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남조 시인의 “그대 있음에”라는 시가 있습니다. “그대의 근심 있는 곳에/ 나를 불러 손잡게 하라/ 큰 기쁨과 조용한 갈망이/ 그대 있음에 내 마음에 자라거늘/ 오, 그리움이여/ 그대 있음에 내가 있네/ 나를 불러 손잡게 해/ …..그대 있음에 내가 있네/ 나를 불러 그 빛에 살게 해.” 시인의 노래는 보이지 않는 절대적
인 존재를 의식하고 현하의 절망의 늪에서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돌파구는 나를 부르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그리고, 그 소리에 부응하여 내 손을 내밀라는 것입니다. 그순간, 칠흑같이 캄캄한 절망의 늪은 어느새 빛으로 변하고 그 즉시로, 나는 빛 가운데 살아가게 되는 <긍정의 힘>을 강력하게 노래하고 있습니다.
시편 62편의 논지가 바로 그것입니다. 불확실하고 무기력한 나 자신의 신빙성없는 소리는 이제 잠시 멈추고 나의 영혼이 침묵해야 할 때가 왔다는 것입니다. “나의 영혼이 잠잠히 하나님만 바람이여 나의 구원이 그에게서 나오는도다” 이스라엘의 역사는 하나님의 일관성있는 개입의 역사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고질적인 악습은 거듭거듭 하나님을 망각하고 자신에게만 몰두하는 “자기애로 가득한 영혼의 망각증세”가 끊임없이 지속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시편 62편의 저자, 시인 다윗은 지금의 처지가 자기 목소리를 내어도 전혀 먹혀들지 않는 “중과부적의 상황”에 있습니다. 사랑하는 아들, 압살롬의 반역으로 인하여 하루 아침에 도망자의 신세로 전락한 다윗은 ‘당면한 위기와 환난을 벗어날 수 있는 최상의 길이 무엇일까?’ 숙고한 결론이 “나의 영혼은 잠잠히 침묵하고, 대신에 나에게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자”는 것이었습니다. 위기를 만나고 환난을 당하면 그 위기와 환난수습에 급급한 나머지 가장 중요한 급선무인 기도를 깡그리 다 잊어버리고, 현실의 무게에 제압당하는 것이 <연약한 인간의 자화상>입니다. 이 영혼의 침묵을 가장 기뻐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위기와 모멸의 순간에도 다윗은 최고권력자로서 품위를 조금도 잃지 않았습니다. 심지어는, 자신의 위기 앞에서 그는 왕으로서 지켜야 할 왕도의 핵심인 백성들의 안위를 먼저 걱정하였습니다. “백성들아 시시로 그를 의지하고 그의 앞에 마음을 토하라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시로다."(시62:8)
“시시로(時時로)” 어떻게 하라는 말인가? 시시로는 “때때로”라는 글자그대로의 문자적인 의미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말입니다. “시시로”는 지금 처한 상황이 간혹 생각이 나거든 그런 뜻이 아닙니다. “시시로"는 “Code Blue”의 상황입니다. 다윗은 <긴급상황(Emergency)>이 벌어진 바로 그 위급한 순간에 “가끔씩, 생각나거든 하나님을 의지하라!”는 안일한 메시지를 전한 것이 아닙니다. <긴급한 상황>은 <쓰나미>처럼 밀려올지 모릅니다. 긴급한 상황은 <토네이도>처럼 갑자기 닥쳐올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 모든 것을 다 알고 계시는 전지하신 하나님께 “항상 모든 것을 의지하고 맡기라!”는 말씀입니다. “백성들이여, 시시로 하나님을 의지하고 그에게 마음을 토하라!” 즉, “기도하라!” 고 지혜를 줍니다. 침묵하는 자, 영혼의 침묵을 지키는 자, 그는 마음이 겸손한 자입니다. 겸손의 롤 모델이신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라.”(마11:29) “내 영혼아, 잠잠히 하나님만 바라라. 무릇 소망이 그에게서 나오는도다.”(시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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