콜로라도로 떠날 무렵의 애틀랜타는 겨울바람 끝자락을 헤집고 봄이 조심스레 들어서고 있었다. 쌓인 눈이 녹지 않은 채로 다시 눈이 내리는 콜로라도 풍경을 눈에 담고 애틀랜타로 돌아왔다. 봄날이 깊숙히 들어섰나 싶었는데 초여름을 방불케할 만큼 기온이 연신 풀리고 있다. 도무지 끝날 것 같지 않던 혹한에도 아랑곳 않으며 기어이 계절 문턱을 넘어섰다. 봄이 들어선 길섶엔 추위를 밀어낸 따스함이 깃들고 눈길 가는 곳마다 꽃잎을 피워내며 봄날이 농익어 가고 있다. 기온이 오르면 몹쓸 바이러스도 기운을 잃어갈 것이란 위로가 먼저 떠오른다. 시대를 가로지르며 막무가내로 달려온 바이러스 기세가 꺾여 인류 곁을 영원히 떠났다는 기록이 역사로 남겨질 것이란 기대감까지 기웃거린다. 잔인했던 팬데믹 사태를 더는 허용치 않을 것이요 더는 덧없는 희생을 용납치 않으리라. 견디기와 두려움과 맞짱을 떠 온 절절한 시민의식은 가히 넉넉히 일년이란 수치를 너끈히 채우고도 남을 만큼 인고의 결실이 맺어지고 있다. 팬데믹이 질펀히 깔아둔 실추와 누락의 퇴적물이 쌓여가고 불투명한 미래가 절망을 가중시켰지만 언젠가는 정복해낼 것이란 신념을 붙들고 서로를 위로하며 끈기로 감싸왔다. 신의의 결집이 도약의 계단에 올라설 수 있을 것이라는 확고한 다짐들을 수시로 편집해가며 긴 한 해를 견디었고 마지막 겨울까지도 떠나보냈다.
봄이 기다려졌던 까닭 또한 팬데믹이란 사태의 고통을 인내하고, 지치고를 반복하며 평범했던 일상으로 되돌려놓기 위한 오기의 반작용으로 오뚜기처럼 추스를 수 있었던 강인함을 보여주고 싶었기 때문이었으리라. 봄이 오면 여름이 다가오는 여름 쯤이면 전 국민 집단면역이 형성되어 팬데믹 이전의 삶으로 돌이킬 수 있다는 청신호가 켜진 것이다. 불안과 공포의 싱크홀에 더 이상 엉키지 않을 것이요, 다시 얻게될 평범한 일상 회복을 향한 점진적 접근에 차질이나 방해를 받지 않을 것이다. 해가 바뀌고 계절이 바뀌었는데 여전히 두려움과 절망을 안고 전전긍긍하는 누추함에서 벗어나기 위해 반올림이라도 해보고 싶은 간절한 심정의 발로에서 봄이 그토록 기다려졌나 보다. 걷다보면 언덕도 내리막도 만나게 된다지만 여전히 가파른 언덕이 이어지듯 변종 바이러스로 인한 팬데믹 4차 대유행이 기다리고 있을 것 같은 불안에서 벗어나지 못한채 초조와 긴장을 먼 발치에서 지켜보고 있는 모양새다. 육신도 마음도 처음부터 무모한 강적과 맞닥뜨린 탓에 극심한 통증을 겪으며 팬데믹 굳은살이 박힌 꼴이다. 끊임없는 도약과 지속적 비상을 꿈꾸던 일상에서 더는 날아오를 수 없이 갇혀버렸다는 절망감으로 부터 빠져나와 생멸의 가위눌림에서 깨어나는 것이 급선무이다. 팬데믹 긴 터널의 츨구가 보이기 시작했으니까. 변종 바이러스 백신에도 국가적 차원에서 이미 도전을 시도하고 있다. 무방비 상태에서 공격당한 팬데믹 전쟁으로 모든 일상이 정지된 것 같았던 시한을 더는 내어줄 수 없다는 의지가 새봄을 동구밖까지 마중하듯 기다려졌던 것일게다. 계절이 드나드는 것에도 무감각해질 정도로 침전된 하루들을 보내는 동안 해낼 수 있는 것이란 아무것도 없어 보였는데 문득 나름의 소소한 즐거움을 찾아내고 있었던 흔적들이 반전처럼 떠오른다. 심신을 다스리기 위한 동기의 발상 전환을 찾았던 흔적도 보인다. ‘곧 좋아질거야. 이 또한 지나가리라’를 주문처럼 입에 올려왔던 일들이 무기력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던 마중물이 된것 같다.
푸름으로 무성해질 산길을 걷고 있을 그날을 그려본다. 평범한 일상의 밑그림 그리기에 착상할 수 있을 만치 소망하는 일상으로 되돌아 갈 수 있음이 손에 잡힐 듯 하다. 격려와 일으켜세움을 선동하기 위해 봄이 돌아온 것이라 두둔하고 싶다. 마스크를 벗고 싶은 설레임으로 봄을 기다리는 동안 삶의 분진들과 찌꺼기를 계절이란 눈금에 조준하며 정돈하고 새롭게 추스르는 계기가 계절 순환의 눈금이 그어진 연유가 아닐까 싶다. 기다리는 까닭을 눈치챘는지 봄 또한 성큼성큼 다가와 주었다. 어느새 입춘, 춘분이 저만치 달아나 버렸지만, 청명, 곡우가 다가오고있어 새로움을 담을 수 있는 새 시간의 단위를 선물받은 것이다. 포장을 열어보지 않은 새로운 다사로움에 젖어들 시간이 주어졌기에 신선한 축복을 열어가기 위해 봄의 길목으로 들어설 수 있음에 축제같은 감사가 촉촉히 배어든다. 계절 흐름에도 넋놓듯 흘러보낸 한 해를 수고로이 잘 넘겼노라고 떠나는 계절에게도, 들어서는 계절에게도 도타운 눈 인사를 나눈다. 따스한 햇살과 봄바람이 실어나르는 봄꽃 향훈이 희망으로 희망으로 온 지상에 퍼져나가고 우리네 마음 마음에도 포근하게 번져나고 있다. 봄이 기다려졌던 까닭은 팬데믹으로 부터의 온전한 회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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