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신용평가사 피치가 미국의 신용등급 전망을 하향 조정하면서 “미국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쇼크 전에 이미 재정적자와 부채가 커지고 있었다”며 “이는 미국의 전통적인 신용 강점을 잠식해왔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미 연방준비제도(Fed·연준)를 통해 자금을 조달하는 유연성이 있다고 해서 중기 채무의 지속가능성에 대한 위험이 완전히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라고 덧붙였다.
기축통화국인 미국은 연준의 발권력을 이용할 수 있다. 달러부채는 언제든 상환 가능하다는 얘기다. 지금의 제로금리는 이자비용 부담도 덜어준다.
하지만 피치는 이 같은 점이 미국 경제의 건전성과 성장 가능성을 계속 담보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나타냈다. 실제 미국 경제는 코로나19 확산에 따른 셧다운(폐쇄)으로 올 2·4분기 -32.9%(전기 대비 연환산 기준) 역성장했다. 지난 1947년 관련 통계 집계를 시작한 지 73년 만에 기록한 최악의 상황이다. 코로나19가 재확산한 6월 말 이후부터는 경기회복 속도가 한층 느려지고 있다. 이렇다 보니 미 의회는 올 들어 네 차례에 걸쳐 총 2조8,000억달러(약 3,400조원) 규모의 경기부양책을 통과시켰다. 추가로 최소 1조달러 이상의 부양책이 처리될 것으로 전망된다.
이와 관련해 미 의회예산국(CBO)은 2020회계연도(2019년 10월~2020년 9월) 9개월 동안 연방정부의 재정적자가 2조7,000억달러, 회계연도 전체로는 무려 3조7,000억달러에 이를 것으로 추산했다. 피치는 “미국은 위기에 처한 ‘AAA’ 등급 국가 중 정부 부채가 가장 많다”며 “오는 2021년까지 GDP의 130%를 넘을 것으로 예상한다”고 전했다. 지금으로서는 인플레이션 가능성이 낮지만 향후 성장률 회복과 물가상승에 따른 금리 인상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 없으며 이 경우 현 부채 수준에서 실질금리가 1%포인트 오르면 1년 안에 GDP의 1.2%가 이자비용으로 추가될 것이라는 게 피치의 예측이다. 11월 대선을 앞둔 미국 정치권이 심각한 분열 상태를 보이는 것도 경제회복에 리스크가 될 수 있다고 봤다.
앞서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는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인 2011년 미국의 신용등급을 ‘AAA’에서 ‘AA’로 강등한 바 있다. 영국계인 피치가 미국 정부의 신용등급 전망을 내린 만큼 세계 1·2위인 미국계 무디스와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가 어떻게 나올지도 관심사다. 블룸버그통신은 “피치의 경고는 10년 만기 미국 국채의 실질금리가 -1%를 기록하면서 차입비용이 전례 없이 낮은 수준으로 떨어진 상황에서 나온 것”이라며 “스스로 마이너스인 실질금리가 부채 부담을 덜 것으로 가정하고 미국 부채의 내성이 다른 ‘AAA’ 국가들보다 높다고 보면서도 미국에 대한 전망을 덜 낙관적으로 바꿨다”고 분석했다.
<뉴욕=김영필 특파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