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 세월, 가고 싶어 부러워했던 뉴올리언스에 다녀왔다. 달라스에서 비행기로 한 시간 남짓이면 갈 수 있는 곳이어서 직접 운전해 가기도 하는데, 우리는 비행기를 타고 갔다. 그곳은 매년 마디그라 축제와 재즈 페스티벌이 열리는 곳으로 유명하다. 지인들로부터 그곳의 다양한 문화 행사와 먹거리에 관해 들은 바가 있어서 가고 싶은 도시 목록에 들어있었다.
축제 기간이 아니어서인지 개학을 해서인지는 모르겠지만, 어깨를 부딪치며 다닐 정도로 관광객이 많진 않았다. 그곳 날씨는 미시시피강을 끼고 있어서 고온 다습했다. 내가 가보고 싶었던 곳은 뉴올리언스를 대표하는 작가 테네시 윌리엄스, 트루먼 카포티, 윌리엄 포크너의 생가였다. 단체에서 문학 기행을 가면 작가의 생가에서 사진 한 장 찍는 것도 전쟁인데, 붐비지 않으니 편하게 사진을 찍고 외관이라도 여유롭게 볼 수 있어 좋았다. 오 헨리나 에드가 앨런 포 생가처럼 박물관으로 만들면 좋았을 텐데, 건물주가 돈이 더 궁했는지 세를 주어서 문화유산으로 보존되지는 않았다. 그들이 살았던 집에는 다른 사람이 입주해 살고 있어서 들어가 볼 수는 없었다. 건물 외벽에 붙은 동판 속 설명이 전부여서 아쉬웠지만, 그들이 작품을 썼던 공간과 다녔던 거리를 걸었다는 것만으로도 좋았다.
좋은 여행지를 추천해도 딸과 둘이 가라며 손사래 치던 남편이 웬일로 뉴올리언스 여행을 결심했는지 모르겠다. 호캉스 좋아하는 사람이 루이스 암스트롱 공원, 제2차 세계대전 박물관, 오두본 아쿠아리움, 잭슨 스퀘어, 프렌치 쿼터, 프렌치 마켓, 미국 최초의 성당인 세인트루이스 대성당 등을 걸어 다니며 새로운 문화를 체험했다. 땀 흘리며 사서 했던 고생이 싫지만은 않았는지 마디그라 축제할 때 한 번 더 가보자고 했다. 버스와 전차를 마음대로 이용할 수 있는 패스를 끊어서 타고 다녔는데, 버스에 바퀴벌레가 있었다. 처음엔 놀라 발을 바닥에 내려 놓지 못했는데, 나중엔 신경도 안 썼다. 그래서 다 적응하고 살기 마련인 모양이다. 영화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에 나오는 전차도 타 보고 유명한 스팀 보트도 타보았다.
미국 남부에 자리한 뉴올리언스는 1815년 잭슨 장군이 이끄는 미국 군대가 뉴올리언스 전투에서 영국을 이긴 후 미국 땅이 되었다. 그 이전에는 스페인과 프랑스가 통치했었다. 지금도 그때 사용했던 지명이 붙은 명판이나 건축물들이 곳곳에 남아 있다. 전쟁이 끝난 후에도 자기 나라로 돌아가지 못한 프랑스인들이 미국 남부에 많이 살았다. 그곳에 아프리카에서 끌려온 흑인 노예들과 남미 에스파냐인 등 다인종이 살다 보니 자연스럽게 다문화 가정이 생기고 여러 나라 음식이 합쳐진 퓨전 요리도 생겨 음식문화와 재즈가 발달하게 되었다.
테네시 윌리엄스가 ‘보헤미아의 마지막 개척지’라고 칭송했던 뉴올리언스에서 먹어본 음식 중 기억에 남은 건 단연 카페 뒤 몽드(Cafe du Monde)에서 파는 베니에(Beignet)와 카페오레였다. 매일 먹고도 모자라 떠나는 날 공항에서도 사 먹었다. 전차 파업 때 가난한 노동자들의 한 끼를 해결해 준 포보이(po-boy) 샌드위치도 푸짐하고 맛있었다. 남편과 딸은 검보, 잠발라야, 굴, 악어 등 해산물이 들어간 요리를 잘 먹었는데, 향이 강해서 내 입맛엔 안 맞았다.
뉴올리언스는 ‘새로운 오를레앙’이라는 뜻이다. 수많은 허리케인과 전쟁을 이겨내고 꿋꿋하게 살아남은 도시가 안쓰럽고 기특했다. 이왕이면 관광자원을 잘 살리고, 도시도 깨끗하게 재정비하고, 노숙자 복지까지 해결하면 더없이 좋은 관광도시가 되지 않을까 싶다. 새로운 곳에 가면 새로운 게 보이고 새 에너지가 생기고 상했던 마음이 새로워진다. 다음엔 어디를 갈까, 생각만으로도 설렌다. 루이스 암스트롱 공원에서 그를 알현하고 오니 그의 재즈가 새롭게 다가온다. 음악은 자유고 여행은 치유다.
<박인애 수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