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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아침]  외할머니 소회(所懷)

지역뉴스 | 외부 칼럼 | 2020-06-06 15:15: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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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순상 노흥성 부동산 470-218-6136표정원 융자미국 크래딧 교정

 

마치 덤으로 얻은 것 같은 질펀한 시간 속을 유영하고 있는 이즈음이다. 실내 화초도 바꾸어 보고 옷장 정리도 끝냈다. 한국에서 친정 아우님이 마스크와 함께 보내준 사진들을 스크랩 하기로 했다. 

연연한 가족사가 담겨있는 사진 갈피 속에서 오래 전 작고하신 외할머니를 만나 뵙게 되었다. 빛 바랜 흑백사진이 쌓여있던 회포의 소회를 올올이 풀어낸다. 외할머니께서는 독립운동가 아내로 살아오시면서 여성들의 정체성, 사회공헌과 여권 신장 등 여성들이 사회와 가정에 미치는 영향력에 대해 지대한 관심을 가지셨다. 맏손녀를 향한 기대치 또한 상당하셨겠지만 상응할 만큼은 아니라서 선한 밑그림 정도로만 인정받고 싶음을 말씀 드리지 못했던 후회로움이 떠오른다. 

찬란한 신라 역사며, 구전으로 전해주신 이야기 또한 전래 동화책 한 질 양은 너끈히 될 만큼이었다. 이조 말엽 풍경에 풍물이며 저잣거리 이야기, 일제강정기 독립운동 야사까지, 이야기에 젖어 들어 무르익을 즈음이면 짬이 닿는 대로 선덕여왕 후예라는 말씀을 일깨워 주시곤 하셨다. 보석을 비롯한 유물이 대를 이어 전해져 왔지만 역사를 건너오는 동안 수 많은 전란을 치르면서 유실되기도 하고, 때로는 궁녀를 통해 사가에서 보존되기도 하면서 그 명맥이 이어져 왔다고 한다. 

장녀의 반열로 전수되어온 루비반지가 그 증거라 하셨다. 결혼을 하면서 내 어머니께서 건네주셨던 루비반지를 내 큰딸에게로 건네주었다. 큰 딸 맏이인 손녀에게 결혼을 하면 전해주라는 당부와 함께. 외할머니로부터 전수된 선물로 받아들이기에는 범상치 않은 빛을 띤 루비반지로 하여 숙연함에 젖어 들곤 했었다. 

 

외 할머니의 꼿꼿하신 품성과 우아함을 겸비한 단아하심이 새삼 남다름으로 기억되게 한다. 품위를 고수해 내시려는 인품 또한 대범하셨다. 앉음새나 기품 또한 고담함이 넘치셨다. 높은 인품에서 풍겨나는 운상기품이나 갖추신 위엄이 마치 세속됨에서 벗어난 고양된 품격이라서 실로 어디로부터 풍겨 나오는 것일까 하고 생각했던 일들도 떠오른다. 외할머니의 격조 있는 의기를 따를 수만 있었다면 더할 수 없는 행운이었으리라. 외할머니 외모 부분만이라도 닮았더라면 내 인생 여정도 달라졌을까. 다행히 내 여동생이 외할머니 면모와 기개를 물려받은 듯 하다. MBC TV 개국 아나운서로 발탁된 것을 보면. 

 

지금도 외할머니 댁을 찾아 뵈면 ‘어서 오나라’하시며 반겨주실 것 같다. 외할머니 사랑은 세월의 두께가 두터워 갈수록 그리움도 그 부피를 더해간다. 오롯이 남겨주신 기억에는 외할머니를 향한 존경심의 발로뿐이다. 내 어머니와 외할머니에게 과연 어떠한 딸로 존재했으며 어떠한 기대감으로 키워졌을까. 딸로써 외손녀로써의 영특한 자리매김은 기대감에 미치지 못했던 것 같다. 유년의 정원엔 갖가지 정원수들이 빽빽하니 가옥을 둘러싸고 있었다. 목련을 유난히 아끼고 가꾸어 오셨던 어머니셨다. 추위가 가시기 전에 홀로 꽃을 피워내고 꽃이 스러지면 무성한 잎을 피우는 목련을 만날 때면 어머니 모습이 뒤늦은 연민으로 저며온다. 어머니께서 돌아가실적 나이가 되었지만 여직 서투른 엄마 모습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딸들과 함께 하다 보면 나이가 무거워 가고 있는 친정 엄마 임을 가뭇가뭇 깨우치곤 한다. 세월에 떠밀리듯 친정어머님을 그리는 딸이 되어 있음이 무상하지만 나만의 특별한 어머니와 외할머니 이야기를 품고 살아간다는 것도 행운이리라.  

조용했던 여학생을 딸로 둔 어머니께선 기말 고사가 끝나면 사복으로 갈아 입히시고, 때론 어머니 입성까지 입히기도 하시며 국제시장 길목에 있는 동아극장이나 부산극장에서 영화를 관람하게 해주셨다. 덕윤으로 그 시절의 웬만한 명화는 두루 섭렵한 셈이 된다. 크고 작게 치렀던 고사에서는 부모님께 실망을 드린 적이 없긴 했지만 내향적 성격으로 나서는 일을 어려워했었고 사소한 칭찬에도 민망함을 견디기 힘들어했던 얼뜨기였기에 실망을 안겨준 것 밖엔 떠오르지 않는다. 성적이 유지되지 못하면 밥상도 밀어냈던 결국이 입시 때마다 효도한 것 같은 조용한 기쁨을 누렸던 기억도 곁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한데 내 딸들에게는 살가운 엄마는 아니었던 것 같다. 등교를 위해 단 한 번도 아침에 깨워준 적이 없었다. 스스로 기상하지 못하는 아이는 세상을 이길 수 없다는 신조를 붙들면서. 수련회를 떠날 때도 가방을 손수 싸준 적이 없었다. 또한 공부하라고 다그친 적도 없었고. 

생이란 먼 바다를 스스로 건너야 할 훈련을 일찍이 시작한 것 같은 자책이 밀려들 때면 혹한의 겨울에 나부대는 칼바람 같은 모습이 되어 떠오르곤 한다. 선덕여왕 후예라는 원하지 않은 자존감 탓에 역지사지도 없는 나다운 삶이었을까. 어쩌면 이러함이 인생이지 않을까 싶기도 하지만. 명답 없는 우문현답이 곰삭아버린 노구에 측은지심을 불러들인다. 외할머니 소회로 맥없던 하루가 은은한 그리움으로 소롯이 부풀어 오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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