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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윤성의 하프타임] ‘여권(旅券) 양극화’가 말해주는 것

지역뉴스 | 외부 칼럼 | 2024-02-06 15:13:59

조윤성의 하프타임, LA미주본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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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지니아 주 페어팩스카운티 교육위원으로 활동한 문일룡 변호사는 재임 시 새로운 교육감이 부임할 때 마다 교육 관계자들을 한국으로 데려가 한국의 이모저모를 보여주고 체험토록 하는 교류 프로그램을 오랫동안 실시했다. 그리고 이 프로그램은 큰 성과를 거두었다는 긍정적 평가를 받았다.

“한국이 세계 11번째 경제 대국임에도 불구하고 미국에는 아직도 한국을 잘 모르는 사람이 많다”는 문 변호사는 “교육자들이 우리나라에 대한 이미지가 정말 많이 바뀌어서 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설사 부정적인 면이 있다하더라도 직접 가서 보고 오면 공감대가 생기면서 한국인들을 좀 더 깊이 이해하게 되는 것 같다고 풀이한다. 이처럼 어떤 대상을 이해하는 데 있어 머리로 아는 것과, 눈으로 직접 보고 몸으로 체험하는 것은 하늘과 땅 만큼의 차이가 있다.

한국을 방문한 미국 교육자들이 달라져 돌아오듯 접촉은 나와 다른 대상에 대한 태도를 열어주고 이해를 높여주는 역할을 한다. 책이나 시청각 프로그램 등을 통한 간접적 접촉도 도움이 되지만 직접 보고 체험하는 것만큼 강력하지는 않다. 그런 면에서 개방성과 여행 사이에 나타나는 관계에 주목하는 심리학적 관찰은 아주 흥미롭다.

개방성은 본질적으로 이질적 문화와 접촉하고 새로운 지식과 현상을 탐사하는 특성을 띠는 여행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개방성이 높은 사람은 다른 세계로의 여행을 통해 지적, 예술적 호기심을 충족하려 하고 새로운 삶의 방식과 문화의 틀을 체험하려 하는 반면, 개방성이 낮은 사람들은 여행지도 고향에서 가깝고 문화적 차이도 적은 안전한 곳을 선호하는 경향이 뚜렷하다는 것이다.

개방성이 여행지 선택에 영향을 미치고, 여행은 다시 개방성을 확장시켜주는 되먹임이 여기서도 나타난다. 아무튼 자발적인 선택이었든 제공된 기회였든 다른 나라 다른 문화를 만나면서 하게 되는 다양한 접촉과 경험은 다름을 바라보는 우리의 인식 세계에 대단히 큰 영향을 미치게 된다.

미국사회에서 나타나고 있는 무수한 양극화 현상들 가운데 ‘여권 양극화’(passport divide)에 대해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는 것은 바로 이 같은 배경에서 비롯된다. 여권 양극화는 지역별, 계층별로 여권 소지율이 갈수록 벌어지고 있는 현상을 지칭한다.

미국인들의 여권 소지율은 약 42%. 수십 년 전보다 크게 늘어났지만 여전히 다른 선진국들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낮은 비율이다. 영국인들의 여권 소지율은 75%에 달하며 캐나다는 66%이다.

미국의 더 큰 문제는 지역별 차이가 너무나도 크다는 점이다. 뉴저지와 캘리포니아, 델라웨어, 뉴욕 같은 주들은 70%에 육박하는 데 비해 농업이나 제조업이 중심인 주들의 여권 소지율은 절반에도 못 미친다.

재미있는 것은 여권 소지율이 높은 곳은 푸른색으로, 낮은 곳은 빨간 색으로 칠해 지난 대선의 주별 정당지지 색깔지도와 겹쳐보면 거의 그대로 일치한다는 사실이다. 여권 소지율이 낮은 주일수록 트럼프 지지가 압도적이었다는 말이다. 지난 2014년 주민들의 개방성 등을 바탕으로 50개 주를 타이트(tight)한 주들과 루스(loose)한 주들로 구분하는 연구가 실시됐는데 가장 타이트 한 주들은 남부에 집중돼 있었으며 트럼프는 두 번의 대선에서 가장 타이트한 주 10개를 모두 가져갔다.

유권자들의 선택을 가지고 왈가왈부할 생각은 없다. 다만 여권 소지율이 낮은 지역일수록 트럼프의 반이민, 반외국인 정책을 적극 지지하는 경향이 뚜렷한 것만은 분명하다. 이처럼 여권 소지율은 다름에 대한 관용과 다른 문화에 대한 개방성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몇 년 전 27개국을 대상으로 한 세계 각국의 ‘다양성 포용도’조사에서 미국은 47%의 개방성으로 13위를 차지한 반면 캐나다는 74%로 1위를 차지했다. 미국과 캐나다의 개방성 지수가 여권 소지율과 엇비슷한 것이 결코 우연으로 보이지 않는다.

“미국인 대다수가 여권이 없다는 사실은 미국 민주주의의 문제점이 돼 왔다”는 예일대 역사학자 티모시 스나이더 교수의 지적은 그래서 시사적이다. 이 지적의 핵심은 민주주의의 요체는 열려있는 시민들이며 그 첫걸음은 접촉을 통해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세계를 알아가는 것인데 미국은 그게 너무 부족하다는 것이다.

‘여권 양극화’와 이에 따라 뚜렷하게 갈라지는 주민들의 성향은 당장은 미국정치의 양극화에서부터 한국의 지역감정, 그리고 개인들 사이에서 일어나고 있는 다양한 차원의 갈등 양상을 진단하고 해소하는 데도 대단히 유용한 메시지가 될 수 있다.     

 <조윤성 LA미주본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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