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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정희의 세상읽기] “제발 좀 뭔가를 하십시오”

지역뉴스 | 외부 칼럼 | 2021-04-23 10:1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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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카고에 사는 7살짜리 소녀 재슬린 애담스는 지난 일요일(18일) 아빠와 맥도널드로 향했다. 재잘재잘 말 많고 쾌활한 재슬린은 그 또래 누구나 그렇듯 아빠와의 나들이에 신이 났을 것이었다. 자동차가 맥도널드 드라이브 스루 레인에 들어섰을 때 “치즈버거에 프렌치프라이, 음료수는 … ” 하며 아이는 메뉴를 고르고 있었을까?

 

하지만 그게 다였다. 갑자기 총탄 수십 발이 차 안으로 날아들어 작은 몸에 6발을 맞았다. 응급실로 옮겨졌지만 그대로 절명했다. 중상을 입은 아이 아빠는 절규했다. “내 아기가 죽었는데 왜 그런 일이 일어났는지 알지도 못하는 게 말이 되는가.” 아이의 고모는 분노했다. “아빠와 딸이 그냥 맥도널드에 간 거다. 그러다 아이가 죽었다. 제발 총들 좀 내려놓아라.”

 

CNN은 지난 주말을 ‘폭력의 주말’로 규정하고 미 전국에서 일어난 총기난사 사건들을 정리했다. 시카고에서 재슬린이 죽은 날 텍사스, 오스틴에서는 전직 형사가 전처와 지인 등 3명을 총격 살해했고, 그 10여 시간 전 위스콘신, 케노샤에서는 북적북적한 술집에서 한 청년이 총기를 난사, 3명이 죽고 3명이 부상당했다.

 

그 전날인 토요일(17일)에는 오하이오, 콜럼버스에서 총격 살해된 희생자 추모집회에 총탄이 쏟아졌고(사망 1명, 부상 5명), 네브래스카의 오마하에서는 10대 소년들이 샤핑몰에서 총기를 난사했으며(사망 1명, 부상 1명), 루이지애나의 라플라스에서는 중학생 생일파티 중 언쟁이 붙자 10대들이 총을 빼들어 9명이 총상을 입었다. 15일 밤 인디애나폴리스의 페덱스 물품창고에서 총기난사로 8명이 떼죽음을 당한 바로 그 주말이었다.

 

한인여성 4명 등 8명이 희생된 애틀랜타 스파 총격사건 이후 한달 여 사이 미국에서는 50여건의 대량살상(사상자 4명 이상) 총기난사 사건이 보고되었다. 최근 바이든 대통령이 총기폭력 대처 행정명령을 발표하면서 말한 대로 이 정도면 ‘유행병’이다. 세상이 나를 무시해서, 배우자가 배신해서, 미워서, 열 받아서, 억울해서 … 총부터 쏘고 보는 것이 일상이 된 나라. 미국에서 총격살해 비율(인구 100만명 당 29.7건)은 아프간이나 시리아 등 전쟁 국가 수준이다.

 

그럼에도 ‘생명’보다 ‘총’에 집착하는 이 나라 총기문화의 근원은 무엇인가. 미국은 총으로 세워진 나라다. 17세기 초 대륙에 발 디딘 유럽인들은 수많은 인디언들을 살육하며 식민지 개척에 나섰다. 원주민과의 공생 공존 대신 그들을 적으로 삼아 죽이고 빼앗는 것이 개척의 본질이었다. 그런 만큼 사방이 적이고, 총이 있어야 안심이 되는 무의식적 심리가 이 땅의 후손들에게 유전된 건 아닐까.

 

유구한 전통의 총기문화 그리고 수정헌법 2조(무기소지 및 휴대 권리 보장)에 대한 신념이 만들어낸 결과는 인구보다 많은 총기(국민 100명 당 120.5정). 그만큼 총으로 죽을 위험은 높다. 연간 근 4만 명이 타살, 자살, 갱 총격, 총기난사 등으로 목숨을 잃는다.

 

건강한 사회란 기본적으로 상식이 통하는 사회다. 사람의 생명이 총기보다 중하다는 것은 상식 중의 상식인데, 미국에서는 그 상식이 마비된 지 오래다. 총기판매 시 신원조회만 확실히 해도 범법자나 정신질환자의 총기구입을 방지, 총기폭력 위험을 낮출 수 있다는 것은 상식이다. 하지만 연방하원이 보낸 관련 법안이 상원에서 통과될 가능성은 없다. 이런 식의 규제가 결국은 국민의 총기소지 권리를 침해하게 된다는 공화당 의원들의 ‘신념’ 때문이다. 매일 300여 명씩 총탄에 맞는 야만적 현실과 그 가족들의 고통이 그들의 눈에는 들어오지 않는다. 막강한 전미총기협회(NRA)의 영향력 그리고 정치적 양극화에 따른 당리당략이 그들의 눈을 가리고 있기 때문이다.

 

1960년대 미국의 고민은 날로 치솟는 교통사고 사망이었다. 1966년 교통사고 사망자는 5만 3,000여명. 자동차 주행거리(1억 마일) 당 5.5명 꼴로 사망했다. 그때 제정된 것이 자동차 안전법이었다. 공중보건의를 수장으로 전국고속도로 교통안전국(NHTSA)을 창설하고 관련 연구에 엄청난 연방기금을 지원했다.

 

그 결과 나온 것이 안전벨트 착용 의무화, 제한속도 하향조정, 에어백 설치, 음주운전 처벌 강화 등 안전조치들. 덕분에 주행거리 당 사망률은 현재 1.2명(2017년 기준)꼴로 낮아졌다. 자동차사고 인명피해를 공중보건 문제로 접근한 것이 주효했다.

 

총기폭력 역시 같은 접근이 필요하다고 공중보건 전문가들은 말한다. 총기소지 권리 논쟁은 미뤄두고 국민의 안전에 초점을 맞춰 데이터를 수집하고 연구해야 총기폭력 유행병을 막을 수 있다는 것이다.

 

3년 전 플로리다, 파크랜드의 고교 총기난사 사건으로 학생 17명이 목숨을 잃었을 때, 한 학생이 TV 카메라 앞에서 분노했다. “우리는 아이들, 당신들은 어른입니다. (어른이라면) 뭔가 조처를 취해야 하는 것 아닙니까. 정치는 뒤로 하고 제발 좀 뭔가를 하십시오.”

 

‘유행병’을 막으려면 정치인들이 정치적 계산은 뒤로하고 국민의 생명에 집중하며 뭔가 좀 하겠다는 자세가 필요하다. 총으로 세운 나라, 총으로 무너질까 두렵다.

 

<권정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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