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화당이 또 한 차례의 진통을 겪고 있는 와중에도 당내 예산 매파들은 미국이 앓고 있는 기저질환을 재차 지적하고 나섰다: 바로 연방적자다.
현재 미국의 부채 총액은 33조 달러에 달하고, 적자는 국내총생산의 7%를 넘어섰으며, 올해 순이자 지급액만도 국방비와 맞먹는 6,500억 달러를 웃돌 것으로 예상된다.
거의 한 세대 동안, 정책결정자들은 적자문제를 피해갈 수 있었다. 낮은 이자로 부족한 자금을 쉽사리 빌릴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재의 금리 수준을 감안하면 잔치는 이미 끝이 났다.
간단한 해법이 바로 우리의 눈앞에 있지만 안타깝게도 양당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으려든다. 그러나 이제 우리도 세계의 다른 선진경제국들처럼 전국에 일괄적으로 적용되는 판매세를 도입해야 한다. 대다수의 국가에서는 이를 부가가치세(VAT)라고 부른다. 상품을 판매할 때 단 한차례 세금을 징수하는 게 아니라 각 생산단계별로 세금을 부과하기 때문에 붙은 이름이다. 의회예산처(CBO)에 따르면 5%의 연방 판매세를 도입할 경우 향후 10년간 3조 달러의 추가 세수를 만들어내면서 미국의 재정구멍을 메워준다. 평균적으로 유럽연합 회원국들은 전체 세수의 20%를 VAT로 충당한다.
그렇다면 부가가치세 이외에 우리가 취할 수 있는 다른 옵션은 무언가? 공화당이 제시하는 지출 축소안은 농담처럼 들린다. 그들이 제안한 지출 삭감대상에서 소셜시큐리티와 메디케어 같은 이른바 인타이틀먼트 프로그램은 제외된다.
은퇴군인 연금도 마찬가지다. 이처럼 삭감불가 대상인 ‘언터처블’에 부채 이자지급액을 합한 액수가 전체 연방예산의 75%를 차지한다. 해외 원조 축소는 그럴싸하게 들릴지 몰라도 연방지출에서 대외 지원금이 차지하는 비중은 기껏해야 1% 정도다.
민주당의 해법도 공화당만큼은 아니지만 비현실적이긴 마찬가지다. 그들의 단골 메뉴는 부유층 증세다. 문제는 부유층 증세가 세수에 그다지 큰 차이를 만들어내지 않는다는 점이다. 미국의 극부유층은 이미 불공평할 만큼 과다한 세금을 내고 있다.
민주당은 부가가치세가 역진세에 해당한다며 VAT세 도입에 반대한다. 그들은 미국의 세제가 대단히 보수적이라고 믿는다. 하지만 잘못된 생각이다.
미국은 선진 경제국 가운데 가장 진보적인 세금 시스템을 운용하고 있다. 연소득이 4만5,000달러이건 450만 달러이건 누구에게나 동일한 세율이 일률적으로 적용되는 매세가 아니라 소득세를 통해 세수의 대부분을 거두어들이기 때문이다.
택스 파운데이션의 대니얼 번은 “우리의 시스템이 가장 진보적인 이유는 중간소득 근로자들에게 상대적으로 적은 세금을 부과하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미국의 최고 세율은 평균임금의 8.5배에 달하는 소득부터 적용되는데 비해 독일은 평균 임금의 3.5배부터 최고세율이 적용된다.”
구제적인 수치로 살펴보자. 택스 파운데이션에 따르면 미국의 최상위권 10%에 속한 고소득자들이 국민 전체 합산소득액의 50%를 가져가는 반면 연방세수의 74%를 납부한다. 덴마크와 스웨덴의 경우 최상위 10%가 전체 소득세의 25%를 담당한다. 부유한 국가의 평균치는 32%다. 미국에서는 3억3,000만 명의 인구 가운데 1%인 130만 가구가 전체 소득의 22%를 벌어들이지만 연방세로 그 두 배에 가까운 42%를 지불한다. 게다가 지난 수십 년에 걸쳐 세제는 더욱 진보적이 되었다. 미국의 상위 20%에 속한 소득자의 순 세수 기여액은 1980년대 이후 200% 이상 증가했다.
여기에 주세와 지방세를 합하면 미국의 최고소득 세율은 수익의 50%를 웃돈다. 만약 이들 중 한 명이 런던이나 베를린 혹은 싱가포르로 이주한다면 세금을 크게 줄일 수 있다. 특히 싱가포르의 최고 세율은 24%에 불과하다. (그럼에도 이들은 전국민 의료보험은 물론 유치원에서 대학까지 양질의 공교육을 제공한다.) 뉴욕시는 에릭 아담스 시장의 지적대로 전체 주민 가운데 최상위 소득층에 속한 2%가 시 전체 소득세 세수의 절반을 담당한다.
연방예산의 대부분은 삭감할 수 없고, 전체 소득자의 98%에 대한 세금은 인상해선 안 된다는 것이 미국 양당의 신조가 된지 오래다. 바로 이 때문에 우리는 고질적인 적자를 해소하지 못한다. 적자를 줄이려면 세금을 일부 인상하고 지출의 일부를 축소해야 한다. 또한 향후 세금인상의 대상이 과거 수십 년 간 신규 세수의 원천 역할을 도맡았던 고소득층으로 단일화 되어선 안 된다.
부유층이 또 다시 신규세수의 원천이 된다면 경제와 정치 제도가 뒤틀리고, 서민들은 연방정부에 제몫의 투자를 하지 못했다는 느낌을 갖게 된다. 소셜시큐리티와 메디케어가 그토록 광범위한 지지를 받는 이유는 미국인 모두가 이들 프로그램에 기여했고, 그에 따른 혜택을 누린다고 믿기 때문이다.
5%의 부가가치세가 다소 역진세의 성격을 띄우는 것은 사실이지만 세수증대를 위한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을 경우 불가피하게 맞닥뜨릴 일괄적인 사회복지 혜택 축소보다는 덜 역진적이다.
이제 미국은 부가가치세를 채택한 160여 개국의 대열에 동참해야 한다. 그리고 향후 수 십년간 이 나라를 더욱 단단한 재정기반위에 올려놓을 수 있도록 모든 미국인에게 협조를 요청해야 한다.
파리드 자카리아<워싱턴포스트 칼럼니스트 CNN ‘GPS’ 호스트>
∗예일대를 나와 하버드대에서 정치학 박사학위를 받은 파리드 자카리아 박사는 국제정치외교 전문가로 워싱턴포스트의 유명 칼럼니스트이자 CNN의 정치외교분석 진행자다. 국제정세와 외교부문에서 가장 주목받는 분석가이자 석학으로 불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