽을 깨우실 것인가를 이사야 52장에서 확실하게 성자 하나님의 음성으로 선포하고 있습니다. “깰지어다 깰지어다, 예루살렘이여 일어나라!” 지금은 자다가 깰 때입니다. 그저 혼미한 정신에 맡긴 채로 물결 치는대로 바람 부는대로 부평초처럼 흘러갈 때가 아닙니다. 자다가 깰 때요, 자리에서 정신을 차리고 일어날 때입니다. 시인 다윗처럼 “비파야 수금아 내가 새벽을 깨우리로다!”
새벽 미명에 부활하신 새벽 나팔수 예수님은 다윗이 우렁찬 함성으로 외친 것처럼, 이사야 선지자를 통하여 일성을 발하신 것처럼 “깰지어다 깰지어다! 일어나라! 내가 새벽을 깨우리로다!” 부활의 감격을 새롭게 하여 부활 예수, 새벽 나팔수 예수를 큰 소리로 외쳐야 할 때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