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 관계에서 가장 큰 갈등 요인이 있다면 그것은 서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서로를 수용하지 못하기 때문에 인간 관계에서 상처를 받습니다. 우리는 다른 사람에게 인정받지 못하고 신뢰받지 못하고 거절당하고 무시당할 때 상처를 입습니다. 다른 사람에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는 느낌 때문에 생기는 상처입니다.
그런가 하면 우리 때문에 다른 사람들이 상처를 받기도 합니다. 의도적으로 혹은 노골적으로 표시하지 않았다 할지라도 은연중에 상대방을 경멸하고 무시하고 냉대하고 비판하고 조롱하고 깔보는 느낌을 전달했을 때 상대방이 상처를 받습니다. 상대방이 우리에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는 느낌을 받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상대방을 있는 모습 그대로 존중하고 수용하는 것은 성경이 누누이 강조하는 가르침입니다.
부부 관계에서도 갈등의 양상을 살펴보면 남편이 아내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아내가 남편을 받아들이지 못했을 때 문제가 심각해지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부부가 서로의 있는 모습 그대로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서로 변화시키려고만 하니까 문제 해결이 안 되는 것입니다. 자기 기준에 맞추어 상대방이 이렇게 해 줬으면 하고 바랄 때 그것이 어긋난 결과가 나오면 상대방을 우습게 여기고 무시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것이 잘못된 태도입니다. 상대방의 개성을 인정하지 않고 나와 상대방이 다를 수 있다는 다양성을 인정하지 않는 데서 오는 편견이 우리 인간 관계를 갈등 구조로 몰아 넣습니다. 이럴 때 서로 상처를 받게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받아 주셨습니다. 비록 주변에 많은 사람들이 우리를 무시하고 거절하고 밀어내고 소외시켰다 할지라도 우리는 주님의 이 놀라운 복음의 메시지를 듣고 힘을 얻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우리가 그리스도를 어떻게 받아들일 수 있는가 하는 점입니다.
그리고 상대방을 어떻게 받아들이겠는가 입니다. 우리가 좋아하는 사람은 받아 받아 들이기가 쉽습니다. 그러나 까다롭게 생각되는 이웃들. 의견 차이가 심한 동료들. 삶의 모습이 굉장히 다른 사람들. 그들은 어떻게 받아 들이겠습니까? 아마 인간의 노력으로 극복하기 힘든 문제가 많은 것입니다.
우리는 그 모범으로 주님에게서 배울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어떻게 받아 주셨는가를 생각해 보면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할지 알게 될 것입니다. 우리의 이웃을 받아들이기 위해 예수님께서는 어떻게 하셨는지를 살펴 보겠습니다.
첫째로 우리들의 있는 모습 그대로를 받아들여 주셨습니다. 다시 말하면 우리의 인격을 존중 해 주셨습니다. 주님께서는 우리가 하나님의 피조물인 사람으로서의 인격을 그대로 존중해 주셨습니다. 우리의 죄와 허물에도 불구하고 그 모습 그대로 받아 주셨습니다. 하나님 앞에도 나아갈 수 없는 죄인들을 우리를 위해 예수님께서는 자신의 생명까지 던져 주셨습니다. 주님은 우리를 자신의 생명만큼 소중한 대상으로 인정해 주신 샘입니다.
우리가 대단한 존재라서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신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인정하고 존중해 우리를 위해 자신을 희생하기까지 하신 것은 우리가 자격 없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를 인정하고 존중해 주셨다는 뜻입니다. 주님께서는 우리를 조건 없이 용납하셨습니다. 무조건 적으로 받아 들이셨습니다. 아무 조건이 없었다는 것이 중요합니다. 우리의 있는 모습 그대로를 용납 하셨다는 것이 우리가 기억해야 할 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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