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자·가족 제균치료 받으면
재발·신규 발생률 대폭 감소
제균제 하루 2회만 복용해도
4회와 효과 같고 부작용 적어
18%는 조직-혈청검사 결과 달라
종양 있다면 병행 정확도 높여야
헬리코박터 파일로리균은 기능성 소화불량증, 급성·만성위염, 위·십이지장궤양, 위암(선암) 등 다양한 소화기계 질환을 일으킨다. 위 점막을 위산으로부터 보호하는 위점액층에 기생하는 이 세균은 특히 위암의 주범으로 밝혀져 세계보건기구(WHO)가 지난 1994년 발암물질로 규정했다.
헬리코박터균은 대개 10세 이전에 사람의 위장 속에 들어와 수십년 동안 위 점막에 염증 반응을 일으킨다. 대변으로 배출된 균이 사람들의 직접 접촉이나 물·음식물 등을 통해 다른 사람의 위에 감염을 일으키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국내 감염률은 1998년 67%에서 2016~2017년 44%로 감소세를 보이지만 30% 이하인 미국·북유럽 등에 비해서는 여전히 높은 편이다.
◇ “제균제 하루 2회 복용, 4회와 효과 같고 부작용 적어”
이선영 건국대병원 소화기내과 교수는 “우리보다 탄 음식이나 짠 음식을 많이 먹는 나라도 많은데 유독 한국에서 위암 환자가 많은 이유는 헬리코박터 감염률이 높기 때문”이라며 “우리나라가 위암 1위 국가라는 오명을 떨치려면 헬리코박터균 감염에 대한 올바른 진단과 치료가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우리나라는 2017년 약 3만명의 신규 위암 환자가 발생했고 2018년 1월1일 현재 치료 중이거나 완치된 위암 생존자(유병자)는 29만명에 이른다.
이 교수팀은 헬리코박터균 제균(박멸)치료 때 약을 하루 4회 먹는 기존 요법 대신 2회만 복용해도 동일한 효과를 내면서 부작용을 줄일 수 있다는 점을 밝혀냈다. 내시경을 이용한 위 조직검사와 혈액(혈청)검사의 장단점을 분석해 검사의 정확도를 높이는 방안도 찾아냈다.
이 교수팀이 1주일의 2차 헬리코박터균 제균치료 기간에 테트라사이클린과 비스무트 섭시트레이트 등 4개 약물을 하루 2회 복용한 환자군(98명, 평균 58세)과 4회 복용군(99명, 평균 55.5세)의 박멸률을 분석했더니 93~94%로 사실상 같았다. 평균 혈청 항-헬리코박터균 면역글로불린G(IgG) 역가도 차이가 없었다. 하지만 복통, 흉부 불편함 등 부작용은 2회 복용군이 37%로 4회 복용군(50.5%)보다 훨씬 적었다.
이 교수팀은 헬리코박터균 검사의 정확도를 높이려면 내시경 조직검사와 혈청검사의 장단점을 절충할 필요가 있음을 밝혀냈다.
성인 872명을 조사했더니 18%에서 내시경 조직검사와 혈청검사 결과가 달랐다. 특히 16.6%(145명)는 조직검사 결과가 음성(감염되지 않음)이었지만 혈청검사에서는 양성(감염)으로 나왔다. 내시경으로 떼어낸 위점막 조직에 선종이나 암 등 종양세포가 섞여 있는 경우, 위염이 심해 위점막 세포가 위산을 분비할 능력이 없는 경우(혈청 펩시노겐 PG2 7.45ng/㎖ 미만)에 불일치율이 높았다.
이 교수는 “헬리코박터균은 위에 골고루 퍼져 있지 않아 균이 없는 곳의 조직을 내시경으로 떼어내 검사하면 거짓음성(위음성)으로 나올 수 있다”며 “위에 종양이 있다면 조직검사에만 의존하지 말고 혈청·대변검사를 병행하는 것이 정확도를 높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종양세포 뒤섞여 있거나 위염 심하면 한 가지 검사로는 부정확
반대로 위축성 위염(위점막의 정상조직이 소실돼 얇아진 상태)이나 장상피화생이 심한 위염 환자의 경우 헬리코박터균이 더 이상 생존하지 못하고 자가소멸하는 경우가 있는데 혈청검사에서는 균이 사라진 뒤 수개월~수년 동안 거짓양성(위양성)으로 나왔다.
이 교수는 “이런 환자는 추적 혈액검사로 항체 수치가 점차 감소하는지 확인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예상과 달리 6~12개월 후에도 항체 수치가 감소하지 않고 점차 증가한다면 감염이 있다는 것을 시사하므로 위내시경으로 추적 조직검사를 해야 한다”고 했다. 헬리코박터균 검사에는 금식 상태에서 약을 먹고 날숨을 길게 불어 헬리코박터균에 의해 분해된 약 성분을 질량분석법으로 측정하는 요소호흡검사법도 많이 쓰인다.
최일주 국립암센터 소화기내과 교수팀은 헬리코박터균 제균치료가 위암 환자의 재발은 물론 위암 가족력이 있는 보균자의 위암 발생률을 2분의1에서 3분의1 수준으로 낮추는 효과가 있음을 알아냈다.
2003~2013년 헬리코박터균에 감염된 조기 위암 환자의 병변을 도려내는 내시경 시술을 받은 396명을 최장 12.9년(중앙값 5.9년) 동안 추적 관찰했더니 제균치료를 통해 균이 박멸된 환자의 위암 재발률은 7.2%로 가짜 약 복용군(13.4%)의 절반 수준에 그쳤다.
헬리코박터균이 성공적으로 제거된 환자의 위암 발생위험은 감염 상태인 환자의 3분의1 수준이었다. 만성적인 헬리코박터균 감염 등으로 발생하는 위축성 위염의 호전율도 제균치료군이 48.4%로 가짜 약 복용군(15%)의 3.2배였다.
조기 위암은 림프절 전이 여부와 관계없이 위 점막층 또는 점막하층에 국한된 위암을 말한다. 위암 환자 중 30%가량이 내시경으로 위암 병변을 도려내는 시술을 받는다. 위 전체를 보존할 수 있고 수술에 비해 합병증도 적은 것이 장점이다. 다만 암 발생부위 주변 점막에 심한 위축성 위염이 진행된 경우가 많아 새로운 위암이 1년에 3%(일반인의 20~30배) 정도 발생한다.
2004∼2011년 부모나 형제자매가 위암 진단을 받은 3,100명의 가족 중 헬리코박터 보균자 1,676명을 최장 14.1년(중앙값 9.2년) 동안 추적 관찰한 연구에서는 제균치료군의 위암 발생률이 1.2%(832명 중 10명)로 가짜 약 복용군(2.7%, 844명 중 23명)의 절반을 밑돌았다. 특히 균 박멸군의 위암 발생률은 0.8%(608명 중 5명)로 지속적인 감염 상태를 보인 군(2.9%, 979명 중 28명)의 3분의1이 안 됐다.
<임웅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