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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아침] 냄비밥

지역뉴스 | 외부 칼럼 | 2020-09-19 16:16:13

행복한 아침,김정자,냄비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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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냄비밥을 해먹기로 했다. 쌀을 씻고 불려서 냄비에 앉히고 밥물이 끓어 오르기를 지켜섰다가 중불로 줄이고 쌀알이 익었다 싶어 약한 불로 뜸을 들인다. 고슬고슬하게 익을 밥 생각에 군침이 돈다. 자작자작 구수한 내음을 풍기며 노릇노릇하게 익어가는 누룽지까지 전기밥솥에 길들여진 입맛이 호강하는 날이다. 쌀을 씻고 그대로 밥솥에 앉히면 밥이 되는 줄 알았다. 

엄마 사랑이 아내 마음이 더해져서 쌀보다 많은 양의 밥이 된다는 것을 아내가 되고 엄마가 된 후에야 알았다. 따뜻한 밥상은 엄마 사랑이요 아내 마음이다. 피가 되고 살이 되어 밥심으로 세상을 살아낼 수 있는 것이다. 밥과 가장 친숙한 말이 엄마와 아내일 것이다. 엄마라는 부름과 밥은 동의어나 다름 없다. 엄마라는 부름 뒤엔 밥이 어김없이 따르기 마련이었으니까. 아내 자리도 마찬가지, 퇴근길 남편도 ‘아는’ 하는 물음 다음은 ‘밥 묵자’였으니까. 신기한 것은 생면부지 만남에도 밥 한번 마주하고 먹으면 그리 낯설지가 않아지고, 얽히고 설킨 앙금도 침전되듯 가라앉는다. 함께하는 시간이 잦아지면 흉허물도 풀어놓을 수 있을 것처럼 친숙해진다. 구겨진 마음도 찌뿌둥한 관계도 반반하게 고르게 탈바꿈 하게 된다. 구부러지고 오그라들었던 심사들이 곱게 펴진다.

모락모락 김이 오르는 밥 한그릇에 국 대접 하나면 얼었던 심중까지 따스하게 데워주기에 사는 게 다사롭고 마냥 훈훈해진다. 잘 익은 김치 한 보시기가 금상첨화로 자리 잡으면 먹기 좋게 익은 김치만큼이나 마음밭이 익어간다. 시린 세상의 냉기도 소롯이 목젖을 타고 넘어간다. 밥만큼 인생을 긍정적으로 풀어주는 것이 또 있으랴 싶다. 밥은 인생이요 관계 맺음의 시작이었다. 밥은 위선이나 교활이 없는 외곬이라 순진하고 어수룩하다. 어리석고 고지식하고 생색낼 줄을 모른다. 밥의 힘을 빌리지 않고는 정신줄을 지탱해낼 수 없음이라 밥심을 최상의 힘이라 할 수 있겠다. 밥의 상징은 기본 생존권은 물론 가족 사랑의 지지대로 보장받을 수 있음이요 세상을 헤쳐나갈 수 있는 에너지 공급원이라서 ‘밥심’으로 살아간다는 표현의 적절함이라 일컬을 수 있다. 가족을 뜻하는 식구란 말 또한 사람 사는 모습의 포괄적인 묘사 방식에서 유래된 것으로 밥상에 마주앉아 밥을 같이 먹는다는 것은 삶을 함께 한다는 것이요, 식탁 또한 밥을 나누는 가구가 아닌 소중한 삶의 자리요 화해와 용서와 사랑이 번져나는 현장이다. 밥에 배인 흙내음을 알아야 밥심으로 산다는 말의 깊이를 이해할 수가 있을 것이다. 농부의 발자욱 소리를 듣고 벼가 익고 밥상에 따스한 밥으로 오르기까지의 경로를 납득하거나 받아들이려면 어느 정도의 연륜은 있어야 한다. 오로지 밥에 기대어 살아왔던 시절이 있었으니까.

딸 내들이 어렸을 때 둘레밥상에 온 식구가 마주했던 밥상 풍경이 떠오른다. 떠들썩했던 시간들이 마치 며칠 전인 것 마냥 마음을 휘저어 놓는다. 딸들이 둥지를 떠나면서 손주들이 등장하고 밥상은 소란하고 어수선하긴 했지만, 그 시간들의 묵직한 그리움이 얼기설기 마음을 누빈다. 각자의 자리를 든든하게 지켜내고 있는 고마운 자식들과 식탁에 둘러앉아 오손도손 밥의 마음을 나누었던 시간들이 먼 기차소리처럼 멀어져 갔다. 코로나19로 모든 것이 멈추어버리고 오가는 일 조차 조심스러워 언제쯤 다시 모여질지 기약이 없다. 딸내 가족들이 모두 어우러지며 밥냄새, 사랑냄새로 가득했던 따스한 식탁이 이런저런 고려 없이 다시 마련되어질까. 사람이 살아가는 진풍경이었는데. 먹먹해진다.

냄비 밥 냄새가 본능적인 그리움을 불러들이고 있었나 보다. 밥으로 상징되는 생활 속 유머나 비유들을 꺼내보면 일상의 지혜가 숨겨져 있음이 엿보인다. 고마울땐 ‘나중에 밥 한번 같이 먹자’로, 안부삼아 ‘밥은 먹고 지내냐’로 마음을 전한다. 몸이 아플땐 ‘밥은 꼭 챙겨 먹어야지’하는 것으로 병상을 걱정한다. 어르신들께는 ‘진지 드셨습니까’로, 오다가다 만나질 때도 ‘밥은 먹었냐’로 인사말을 건넨다. 칭찬의 말을 건낼땐 ‘밥 값은 했구먼’으로 우회적 칭송으로 평가하기도 했었다. 아이들을 혼낼때도 ‘너 밥도 없을 줄 알아’라며 화를 드러내기도 하고, 한심하게 보이는 사람을 빗대어 ‘밥은 벌어 먹으려나’로 비유적으로 묘사되기도 한다. 심각한 상황일땐 ‘밥이 목구멍으로 넘어가냐’며 느낌을 드러내고 마땅치 않은 짓거리를 하고 있을 때 ‘그게 밥 먹여 주냐’로 표출된다. ‘내가 니 밥이가’ 라는 반문 앞에선 누군가의 밥이 되는 여정으로 선회해야지 하는 마음이 앞선다. 고슬고슬 잘 익은 냄비밥 덕분이리라. 따스한 밥심으로 팬데믹을 대처해 나갈 수 있는 포만감이 더 없이 소중해지는 이즈음이다. 우리집 할배와 마주앉아 오붓하게 냄비밥을 나눌 수 있고, 칩거할 수 있는 집이란 공간이 있어 감사하고, 집밥의 소중함을 깨닫게 된 것도 더 없이 감사하다. 이 모두 밥심으로 이루어낸 덕분이라 감사는 나날이 일상에서 계속 불어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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