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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 에세이] 이름이 문제다

지역뉴스 | 외부 칼럼 | 2024-02-01 13:08:26

전문가 에세이, 김케이 임상심리학 박사

구양숙 부동산표정원 융자누가 스킨 케어

내 이름은 두 번 바뀌었다. 교수가 한글이름을 제대로 발음하지 못하는 바람에 이니셜 K가 그냥 미국이름 케이가 되었다. 또 한 번은 결혼과 더불어 성이 달라졌다. 이름이 바뀌니 누가 맘먹고 내 흑역사를 수색해봤자 헛수고다. 난 이제 딴 사람이다. 한국에서 저지른 나쁜 일이 있어도 정말 아무도 나를 찾아내지 못하려나? 이름을 뭐라고 불러주는가에 따라 언제 적에 만난 사이인가를 가늠한다. 

여학생 시절엔 내 이름이 싫었었다. 남자 이름 같아서. 학교에서 ‘씩씩한 국군 장병 아저씨께’ 라는 위문편지를 의무적으로 써야했던 시절. 담임선생님은 나를 불러, 마감 날짜까지 안 써온 급우들 이름으로 여러 통의 대리 편지를 쓰게 했다. 한 달 쯤 지나면 친구들 앞으로 답장이 날아오는데 정작 내 앞으론 오는 게 없다니! 그게 다 남자 이름 때문에 ‘국군 장병 아저씨’의 관심을 끌지 못했으리라는 게 내가 내게 주는 위로이다. 

세월이 흘러 미국에서 나를 ‘케이’로 아는 남자와 결혼했다. 얼마 후 임신 소식을 알리자 한국에서 아기다리 고기다리 하시던 시댁에서 아기 이름을 지어 보내셨다. “사랑하는 며늘 아가! 임신을 하였다니 대견하구나. 광산 김씨 가문을 이어갈 손주 이름을 지어 보내니 부디 건강 잘 보살피고 태교에 힘 쓰거라.” 앞에 ‘용’자가 들어가도록 항렬 돌림자를 따라 지어진 이름을 보는 순간 헉! 나는 좌절했다. “사내를 낳으면 용만이, 여아이면 용녀라 하거라.” 

영어나 한글처럼 소리글자가 아니라 한자에서 가져온 뜻글자의 용만이, 용녀! 참 좋은 의미인건 알겠는데요~~ 어머니임~~ 근데 그게요~~ 이름만 들어도 가슴 설렐 영화나 소설 주인공 이름을 기대했다면 그건 물거품. MZ 세대에 태어나는 아이에게 붙여주기엔 뭐랄까… 부모님 말씀 잘 듣는 효자 남편을 꼬드겨 결국 다른 이름으로 출생신고를 하느라, 나는 죄송하게도 못된 며느리 역할을 하였다. 미국 땅에서 태어나 자란 아이들이니 한국 이름을 쓸 일은 잘 없지만 뜻글자의 깊은 의미를 모르는데도, 나중에 알게 된 애들 역시 고개를 좌우로 흔든다. 

이름은 인간 주체성의 첫 단계다. 정신분석학자 자끄 라깡 식으로 말하자면 아버지의 성을 물려받고 따른다는 것은 주체에 정체성을 부여하는 일이다. 성격심리학자들은 ‘일생 동안 자기정체성의 가장 중요한 기준점은 자기 이름’이라고 단언한다. 가끔 자기가 자기 이름을 부르는 사람들이 있다. 어린 아이라면 “싫어! 줄리는 이거 안 할거야!” 해도 아직 개인 분화가 이루어지지 못한 아동기 귀여움으로 들어줄 수 있지만, 어른이 자신을 3인칭으로 부르는 일은 심리 성격적 이슈를 돌아보게 한다. 

트럼프는 자주 자신을 3인칭으로 불렀다. “트럼프는 외교문제에 역사상 유례없는 최고의 지도자이지!” 심리학자들은 성인기 3인칭 화법에 대해 ‘자신을 실제보다 거창하게 여기고 과장된 자아를 부둥켜안고 살아가는 미성숙하고 위험한 성격’으로 풀이한다. 반면 운동선수나 무대 공연자들이 극도의 긴장 상태에서 자신의 이름을 부르기도 한다. 이는 긴장 순간, 자신과 일정한 간격을 두면서 객관화를 통해 자기 통제감을 높이는 기술이다. “헤이, 케빈 듀란트! 케빈은 할 수 있어!” NBA 최고 선수의 독백은 긍정적 불안해소 방식이기도 하다.  

자기 이름이 마음에 안 드는 사람은 심리적 적응력이 떨어진다는 보고도 있다. 왠지 어감이 안 좋은 이름, 유행에 뒤떨어진 이름, 남자/여자 같은 이름, 희대의 흉악범과 같은 이름… 때문에 자신감이 떨어지기도 하고 자존감 부족으로 이어진다는 게 성격심리학자들의 이론이다. 지금 한국일보를 읽고 계신 당신의 이름은 무엇입니까?

<김케이 임상심리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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